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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Jul 26. 2022

엄마의 귀욤뽀짝한 취향

엄마의 취향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엥.. 이게 뭐야.” 집에 이상한 귀욤뽀짝한 토끼 모양 매트가 있다. 엄마의 소행인 게 분명했다. 엄마는 다이소를 좋아했다. 귀욤뽀짝하고 얄구진 제품들을 매일매일 다이소에서 사 와 집을 꾸몄다. 집에 사는 우리 형제는 집이 얄구진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원하고 좋아하시니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귀욤뽀짝한 엄마의 취향

사실 엄마는 한국에 사시는 게 아닌 에콰도르에 사신다. 2년마다 한 번씩 한국에 나와 두 달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에콰도르로 돌아가신다. 참 신기한 게 시계도 핸드백도 다 명품에 화장도 찐하게 하시지만 옷과 구매하는 물품은 참 귀염뽀짝하다. 야자수 벽지, 딸기 모양의 수세미, 유니콘 패턴의 행주.. 우리 집에는 수 십 개의 캐릭터들이 산다. 엄마에게 아들이 디자인 쪽에서 일하니 다른 것을 사면 안 되냐고 해도 엄마는 “나는 이게 좋아. 귀엽고 싸고 얼마나 좋니?”라고 하신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 엄마의 취향으로 가득 찬 귀욤뽀짝 얄구진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집 야자수 벽지


엄마의 취향이 궁금해 엊그저께 엄마와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취향,, 그게 뭐꼬?” 엄마는 취향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단 듯 취향은 모른다고 했고 답답한 나머지 엄마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찾아주기로 했다. “엄마, 엄마는 귀여운 거 좋아하잖아? 맞지?”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 옆에는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휴지통이 있었다. 엄마에게 알레시라는 브랜드를 알려드렸다. 엄마는 특히 매직 바니 제품과 주전자를 좋아하셨다. 일반 제품이 이런 재미 요소가 있으니 좋다고 하셨다. 위트 있는 디자인을 좋아하는 엄마. 나도 엄마를 닮아 위트 있는 디자인이 좋나 보다.



희한한 조합, 한결같은 취향

엄마가 나갈 때마다 까르띠에 시계를 차셨다. 한국에 나온 김에 낀다나 뭐라나. 재밌는 건 까르띠에 시계와 같이 들고 다니는 작은 핸드백에는 황금 풍뎅이 키홀드가 달려있다. 참 이상한 조합인 게 명품 시계는 당장이라도 날라 갈 것 같은 풍뎅이와 잘 어울렸고 엄마의 이중적인 취향을 보기에 좋은 조합이었다. 명품 시계, 작은 핸드백, 지하상가 원피스, 풍뎅이 키홀드. 참 희한한 조합이다.

리본, 귀여운 일러스트, 풍뎅이, 블랙&화이트 리본, 희한한 조합

한 번 아빠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아빠께서는 "너희 엄마는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상가를 제일 좋아해"라고 하셨다. 가성비가 뛰어난 것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다. 참 그런 게, 집 옆에 큰 백화점이 있어도 엄마는 절대 백화점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가 백화점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의 안목은 뛰어나 어울리시는 옷을 어디에서든 착착 구매하신다. 블루 스트라이프 원피스, 블랙 드레스 등 고른 옷은 모두 엄마에게 찰떡이었다. 다만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시면 옷들이 너무 비싸 소비하길 주저하신다. 그렇기에 지하상가를 좋아하신다. 맘 편히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기에.. 엄마 취향 덕분인지 이모들, 사촌 누나들 전부 엄마에게 옷을 골라달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꽤 뛰어난 안목과 날카로운 취향을 갖고 있다.


7년 전이였다. 엄마가 교환 학생을 영국을 가는 김에 병정 모양의 호두까기 인형을 사달라고 하셨다. 교환학생인 얼마큼 돈이 있었을까? 당시 병정 호두까기 인형은 내 한 달 비용이었고 나는 엄마 기억에서 잊힐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고 잊힌 줄 알았던 호두까기 인형은 이모 댁의 진열장 안에 들어있었다. 나무로 조각된 피노키오 옆에 우뚝 서있던 호두까기 인형. 엄마가 저걸 보고 갖고 싶어 했었나 싶기도 하고 사서 선물드리지 못한 게 마음이 시리다. “엄마 그래도 그땐 돈이 없었어요.”




엄마의 취향 관련된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엄마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문득 예전 KB 금융그룹의 PR 영상인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 편’이 생각났다.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자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 있는지 등 자녀에 관련된 여러 질문에 답하던 젊은 아버지들. 아이라는 단어가 아버지라는 단어로 바뀌는 순간 많은 젊은 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에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라고는 질문으로 대체되고 답을 적지 못했던 젊은 아버지들(아들들).

출처: KB금융그룹 유튜브, [KB금융그룹_기업PR] "하늘같은 든든함, 아버지(몰래카메라)" 편


이 광고처럼 아이라는 단어 대신 어머니라는 단어를 넣어봤다. 내가 얼마나 엄마를 아는지에 대해, 엄마의 취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번 여름은 특별하다. 엄마와 놀러도 많이 다니고 영화도 보고 나의 관해 얘기하기보다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취향 얘기를 하며 모자는 한층 가까워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는 출국하시겠지만, 다음 입국일을 기다리며 엄마와 할 수 있는 엄마의 관한 색다른 이야기들을 구성해 봐야겠다. 다시 그 해 여름이 풍성해 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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