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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Dec 29. 2022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세요?

기능적 편익도 없고 디자인도 별로지만 브랜드력이 있는 브랜드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 일을 하면서 꽤나 자주 듣는 이야기는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냐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브랜드의 기조를 만들고 구성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브랜드를 좋아할지 궁금할 것 같다. 매번 듣는 질문이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진땀을 빼곤 한다.


뭔가 특별한 브랜드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근본적인 이유로서 이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줘야 할까 등 항상 고민이 많다.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사회 초년생 때 봤던 조수용 디자이너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브랜드를 말하지 못하면 감각이 무딘 기획자로 보일 것 같았다. 매번 새로운 브랜드와 나에게 울림을 주려는 브랜드를 찾아봤지만 뭔가 와닿는 브랜드는 찾지 못했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3개만 꼽아 그 브랜드가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얘기해보라. 상당수는 자기가 직접 그 브랜드를 사용하며 깨달은 얘길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칭찬한 걸 주워 듣고 얘기를 해요. 자신의 감각은 둔감한데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먼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민감도가 높아야 디자인이나 마케팅을 잘할 수 있거든요.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경험엔 신경 쓰지 않고 아무 물건이나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이상한 거예요. '언제 어디서 무얼 써봤는데 그게 왜 좋았는지'를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민감도를 알 수 있어요.
-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0년 1월호), 조수용 디자이너 인터뷰 중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는 없습니다

매번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다르게 답했다. 포카리스웨이트, 플러스마이너스제로, knot, 무인양품, 29cm 등 어느새 많은 브랜드를 읊을 수 있는 수준까지 왔지만 여전히 영혼이 빈 듯한 느낌의 대답이었다. 최근 지인과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지인이 추가 질문이 상당히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쏘뇨 기능적 편익도 없고 디자인도 별로지만 브랜드력이 있는 브랜드 중 좋아하는 브랜드는 뭐예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때까지 말했던 모든 브랜드는 기능적 편익 때문에 좋아하던 브랜드니깐 말이다.

가전 브랜드인 플러스마이너스제로(우측), 시계 브랜드인 놋토(우측)

말문이 턱 막혔다. 질문이 너무 날카로워 마음이 베인 것 같았다. 횡설수설 질문에 답은 했지만 그날은 답을 찾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감성적 편익 또는 브랜드력이 있어 좋아하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좋아하는 브랜드를 찾기 위해 일상을 뒤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집에 사는 것까지 다시 살펴보았다. 솔직히 기능적 편익을 빼고 보니 딱히 엄청난 브랜드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스튜디오 니콜슨의 감성을 좋아하고 헤리티지플로스의 옷의 짜임새를 좋아하지만 패션 브랜드로 답을 정하기에 무언가 부족한 마음이 들었다.


브랜드 자체로는 생기를 지닐 수 없다. 사람들이 일상에 두고 사용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와닿아야 브랜드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임태수, 『브랜드 브랜딩 브랜디드』, 안그라픽스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좋아하는 브랜드의 기준이 너무 높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완전 팬이어야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이지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 브랜드에 미쳐야 하고 이 브랜드를 사고 즐기는 수준이어야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브랜드로 넣기에 마음속 장벽이 높고 결국 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브랜드의 기준을 내리기로 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브랜드

좋아하는 기준을 낮추다 보니 많은 브랜드들이 새롭게 보였다. 제 3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좋아하는 브랜드가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자그마한 레고를 사는 것을 좋아한다. 레고를 엄청 사서 모으거나 재테크를 하진 않지만 자그마한 레고들을 사 회사 책상에 진열도 하고 심심할 때 종종 레고 사이트에 들어가 괜찮은 제품들을 보기도 한다.

레고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니 10살 때 생일이었던 것 같다. 10살 생일 선물로 받았던 카우보이 레고 세트가 기억에 남는다. 비록 다 만들지는 못했지만 레고 한 블록 블록을 모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던 그 시절. 그 이후로 중학생이 될 때까지 수많은 레고를 선물 받았다. 한 번도 제대로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 레고는 나의 꿈을 펼치기에 내 세상을 만들기에 좋은 장난감이었다. 레고는 나의 유년 시절이자 나의 상상의 나라였다.


펩시는 취향전에서 다룰 만큼 베네수엘라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브랜드다. 마트나 식당에 가면 굳이 콜라 대신 펩시를 사 마시기도 할 정도니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펩시와 협업해 나온 여러 물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맛이 나왔다고 마셔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난 펩시를 좋아한다. 코카콜라 제로를 마시는 것보다 그냥 펩시를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니깐 말이다. 이 정도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브랜드의 의미는 광고 담론과 소비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라는 두 가지 기호체계 사이의 변증법적 교환을 통해 만들어진다
- 로라 오즈월드, 『마케팅 기호학』, 커뮤니케이션북스




레고, 펩시는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 브랜드를 소비할 때마다 과거가 기억이 나고 브랜드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웃음 짓기도 한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기준을 너무 높이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여러 브랜드를 알아가고 좋아하면 그 브랜드에 더 빠져들지 않을까 한다. 올해 끝에 와서 나만의 브랜드 정의가 바뀌었다. 최상위 가치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개체로서의 브랜드도 좋은 브랜드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결국 과거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주는 특별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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