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당황시킨 면접 질문
다음 행보 없이 퇴사를 하여 백수 기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회사를 기웃거렸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네이버 창에 ‘브랜드 전략 기획 채용’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력서를 고치고 포트폴리오의 디테일한 부분을 수정하며 20곳 정도 지원했다. 불경기의 여파가 커 합격을 해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고 지원을 해도 답 조차 안 해주는 회사도 많았다.
다행히 몇 회사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후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대행사에서 대행사로 옮겼다 보니 인하우스 면접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잡플래닛 유료 결제를 했다.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브랜드 전략 기획자의 면접에 관련한 유익한 정보는 없었고 브랜드 전략 기획자 포지션의 질문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기에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어떤 어려운 질문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답변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모든 브랜드는 진정성이 있다. 왜 A회사로 이직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브랜드에 진정성이 있어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진정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브랜드에서 진정성은 무엇일까? 최근 들어 브랜드 업계에서 언급이 많이 되는 단어이자 생각보다 브랜드에서 체감하기 힘든 용어이긴 하다. 브랜드라는 명칭으로 한 순간 소비되는 상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브랜드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브랜딩에 성공하는 조건 하나 꼽으라 그러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언행일치 메시지와 두잉 스토리텔링과 두잉의 일치. 그게 진정성이고 그것이 성공하는 브랜드의 유일한 조건이다.
- [DESIGNSORI]성공하는 브랜드의 유일한 조건, 황부영 CEO
나오미 클라인이 비판했던 건 브랜드의 불필요함 그 자체가 아니다. 슈퍼 브랜드로 주목받고 부를 축적해 가는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균형 현상들이었다. (생략) 실체보다 인식과 이미지만 관리해 온 과도한 포장 행위들 말이다.
- 최장순, 『의미의 발견』, 틈새책방
브랜드에서 진정성은 과도한 포장 없이 마케팅으로 형성하는 이미지를 고수 및 추구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언행일치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A브랜드가 어떻게 언행일치를 했는지에 대한 사례가 중요한데 면접 전 열심히 정보를 모은 덕에 무난히 답변할 수 있었다. 다만 어려웠던 것은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이슈인 만큼 서로가 정의하는 바가 다르고 진정성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기에 상당히 조심스럽게 답변했던 것 같다.
이 질문의 경우 받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실제 면접 이후 밤새도록 생각하고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세요?’라는 글이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스쳐 지나갔다. 무인양품,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나이키 등 다만 설득할 수 있는 브랜드는 하나 없었다. 그래서 길 가다 우연찮게 보게 된 브랜드인 Knot(놋토)를 이야기했다. 놋토는 일본 장인들과 협업하여 시계줄을 만드는 브랜드인데 스토리텔링이 잘하며 메시지가 임팩트 있게 전달되어 인상 깊게 받던 기억이 있다. 결국 나의 편협한 생각은 불합격으로 이어졌다. 불합격의 이유는 브랜드 전략보다는 커뮤니케이션에 치우쳐져 있다는 말씀. 물론 하나의 질문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질문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질문이 인상 깊어서 그런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기능적 혜택에 치우친 브랜드밖에 없다는 것과 나를 대변하고 감성적 혜택으로 연결된 브랜드가 없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어느 면접을 가도 ‘무슨 브랜드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주니어 때는 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깊이감과 연결되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나를 드러내는 브랜드는 무엇이고 나는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는 가와 브랜드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커리어를 쌓길 원하는 가 등 말만 다를 뿐 질문이 의도하는 바는 비슷하다. 그런 류의 질문을 자주 받다 보니 혼자 열심히 고민했다. 내가 이상적으로 되고자 하는 기획자는 본질을 바라보고 파악할 수 있으며 본질을 흐리지 않고 전략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연스레 본질을 파악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답변을 하게 되었고 다음으로 꼬리를 문 질문이 ‘근래 본질은 본 사례는 무엇인가요?’였다.
이 질문도 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본질을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보려고 하는 기획자라고 대답했지만 일상생활을 살며 본질을 파악하려 했던 기억이 얼마나 있는가?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았지만 머릿속은 전쟁통과 다를 바가 없었다. 5초의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에서 단서를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가령 에어컨을 만드는 공업 디자이너도 사람들이 어떤 바람을 원하는지 고민합니다. 본질을 디자인을 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것이죠.
- 스가쓰케 마사노부, 『앞으로의 교양』, 항해, 나오토 후카사와 인터뷰 中
비행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능적 요구를 들춰보면 그 속엔 기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 즉 아주 보편적인 관심사가 있다. 가장 성공한 브랜드들은 어떤 식으로든 기능적 요구를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에 다가설 줄 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푹 빠지는 브랜드, 실용적인 해결안을 넘어서서 삶의 일부로 자리 잡는 브랜드를 구축하려면 뻔한 요구를 밝히는데 그치지 말고 한 발짝 더 가야 한다.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모든 브랜드는 기능적 편익을 갖고 있으며 기능적 편익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감성적인 측면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는 읽었던 당시 비행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살다 보니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았고 교포끼리 만나면 인천공항, 비행기, 여행 등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생각한 비행기의 본질은 일상의 탈출이자 만남이었다. 둘을 연결했을 때 일상의 탈출은 해방감을 뜻하며 만남은 새로운 것, 익숙한 것을 만남의 의미로 반가움이었다. 해방감과 반가움, 이것이 비행기의 기능적 편익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이자 감성적인 연결선이라 생각했다.
물론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만 내가 정의한 비행기의 본질은 해방감과 반가움이다. 그렇게 답변을 이어갔으며 세세한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였다. 다행히 비행기의 사례는 공감을 일으켰고 무사히 다음 주제의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한 면접 당 평균 50분에서 1 시간 정도가 소요 됐으며 내가 말이 빠른 만큼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뻔한 질문, 예상한 질문도 있었고 인상적인 질문도 있었다. 질문의 수준은 내가 회사를 바라보는 창이 되기도 하며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브랜드 전략 기획인 만큼 본질에 맞닿은 질문들이 많았다. 질문에 따라 회사와 리더의 깊이감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깊이감은 자연스레 이 팀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것과 연결이 되었다. 팀허슨은 아래와 같이 말을 했다. 느낌의 본질까지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질문, 그런 질문이 사람을 끌어당기며 브랜드 기획자가 매번 생각해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그렇죠?” 혹은 “그게 왜 중요한가요?”처럼 이유를 묻는 질문을 많이 해달라고 요청하라. 이런 질문은 이슈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의 본질까지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기회이자 관문 역할을 한다.
- 팀 허슨,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현대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