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브랜드 기획자의 기본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 카피를 적을 수 있는 것? 생각하고 적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기획자의 기본은 리서치다. 처음으로 브랜드 전략 기획자가 됐을 때 6개월 동안 리서치와 리서치 요약만 했었다. 왜 리서치만 해야 하는지, 왜 나의 요약은 통과되지 않는지도 모르는 채 주야장천 엇비슷한 뉴스기사와 사설만 들여다봤었다. 팀장님을 붙잡고 왜 리서치를 해야 하는지 물어봐도 수석님을 붙잡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리서치는 기본이자 브랜드 전략의 첫걸음이기에 기초를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브랜드 전략기획자로 일하며 2년 동안은 리서치에만 집중했다. 어떤 프로젝트에도 초반 리서치는 중요했고 거기서 인사이트를 잘 뽑아야 보고서 작성에 도움이 되었다. 1년 차일 때는 자료 그 자체만 모으고 봤다 하면 2년 차 때부터는 여러 자료를 조합하고 관측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서의 첫 단추가 되는 리서치, 어떻게 해야 할까?
관측
1. 육안이나 기계로 자연 현상 특히 천체나 기상의 상태, 추이, 변화 따위를 관찰하여 측정하는 일
2. 어떤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잘 살펴보고 그 장래를 헤아림
- 표준 국어 대사전 발췌
대부분 과업범위가 주워졌을 때 시장에서부터 트렌드, 자사 브랜드 상황, 경쟁자 순으로 알아본다. 순서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대략 이 범위 안에서 살펴보곤 한다. C3, C4, P7 등 여러 기법을 활용해 찾아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리서치는 데이터 모음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즉슨 정해진 범위에 따라 데이터만 나열하는 것이다. 여행 업에 있는 브랜드 전략 기획일을 맡았다고 가정해 보자. 리서치의 시작점으로는 현재 시장의 규모, 시장의 트렌드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영역(시장, 트렌드 등)에 맞춰 리서치하여 순수한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데이터 내용에 의문점을 가져야 하는데 예로 ‘왜 이런 트렌드가 있을까?’, ’ 사람들은 왜 이런 것을 좋아할까?‘, ’이 트렌드는 어디서 온 걸까 ‘ 등의 의문점이다.
이렇게 의문을 갖게 되면 거기에 대한 것을 찾게 되고 자연스레 유의미한 데이터로 변해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영역을 벗어나 연결시키는 것도 유의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 이런 트렌드가 있을까?‘를 찾아봤다면 트렌드 영역에서 벗어나 자사 브랜드와 연결시켜 보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인데 왜 우리의 브랜드 소구점은 OOO 할까?‘, ’이 트렌드 안에서 우리 브랜드의 핵심가치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등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단순히 데이터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점을 가지고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또한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내가 리서치로 찾은 내용이 어떻게 도움이 되고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리서치는 전체의 시장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있지만 브랜드 에센스와 콘셉트를 뽑는 단초가 된다. 리서치 결과는 리더에게도 공유되겠지만 디자이너에게도 공유되어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 때의 에센스 및 콘셉트를 함축하는 일의 근간이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최선의 시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디자인팀은 리서치 결과 분석을 통해 디자인 방향을 명료하게 세우고,
추가로 필요한 조사 활동을 정한다. 이것이 크레이티브 프로세스를 준비하는 접근법이다.
- 캐서린 슬레이드브루킹, 『브랜드를 만드는 힘은 직관이나 감성이 아니다. 촘촘한 실무의 단계들이다. 디자인이다. 』, 홍디자인
브랜드 리서치를 할 때 문화 코드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리서치의 대부분의 결과물은 정성적으로 나오는 것인데 정성적인 리서치와 결괏값에서 왜?라는 부분을 포함하여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하다. 예로 ’OO브랜드의 최상위의 가치는 혁신인데 왜 충성고객은 혁신보다는 다정함으로 느낄까?‘라는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 그 후 그에 대한 답변을 Focus Group Interview나 in-depth interview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의 질문보다는 꼬리 질문이 유용하다. 꼬리 질문을 해야만 고객의 숨겨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브랜드 주요 타깃층의 성향, 그들이 소비하는 문화를 리서치하는 일도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
- 큐리, 『사람, 디자인, 브랜드』, CLASS101, 전채리님 인터뷰 中
사람 중심 브랜드 리서치에서는 고객에게 브랜드가 가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데스크 및 필드 리서치로 찾아낸 수많은 데이터와 추측을 기반으로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며 하나씩 검증해 나가는 것이다. 브랜드는 까다로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논문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기능적 혜택, 감성적 혜택, 자아표현적 혜택이다.
특히 현대로 와서는 감성적 혜택과 자아표현적 혜택이 selling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는 직감으로 디자인을 하고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21세기 초부터는 직감보다는 정량적 데이터와 고객의 정성적 데이터를 더 중요시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능적인 측면과 가격의 우위만으로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이 두 측면이 여전히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그 이상 감성적인 측면과 자아표현적인 측면 또한 고려해서 구입한다. 무조건 저렴한 제품만을 고집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리서치에서 감성적&자아표현적 혜택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의뢰받은 브랜드가 어떤 감성과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지 또한 경쟁사 브랜드가 어떤 혜택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는지 말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 이론을 중심으로 소비자가 제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리서치 결과는 제품이 가진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실용적인 측면인 기능과 성능뿐만 아니라 상징, 정체성, 그리고 감정을 포함한 의미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 로베르토 베르간티, 『의미를 파는 디자인』, 유엑스리뷰
리서치는 기획팀 혼자서 진행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리서치를 하기 전 디자인 팀과 기획 팀 사이에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리서치를 어떤 방향에서 해야 하고 무엇을 알기 위해서 해야 하는지 선소통이 된다면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리서치 프로세스 자체는 그 결과를 가지고 일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경험에 따르면 그 결과물을 가지고 일해야 할 사람들이 참여하여 진행한 리서치는 그들에게 ‘사전 협의 없이 넘겨진’ 리서치 결과보다 더 잘 이해되고 더 장기적으로 이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 애릭 로스캠 애빙, 『브랜드, 디자인, 혁신』, 싱긋
이 글이 리서치의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 열심히 구르면서 깨달은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데이터를 모으지 말라. 그렇게 된다면 사회초년생의 나처럼 반려당하거나 사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가져가는 일이 생길 것이다. 광고대행사에서 팩트북이라는 개념을 들었다. 정성적&정량적 데이터를 추리며 그에 따른 추론과 생각들을 적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중요한 부분은 데이터보다 리서쳐의 생각을 맨 위에 적은 후 리서치 자료를 보여준다는 것이다(두괄식 구성).
글을 적으며 사회에 갓 들어온 나를 위해 적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성장하고 싶었고 리서치를 잘하고 싶었다. 솔직히 리서치에서 당장 벗어나 그럴싸한 기획서를 짜잔 하고 적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기초가 탄탄해야 인사이트가 나오고 인사이트 기반으로 보고서가 나온다. 요즘에도 리서치를 하면 의문점을 가지고 데이터를 연결하며 리서치를 진행한다. 기획의 어느 영역보다도 더 시간을 쏟아붓고 놓치는 것 없이 찾으려 한다. 그래도 리서치하는 도중에 중심은 이 데이터가 프로젝트를 하는데에 있어 왜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진행한다. 리서치가 단순히 데이터 디깅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브랜드 기획자로서 일한 첫 2년보다 훨씬 값진 2년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글을 끝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