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 브랜딩에서 고객 주도 브랜딩으로
요즘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고객 중심이다. “쏘뇨씨 고객의 눈이 되어 브랜드를 바라보세요.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고객 중심이라는 단어는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랫동안 다뤘던 단어인데 요즘 왜 이렇게 낯선 걸까? Customer Centric, 고객 중심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금융권, 물류, 호텔 등 고객을 마주하며 일하는 곳에서는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브랜드 관련 기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단어 중 하나다. 고객중심이라는 단어는 여러 측면을 갖고 있다. 브랜딩을 이끌어가는 TF가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고객 중심이며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디렉터가 이끄는 브랜드 또한 고객중심이다. 대행사에서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브랜딩을 진행하는 것도 고객중심이다. 고객중심 브랜딩, 어떤 방향성이 맞는 걸까?
대행사를 다닐 때는 다른 프로세스들 중 고객 FGI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객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을 뾰족하게 하기 위해 수정을 거듭했다. 2-3 문장에서 이뤄진 긴 질문 20개가 완성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공들인 고객 FGI는 프로젝트의 실마리, 업계에 대한 인사이트 등을 주며 고객을 위한 브랜딩의 첫 단추가 됐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극진히 대접해 주는 브랜드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브랜드는 반대로 한다. 고객을 바라보는 대신 자기 중심성에 빠진다.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고객을 대한다. 그 때문에 고객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브랜드보이
고객들의 이야기가 담긴 정성적 데이터를 모으고 분해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인사이트는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그 이후 데스크&필드리서치로 고객층을 이해하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힘썼다. 타깃 소비자도 구상해 보고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며 그들이 브랜드를 사용하는 이유를 세세히 파악했다. 고객 FGI에서 얻은 정량적 데이터, 데스크 리서치에서 모은 정량적 데이터까지 합쳐 고객중심의 브랜드 전략을 만들었다.
브랜드 성공의 관건은 타깃 오디언스에게 ‘말을 거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막무가내는 통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외침이 빈산의 메아리가 되거나 엉뚱한 다리를 긁지 않으려면 디자이너가 타깃 소비자를 세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레이티브 프로세스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타깃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와 욕망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적합한 메시지와 보이스톤으로 타깃 오디언스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다.
- 캐서린 슬레이드브루킹, 『브랜드를 만드는 힘은 직관이나 감성이 아니다. 촘촘한 실무의 단계들이다. 디자인이다. 』, 홍디자인
브랜드 보고서는 대체적으로 FGI에서 나온 내용과 당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엮어 고객과 현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오늘날처럼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에서 fad(일시적 추세)과 trend(장기 연동의 유행)도 구분하지 못하고 선택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브랜드에게 얼마나 알맞을까? FGI 모수가 50명 이상도 되지 않은 조사는 타깃층을 대표할 수는 있는가? 고객들의 불만사항, 개선사항 등을 모은 데이터로 도출한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은 브랜드에게 얼마나 유용했을까? 고객 FGI에서 나온 브랜드의 문제점과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솔루션은 단기적으로 브랜드에 도움이 되었다. 다만 브랜드가 long-run을 하는데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운영하는 입장이 된 지금, 나는 혼란스럽다.
위처럼 고객 이야기를 들어보고 고객의 needs와 wants에 맞춰 브랜딩을 하는 것에 있어 스티브 잡스는 부정적이었다. 스티브잡스는 ‘소비자들은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서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포드는 ‘만약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그들은 조금 더 빠른 말(마차)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고객의 말을 듣지 않고 브랜딩 하는 것이 고객중심인 것인가?
고객의 needs와 wants를 물어보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고객 중심의 브랜딩을 위해 FGI 또는 고객조사에서 나온 데이터만 다뤄 브랜딩을 풀어나가지 말자는 것이다. 고객들이 말해주는 브랜드의 문제와 그것을 풀기 위한 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말자. 고객은 생각보다 브랜드에 실무자들만큼 컨설턴트만큼 관심이 없다.
바라는 모습, 즉 이상보다는 ‘문제’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현재 시점에서 최적화된 솔루션을 생각하고 발굴하는 것이 기획의 몫입니다. 고객이 생각하는 솔루션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윤주, 『판교의 젊은 기획자들』, 멀리깊이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브랜드와 고객 접점에 있는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분석하자.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거기서 멈춘다면 단기적인 브랜드의 성장밖에 이룰 수 없다. 브랜드의 장기적 성장을 돕기 위해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제시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아르테미데의 에르네스토 지스몬디 회장은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객들의 요구나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 고객들에게 제안할 새로운 무언가를 고민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새로운 기술일 수도 있고 새로운 디자인일 수 있다. 그런 새로운 것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고객중심 브랜드로 완성된다.
애플의 전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고객 조사를 통해 숨겨진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켜 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고객 중심 마케팅(customer-driven marketing)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왜냐하면 고객은 기업이 알려주기 전에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략) 따라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시장조사를 멈추고, 연구개발에 더 많이 투자하여 소비자가 미처 깨닫지 못한 욕구를 효과적으로 채워 줄 수 있는 방법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고객 선도 마케팅(customer-driving marketing)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고객 선도 마케팅이 고객 중심 마케팅보다 고객 가치를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두 관점은 “고객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가 아닌 “어떤 고객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차이가 있습니다. 즉, 고객 중심 마케팅은 고객의 현재가치를, 고객 선도 마케팅은 고객의 미래가치를 각각 중요시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김지헌, 『마케팅 브레인』, 갈매나무
1차 산업혁명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고객들은 값싼 가격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저렴하지만 잘 부서지지 않는 플라스틱 제품은 고객의 인식변화를 이끌었다. 스마트 폰이 등장하며 세상은 제품 중심에서 UX 중심의 시대가 됐다.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앱과 디자인은 무한대로 진화했다. 이제는 가치 주도의 시대다. 고객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소개하라. 새로운 것이 꼭 기술일 필요는 없다. 고무장갑의 색을 바꾼 것도 새로운 꽃을 매달 주기적으로 배송해 주는 것도 반도체에 들어가는 새로운 칩을 만든 것도 모두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브랜드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여 고객 주도의 브랜딩을 하고 있는가?
규칙을 깰 때는 그저 요란을 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객을 위해 어디에서 어떻게 깰지 계산하자. 고객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면서 당신의 브랜드가 더 잘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