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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May 23. 2021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없다면 성장할 수 없나요?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성장의 상관관계

  매년 연봉 협상 시즌이 되면 우리 회사는 수석 디자이너와 면담을 진행한다. 다행히 연봉 상승에는 문제없지만, 회사에서 부여하는 "업무 성적"은 최악이었다. C라니 C!! 고등학생 때도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대학생 때 매번 지각하던 교양 수업에서만 받아 볼 수 있던 점수를 첫 회사생활에서 맛보다니... 그 날따라 수석 디자이너와의 면담이 상당히 길고 울적했다.

마치 진구의 시험지처럼..

  작년 2월쯤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수석과의 면담 내용은 아이러니하다. 수석은 물어보는 질문에 해답보다는 재질문을, 조언보다는 부족함을 꼬집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기획자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수석은 어떤 디자이너가 좋냐고 맞받아쳤다.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당황했지만 끝내 '나이젤 크로스요'라고 얼버무려버렸다. 다행히 면담을 잘 끝냈지만 찜찜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아.. 난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없구나.” 면담 후 큰 숙제를 안은 듯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서비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기획자로 살면서 특정 디자이너를 좋아하거나 어떤 류의 디자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단어를 어루만지며 본업에 충실했지만, 어떤 디자인이 좋은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브랜드의 가치를 디자인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학생 때부터 없던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고 디터람스와 그의 미니멀한 디자인은 너무 좋았고, 나오토 후카사와의 사소한 디테일이 너무 좋다.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것의 형태가 좋았던 것이지 디터람스나 나오토 후카사와의 가치관이나 디자인 철학이 좋은 건 아니었다. 브라운, 플러스 마이너스제로 등 그들이 전개하는 브랜드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전혀 몰랐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한 명의 고객으로서 제품의 형태나 기능을 좋아하는 것은 괜찮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획자로써 그런 태도가 정말 괜찮은 걸까?

무인양품,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브라운



좋아하는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받는 

  솔직히 수석이 말한 거처럼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으면 내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실제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에서는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디자이너나 미대생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없어요." 이 말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그 어떤 것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 중의 하나다. 즉,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세계가 좋아서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나름대로의 걱정도 하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인테리어 업계의 역사를, 건축가라면 건축업계의 역사를 풀어헤쳐 보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다.
- 나가오카 겐메이 -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받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업을 보며 따라 하고 그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며 그의 발자취를 살펴본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좋은 디자이너와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개인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라켄야의 ‘이것으로 충분하다’의 가치관이 여러 디자이너에게 영감이 되어 수많은 미니멀 디자인과 본질을 강조한 디자인을 만들어낸 거처럼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선한 영향력이 자기만의 디자인 철학에 중요한 양분이 되어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고 키워갈 수 있다고 믿는다.


  솔직히 여전히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없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계속해서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찾고 좋아하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주니어로서 더 건강한 생각과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도록 나만의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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