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발라드의 시대는 갔는가

by 쏭스

작년이었다. 모임 자리에서 사회부 후배가 노트북을 바삐 두드리고 있었다. 마감이라도 있는 줄 알고 일행과 먼저 술잔을 비우려던 찰나, 그녀가 노트북을 탁 닫으며 한숨을 쉰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선배… 김동률 콘서트 예매하려다 실패했어요.”

“응? 김동률을 듣는다고?”

“와, 20대가 김동률이라니. 의외네.”

내가 중학생 때 듣던 노래를, 10년 넘게 차이 나는 후배가 여전히 듣고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밀레니엄을 맞이한 2000년대 초, 그 시절은 바야흐로 발라드의 시대였다. 엠넷에선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토이의 ‘좋은 사람’ 뮤직비디오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김동률도 3집 타이틀곡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돌아왔다.

조성모는 3집 ‘아시나요’로 약 214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최대한 애절하게, 늘 어딘가로 달려가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연인들. 결국 누군가가 죽어야 비로소 마주하는, 청승맞은 뮤직비디오들. 당시 발라드 뮤직비디오는 단편 영화 수준의 퀄리티였다.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하고 해외 올 로케 촬영을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그대 오가는 그 길목에 숨어

저만치 가는 뒷모습이라도

마음껏 보려고 한참을 서성인 나였음을

이런 가사처럼 돌이켜보면 약간 스토커 같은?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랑이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왜 그렇게 소극적인 사랑이 대세였을까 ㅋㅋㅋ

남자들끼리 노래방에 가면 꼭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유는 몰라도 다들 한 번쯤 죄지은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노래방은 자연스럽게 고해성사장으로 변했다. 요즘은 이런 과잉 감정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요즘 가요 차트에서는 발라드 곡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때는 넘쳐서 지겹다던 장르였는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허전하다.

사랑을 노래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처럼, 사랑하는 법도 변했다. 세상은 여전히 썸의 시대지만, 그 방식은 훨씬 냉정하다. 요즘 30대들은 연애도 “아니면 아닌 거지” 마인드라고 한다. 상대가 애매하게 간 보면 바로 정리한다. 좋으면 빨리 사귀고, 아니면 미련 없이 돌아선다. 질척거림도, 기다림도 사치가 된 시대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성시경은 이렇게 말했다.

“발라드는 이별의 감정에서 시작되는데, 요즘은 이별해도 완전히 단절되지 않잖아요. SNS만 검색해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다 보이니까. 예전처럼 막연한 그리움이 쌓일 틈이 없어요.”

발라드를 통해서라도 마음을 토해내는 시절은 정말 끝나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유부남이 돼서, 그런 감정에 무뎌진 걸까.

(하긴 지금도 그런 상태면 '부부의 세계' 찍고 있을 듯)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오락실 구석 코인노래방에서

누군가는 izi의 ‘응급실’로 심폐 소생 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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