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진심입니다

by 쏭스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작은 도서관이 있다. 구립이고, 동사무소 3층에 붙어 있다. 처음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소장 도서는 적고, 분위기는 썰렁했다. 그냥 동네 구색 맞추기용 공간인 줄 알았다.


사실 나는 기자임에도 책을 잘 읽지 않았다. 내게 도서관이란, 대학 시절 밤새 술 마시고 첫차 기다리며 쪽잠 자던 기억이 전부였다.


어릴 땐 꽤 읽었다. 히키코모리 같던 시절, 해방 전후의 한국 현대소설을 즐겨 읽었다. 등장인물들의 옛스런 말투, 혼란스럽고 암울한 배경, 비극적인 엔딩. 그 모든 게 중2병 감성엔 딱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책은 문제집이 됐다. “이 장면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인물의 심리는?” 같은 질문은 책을 책이 아니게 만들었다. 어느새 손에는 책 대신 게임 컨트롤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점점 책에서 멀어졌다. 가끔 들른 알라딘 중고서점은 무덤 같았다. 조용한 매장, 묘비처럼 쌓인 베스트셀러, 헐값에 팔리는 내 인생의 책들.


유튜브는 마지막 타격이었다. 영상의 시대라고 말하며, 글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읽지 않아도 될 이유는 넘쳐났고, 읽어야 할 이유는 점점 흐려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은 도서관의 ‘상호대차 서비스’가 나를 다시 책으로 이끌었다. 동네에 없는 책도 구청 산하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다. 검색하면 안 나오는 책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신청하면 이틀 안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알림이 오고, 책은 프런트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도서 신청도 된다. 매달 세 권까지 신청할 수 있고, 그중 한 권쯤은 실제로 주문해준다. 새 책이 도착하면 선물 받은 기분이다. 내가 고른 책이 진열대에 꽂혀 있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하다.


요즘은 전자책도 쉽게 빌릴 수 있다. 도서관 앱만 깔면 언제 어디서든 책을 펼칠 수 있다. 대출 대기 없는 책도 꽤 많다. 야~ 이래도 안 읽는다고? ㅋㅋㅋ


이상하게 요즘 다시 책이 읽힌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쳐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조용한 걸 원하게 됐다. 숏츠는 즉각적이고 가볍다. 반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낼 때 느껴지는 감정은 묵직하고 오래간다.


그래서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권쯤은 꼭 빌려온다. 그중 한두 권은 끝까지 읽는다. 예전엔 “책은 의미 없다”는 글을 블로그에 쓰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다. 그땐 내가 뭘 몰랐던 거다.


이제는 7살 아들도 책을 읽는다. 밥은 안 먹어도 책은 본다. 문제는, 그 책들이 집 안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 소파 틈, 식탁 밑, 화장실 문 앞… 둘째는 책을 밟고 미끄러져 울고, 나는 어질러진 거실에서 마음의 안정을 잃는다.


정작 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오는데, 집엔 책이 넘쳐난다.

제발 책은 도서관에서 좀 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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