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2012년 입사 동기들이 모였다. 광화문 앞 양갈비 집에서.
프렌치랙이라던가. 180g에 3만 5천 원짜리 양고기가 유난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밀린 회비도 냈겠다(12만 원...) 나도 작정하고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자연스럽게 사는 얘기로 넘어갔다. 작년에 “부동산은 끝났다!”며 피를 토하던 동기 A가 최근엔 목동에 집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야… 말이 되냐? 목동 스무 평짜리가 지금 얼마인 줄 알아? 17억이다. 17억. 야...”
내가 물었다. “형, 작년엔 집값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어?”
A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야… 그땐 대통령이 탄핵될 줄 몰랐지. 나라가 이렇게까지 흔들릴 줄 알았냐고 ㅋㅋㅋ”
그 말에 앞에서 양고기를 집어 먹던 B도 고개를 들었다.
“나도 최근에 집 알아보러 목동 다녀왔거든? 야, 거기 진짜 좋더라. 애들이 일단 착해. 순둥순둥해. 집, 학교, 학원, 다시 집, 학교, 학원… 가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 게 그 동네 애들에겐 일탈이더라니까.”
A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학군지라 엑시트도 쉽고 목동은 집값이 안 오를 수가 없어. 이번에 DSR 3단계 적용되기 전에 다들 사두려는 분위기더라. 어쨌거나 애 때문에 곧 이사해야 하는데... 고민이 많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생기고 나면 이사 타이밍을 잡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대부분의 부모는 초등학교 입학 전을 ‘기회’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마지막에 가깝다. 일단 또래 친구가 생기고 나면 왕따나 학폭 같은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전학은 부모도 아이도 꺼리게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같은 동네 안에서만 이사를 하거나, 주소만 바꾸는 식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살던 동네를 완전히 옮길 수 있는 기회’는 잘해야 두세 번쯤뿐이다. 그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면 평생 같은 생활권에 묶여 살아야 한다. 이사도 결국은 타이밍이다.
나도 전학을 겪어봤다. 사춘기 중학생 시절, 나는 IMF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다. 가세가 기울면서 전학을 두 번이나 갔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친구도 학교도 동네도 모두 낯설었다. 겨우 익숙해질 무렵 또 이사를 가야 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그땐 몰랐다. 그 경험이 내 삶에 얼마나 긴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그 뒤로 나는 사람과 관계를 깊게 맺지 않게 됐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환경의 변화는 아이의 발달에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부동산은 숫자 놀음 같지만 결국엔 사람 이야기다. 집을 산다는 건 돈벌이의 수단을 넘어 어디서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대부분의 삶을 서울에서 보낸 나는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간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이 도시에 붙어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날 양갈비집에서 우리가 먹은 금액은 총 87만 5천 원이 나왔다.
비싸긴 했지만, 17억 원에 비하면 껌값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