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내수용 대통령'

by 쏭스

요즘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해프닝이 따라붙는다. 정상회담 자체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포토타임이 끝난 뒤 이어지는 환담 자리에서 통역 없이 멀뚱히 서 있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의전팀이나 기자단의 게이트키핑으로 이런 장면은 가려졌겠지만 이제는 유튜브 실시간 영상으로 그대로 생중계된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관리 실패'가 아니다. 대통령이 글로벌 무대에서 ‘대화‘를 못하고, 그로 인해 ‘존재감’이 없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외교 무대에서 변방의 나라가 아니다. BTS와 손흥민, 오징어 게임, 반도체와 K방역까지, 한국은 명실공히 주류 문화권의 일원이자 경제 강국이 됬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들과 나란히 서면, 그 위상만큼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다.


한국 대통령들은 대체로 영어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세대다.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어 소통에 소극적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의사 전달은 가능했지만 유창한 회화는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유학과 해외 근무 경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역시 통역에 의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법조계의 엘리트였지만, 즉흥 대화에선 늘 통역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주요 선진국 지도자들은 다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영어 인터뷰를 능숙하게 소화하고,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영어로 의사를 전달했다. 우크라이나의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외교장관 출신답게 서방 정상들과 유창하게 소통한다. 이런 언어 능력은 외교 현장에서 ‘친밀감’과 ‘신뢰’라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2019년 NATO 회의에서 프랑스,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만약 한국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통역 없이 웃을 타이밍조차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국제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리더’를 가진 나라임을 보여준다.


중요한 건 대통령 개인의 의지다. 한국어로 국내 언론을 상대로 완벽한 논리를 펼칠 수 있어도, 영어 한마디 못 한다면 해외에선 존재감 없는 ‘내수용 리더’일 뿐이다.


2022년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지켜보며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사실상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이 될 이재명 당선인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는 강한 추진력과 말솜씨로 정국을 이끌어온 정치인이지만, 유세 과정에서 영어 실력을 드러낸 적은 없고, 공개된 외교 경험도 제한적이다.


이 당선인이 정상 외교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영어라는 ‘실전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 말이 통해야 외교가 되고, 외교가 돼야 국격이 따라온다.


2025년 6월 3일, 또 다른 대통령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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