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초의 사랑

윤미네 집

by 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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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들었다. 때 이른 폭염이다. 이제는 ‘더위 사진’ 시즌이다. 광화문광장 분수대는 이맘때면 사진기자들의 단골 촬영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뛰노는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 어른들과 달리 감정을 숨기지 않는 아이들은 최고의 모델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촬영하다 보면 문득 집에 있을 자녀들과 아내가 생각난다. '내 아이들도 저렇게 놀 때 찍어 주면 좋을 텐데 아쉽군.'


그래서 퇴근 후에도 나는 카메라를 놓지 못한다. 엊그제까지 엉금엉금 기던 아이가 벌써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돈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 나도 그 순간들을 붙잡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유년기를 나는 기록한다.


아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클로즈업보다 와이드나 미디엄 샷을 선호한다. 표정뿐 아니라 그 순간을 둘러싼 배경까지 함께 담고 싶어서다. 고(故)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 사진집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전 교수는 첫째 딸 윤미를 시작으로 26년 동안 세 자녀의 성장을 기록했다. 그의 사진집에는 찌그러진 양은냄비, 못난이 인형, 비포장도로 같은 1960~70년대의 생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가족이라는 사적인 장면이 세월이 흘러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된 것이다. 내가 가족사진을 찍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런데 아이 사진은 정말 어렵다. 국회나 스포츠, 인터뷰, 재난 현장까지 찍어봤지만 아이만큼 예측 불가능한 피사체는 없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카메라의 피사체 추적 기능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다. 그래서 셔터 속도를 1/500초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표정 변화도 순식간이다. 방금 전까지 깔깔 웃던 얼굴이 어느새 진지해진다.


그리고 아이 사진을 찍으려면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다. 얼마 전엔 여의도 물빛광장에 누운 첫째를 찍다 허리를 삐끗해 한동안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실내 촬영도 만만치 않다. 빛이 부족해 일부러 창가 쪽으로 아이를 유도한다. 창문을 통과한 부드러운 자연광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감싸준다. 그런데 이번엔 배경이 문제다. 방치된 장난감, 굴러다니는 기저귀, 내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까지. 자연스러움도 정리된 공간에서야 빛난다.카메라를 들려다 청소기부터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찍는 건 즐겁다. 그들의 표정은 어떤 연출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정형화된 스튜디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찰나의 진심이 사진 속에 남는다. 예방주사를 맞은 둘째가 엄마 품에 안겨 울 때, 숙제하기 싫은 첫째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을 때—나는 그 순간들을 찍는다. 그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담고 싶은 순간들이다.


시간은 흐른다. 언젠가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나와의 대화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던 시절은 지나가고, 함께 있는 시간은 차로 학원에 데려다 줄때뿐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정적인 사진이 많아지고, 셔터 속도도 1/125초, 1/60초… 점점 느려질 것이다. 웃는 얼굴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더 많이 담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다시 느낄 것이다. 아이 사진은 역시 어렵다고.


2024년 6월 1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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