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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Jun 13. 2024

'꾸준한 오늘'을 보내는 젊음에게

나를 가르치는 드럼 강사는 서른 네살 미혼의, 덧붙여 말하면 비혼주의 여성이다.

선생님과의 1 대 1 레슨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만큼 나는 새로 알아가는 '사람의 맛'에 빠져있다.

이전 강사님과 정을 쏟아부었던 7개월의 시간동안에는, 지금 강사와는 단순히 오고 갈때만 인사를 나누는 것이 관계의 전부였다. 강사님이 이사로 음악학원을 관두게 되면서 지금의 강사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나의 강사님"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부터 그녀는 나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온 '사람'이 되었다.



나의 사람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는 시점은 묘하게도 매력적이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미풍에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혹은 알고 있던 남자사람 친구가 갑자기 심장을 쿵쿵 울리는,바로  그 시작점을 맞딱뜨린 것처럼.


외부에서 내부로 '사람'이 들어왔다.



이제 나는 그녀가 궁금하다.

휴무일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술은 잘 마시는지, 사람들과 왁자지껄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연애는 왜 관심이 없어진 건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MBTI는 무엇인지, 나처럼 전시관람과 커피를 좋아하는지...


누군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마음이 열심히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방에서 시작된 마음이 마주보는 방향으로 바뀌는 순간, "관계"라는 것이 매듭을 묶고 짜여지기 시작한다.

마냥 타인이 아닌 '나의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좋다.

 소심한 ISFJ의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마다 '관심'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다를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호감이 무례함이 되지 않게, 다가감에 있어 조심스럽고 예의를 지켜야 함이 중요한 이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과 친해져 간다는 것에 있어 적어도 나이만큼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친구'를 맺는 것에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에 맞는 존중과 대우는 응당 따라야하는 것이 맞다. '친구'라는 이름을 빌미삼아 예의까지 허물라는 일종의 허가는 아니니까.

다수의 사람들과 북적하게 어울리는 것이 다소 힘든 나로선 '나의 사람'을 만들어가는 일이 남들보다 조금은 더 신중하다. 정을 주기까지 '알게 된'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마음을 열게 된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세심해진다.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고, 해 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끝도 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나날이 늘어간다.

편안하게 사적인 만남까지 갈 수 있는 인연이 되기까지에는 물론 '조마조마'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솔직함을 장착한 채 직접적인 질문과 확인도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씨실날실 격자로 단단히 짜여져 나갈 인연이라면, 상대의 마음이 열리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 믿는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뒤로 물러선 다정함을 견지하면 그뿐이다. 서로가 원하는 선의 인연이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이 아닐까.




서른 네살의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처럼 살아보지 못한 '나의 서른 네살'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서른 네살을 사진첩을 뒤져 찾아보았다. 서른 둘에 아이를 낳고 세살아이 육아에 정신이 없었던 시기였더라.

지금보다 말라있었고, 많이 앳되었고, 다소 촌스러움이 배인  사진들에 웃음과 더불어 많은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육아로 인해 사회적인 이름을 내려놓았던 나와 달리, 요즈음의 MZ세대로서 흔해져버린 (어쩌면 당연한 ?) '비혼주의자'로 열심히 수강생들을 가르치며 매일매일의  과업을 잘 '지내고' 있는 그녀가 잠시 부러웠다.

저렇게 자신의 일에 열중해야 하는 나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고 있을 나이, 친구들 중 누군가는 육아로 정신 없을 터이지만 오로지 '나'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그녀가 궁금했다.

 그런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평행세계의 내가 궁금했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상상한다는 것은 아릿하고도 짜릿한 일이었다.

지난 삶을 회고하며 다시 잊었던 행복감을 되찾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놓쳐버린 또 다른 삶을 상상하는 재미도 찾았다.

그런 김에 이런 이야기들을 주제 삼아 그녀와 대화 나눌 '건덕지'로 삼을 수도 있었으니, 그 또한 좋았다.



이 모든 생각의 끝에 그녀에 대한 다정함이 배속으로 더해짐을 느낀다.

더 친해져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언젠가 김민식 작가의 글을 읽다가 빼내어 적어두었던 이 말을 꼭 전해줘야겠다.



" 꾸준한 오늘이 있기에 ,  내일은 무한하다."




서른 네살, 지나고보니 정말 무한한 나이였다.

물론,지금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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