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Su Jun 21. 2024

 "언니가 그냥 싫어요!"

"싫은데 이유 있나요? "


열 일곱 해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지독스레 달라붙어 있는 흔적들은, 땅바닥에 꾸욱 박혀버린 - 마치 원래의 무늬가 그랬던 것처럼 - 더러운 껌딱지같다.


"언니가 그냥 싫어요."


저 말이 귓가에 다시 생생하게 재생되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재직 시절 어느 곳에 가도 있다는 '진상'은 나에게도 있었다.

그녀가 '진상'인 것은 나에게만으로 한정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퇴사한 이후로도 그녀가 누군가를 은밀히 괴롭히는 일은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이상한 쪽은 내 쪽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우쓰꽝스럽게도 난 안도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기가 털리는 내향형 인간으로서, 혼자일 때나 소수의 친밀한 인원만이 모인 자리에서만 편안함을 느낀다.  

다양하고 새로운 '여럿'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생겼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다정이 일상이 되게'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다정함이 조금은 넘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양각색인지라 그런 다정함을 과도한 관심 혹은 부담감으로 느낄 수도 있고, 뭔가 득이 될 것을 바라고 계산한 행동이라고 눈 흘기며 단정짓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따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그들 또한 다정이 넘쳐흐르는 사람들이다.

보지 못하면 그리워지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고, 만남과 대화가 간절해지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음을 알았을 때, 서로가 마주한 방향과 다정의 크기가 동일하지 않을 수는 있을지라도 (애초에 크기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관심의 표현이 새로운 인연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 첫 다가감에 매우 신중한 편이다.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 일은 지금의 내겐 많이 어려운 일이다. 맺었던 인연들이 무의미하게 퇴색되어 가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은 많이 아렸다. 쉽게 맺지 않았던 인연이었기에 상처는 자주 덧났다.

나와 상대가 서로에게 갖는 마음의 크기가 '상당하게도'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검푸른 멍이 든다. 반복될 때마다 시-퍼래진다. 好(호)의 감정을 내려놓기까지의 일들은 비단 그 상대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억울한 감정도 든다. 맞는 인연이 아니었기에 겪었던 '시행착오'였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라고 혼잣말을 해보면서도 심장이 꾸욱 눌리는 듯한 감정은 가끔 이겨내기 힘들다.



요즘 이유를 모른 채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무관심을 빙자한 지나친 지독한 경계이자 힐난같다. 그 사람은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내가 있는 자리에만 색깔을 지운다. 다수가 퍼뜨리는 화기애애함 속에서 그 사람은  쪽으로 냉기를 끊임없이 흘려보낸다.

당사자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본능적인 의도성, 지독한 차가움이다. 살피고 또 살폈다.혹여 혼자만의 오해일까봐서. 하지만 몸으로 느낀 본능은 틀리지않았음을 재차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이렇게 어른답지 못하게,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심히 앓았다.

바보같이, 우스갯소리처럼 은근슬쩍 따져 묻지도 못했다. 이 놈의 유약함이 또 내 정신에 덧씌워지는 것에 대해 나를 향한 실망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이런 일을 겪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무난히 받아치지 못한  붙들려버린 내가 무척이나 한심하다.  

사람은, 17년 전  후배의 당돌했던 말들을 떠올리게 했다.

싫은데는 이유가 없다며 그냥 언니가 싫은거라고 면전에서 비수를 꽂아대었던 그 아이가 겹쳤다.

당신은 그냥 있으라고  그냥 지금처럼 당신을 싫어하겠다며 잔인하게 말을 날렸그애의 또렷했던  입매와  눈동자가 떠올랐다.



미움 받는데 이유가 없을 수 있다는, 사람 싫은데 이유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내가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며 비웃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의도대로 행해주는 건,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똑같이 무시로 일관해주는게 맞는 것일까? 잠시 고민했다.

유치했다. 유치함을 오히려 내 쪽에서 비웃어주리라.

적어도 나는 내 나잇값만큼의 행동으로 이 상황을 대처해주겠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똑같이 인사하고 웃음을 날려주리라.

어지러운 마음을 현명하게 잘 정리했다는 생각에 며칠 간의 괴로움이 사라져가는 듯 하다.

'웃는 낯의 나'로 금세 되돌아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잘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꾸준한 오늘'을 보내는 젊음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