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딸 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딸이 받은 새벽 두 시의 부고 알림은 잠들어 있던 나의 알람이 되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엄마~" 하고 온 얼굴을 이그러뜨린채 몸이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였으나, 딸과는 시험기간에 zoom을 켜두고 둘 만의 온라인 독서실을 만들어 함께 공부할 정도로 좋았던 사이였다. 곱디 고운 아이였다고 들었다. 공부도 운동도 인성도 두루 갖추어, 늘 좋은 이야기로 회자되었던 그런 맑은 아이었다.
여러날이 지나고 노트북 파일을 정리하다 친구와 함께 했던 ZOOM 독서실 기록을 발견한 딸은 또 다시 힘든 감정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믿어지지 않는 진실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아이는 그 자리에서 또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열 여섯의 어린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겪은 상실감을 내 아이가 어찌 이겨내갈지 걱정이 앞섰다. 이미 떠난 아이의 감당 안되었을 마음 또한, 그리고 그 부모의 찢어지고 녹아내렸을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감히 천분의 일만큼이라도 느낄수가 있을까?
꿈이라 믿고 싶었던 부고의 새벽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일과를 마치고 부랴부랴 아이와 조문길에 나섰다.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최선의 검은 옷을 차려 입고 아이는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몇 십분간의 이동 중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각자의 간절한 기도는 그렇게 안에서 안으로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었다.
쿵쿵쿵쿵 ...방망이질 쳐대는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장례식장의 조문실 호수를 확인했다. 조금씩 그 방으로 가까워질 수록 코 끝이 시큰하니 눈물이 배어나왔다. 부들부들 다리가 흔들리며 겨우 선 ,검어진 얼굴을 한 그 부모를 마주했다. 겨우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는 듯한 그들은 ,그런 와중에도 정신을 차려야만 하는 , 또 다른 한 아이의 부모이기도 했다.
하얀 국화꽃 한 송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건넨 딸이 기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는 한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흠뻑 젖은 온 얼굴은 소리가 없었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얼굴처럼 온 얼굴이 슬픔으로 찌푸려진 채 눈물만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의 마음이 아프면 나의 마음도 아프다. 엄마인 나는 또 다른 한 아이의 엄마 앞에 서서 '두 아이의 엄마'인 채로 울었다.
부둥켜안은 두 엄마는 하나가 되어 울었다. 말 없이 맞댄 가슴으로 흐느끼면서 ,더 많은 것들이 흘러넘쳐 서로의 가슴에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전이된 감정을 추스린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며칠 간을 그 아이의 죽음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또 많은 나날들을 나는 내 아이의 아픔으로 가슴 아리고 있다.
딸 아이는 당분간 '죽음'을 이야기 하지 말자고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이의 진지한 그 한 문장의 말의 무게가 더 없이 무거웠다.
이미 좋은 곳에 올라가 웃고 있을 것만 같은, 떠난 아이의 얼굴을 가끔 떠올린다. 영정사진으로 처음 만난 내 아이의 친구였다. 이렇게나 활짝 잘 웃던 아이었구나, 해서 더 마음 아팠다. 진작에나 너를 볼 수 있었다면 간식 한 번 음료 한 번 건네줄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많은 곱디 고운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다.
회복 될 수 없는 상처들이 세상 곳곳에 새겨진다. 어쩌면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스스로의 마지막을 아픔으로 새기고 간 그들에게도 ,또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에서 영영 피고름이 흘러내릴 그 부모에게도, 앞으로의 시간은 어쩌면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시계는 한 곳에 머물러 끝도 없는 공백을 만들어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