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헤어 드라이는 아빠의 몫

by HeySu



남편에게는 매일 밤의 일과가 있다.

술자리에 다녀와서도 어지간히 취해서 오는 것이 아니면 당연히 맡아서 해야 할 일과 중의 하나.

그건 바로 딸아이의 긴 머리를 말려주는 일이다.

엄마가 말려주는 것보다 아빠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말려주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면 시작이랄까.

물론 내가 이런 것을 노리고 아이 머리를 거칠게 말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반 평생을 단발머리로 살아온 내가 아이돌 여자아이처럼 아이의 긴 생머리를 약풍으로 오랫동안 말려주는 일은 고되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아이 머릿속을 손톱으로 긁게 되기도 하고, 엉킨 머리를 빗어주다 쥐어뜯기도 하는 일이 생겼으니 미안할 일이 쌓이고 쌓여 , 결국 이 업무는 남편에게로 이전되었다는 이야기다.


아이의 요구대로 머리끝까지 보드라이 말려주는 데에는 15분은 족히 걸린다. 정성스레 에센스까지 발라주고 머릿결이 매끄러운지 '탱글'테스트까지 마치려면 하품을 연신 참아내야 한다. 나의 늦춰진 수면 시간이 혹여 나중에 치매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요즈음은 중간고사기간이라 학원을 마치고 오면 아이도 고단, 기다렸다 머리 말려주는 엄마아빠도 고단이다.

혼자 말리게 하지 뭘 말려주냐는 친구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굳이 다 큰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소소하게 영상을 보며 한숨 돌리라는 의미도 있거니와, 종일 떨어져 있다 만나는 드물어진 '밀착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머리 말리다 볼에 뽀뽀도 하고, 사춘기 아이의 얼굴을 이뻐하며 부드러이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 크다. 이제 아이의 키는 나보다 크지만 여전히 애교 있고, 아기 같은 심통을 부리는 아이는 사춘기여도 사랑스럽다. 때때로 뾰족 가시를 곧추세우면 찔려서 아프기도 하다만 그 정도의 새침함이야 귀여운 애교로 얼마든 받아줘야지 싶다. 나날이 바빠지는 아이한테 그런 말로든 행동으로든 찔릴 시간도 사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딸에게 애정이 절절한 남편을 보며 생각한 적이 있다. 저런 아빠를 가진 딸아이가, 또 다른 딸아이의 입장이기도 한 나는 부러워지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따스한 스킨십도, 애정 어린 편지 한 장 아버지로부터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남편으로부터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본다. 나는 갖지 못하였으나 내 아이에게는 저런 아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더 물렁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아이가 다 자라 어른으로서의 제 몫을 하며 살아가기 시작할 때, 힘이 부치고 고단함에 눈물이 솟구칠 때 애정 듬뿍 어린 대화와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말려주던 아빠와의 시간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절절했던 내리사랑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얼마나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빛이 나게 하였었는지, 어른의 고단한 삶을 견디며 살아내는데 무한한 동력을 불어넣어 주었었는지를 기억한다면, 아이 또한 그 무한의 지지를 바탕으로 떨군 고개를 다시 들고 굽어진 등을 다시 세울 수 있으리라.


요즘은 틈틈이 아이를 가슴으로 안아주고 있다.

안쓰러워서, 사랑스러워서, 애틋해서. 아이의 존재를 바라봄에 있어 솟아나는 이 감정들의 이유야 수백수천수만 가지가 되겠지만, 아이는 이 그대로를 온전하게 느끼지는 못하겠지.

언젠가는 철이 깊고 깊게 들어버리겠지만, 나는 아이가 그때도 여전히 애교 많고 심통 많은 철부지의 얼굴도 잃어버리지 않았기를 바란다. 세상의 극히 일부, 엄마아빠한테만큼은 마음껏 언제고 어린아이일수 있도록 나와 남편의 자리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일이 지금의 우리가 할 최선의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