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의 자식이지만 길고 긴 양육의 세월과 키우면서 든 미운 정 고운 정을 생각하면, 엄마도 내게 '진짜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와 투닥거리면서도 '엄마'하고 떠올리면 눈물부터 절로 난다는 사람들처럼 ,
나에게도 그런 애틋함과 애정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좀 더 빨리 깨닫고 인정했어야만 했는데,
미련스럽게도 그러지 못한 나는 속끓이는 세월을 먹으며 이 나이, 여기에 와 있다.
각자 다르게 흐른 감정의 세월 속에서,
엄마는 홀로 옛 사진을 꺼내어 혼자만의 추억에 종종 젖어 들곤 한다.
어느 날 들렀던 친정에서 텔레비전 장 위에 전시하듯 올려놓은 액자를 보았다.
나와 자매들의 어린 시절이 찍힌 못나디못난 사진들이, 그것도 여러 장, 커다란 액자 안에 빼곡하게 끼워져있었다.
내가 가졌던 유년의 사진들은 모조리 태워버린 지 이미 오래다.
못나고 가엾고 우중충한 모습의 '수많은 내'가 사진에서조차 남아있는 게 싫었다.
삭제 서비스가 있다면 모든 사람의 기억과 기록물에서 그 모습은 잊혀버리고만 싶다.
사진을 볼 때마다 아픔을 상기시키는 초라하게 생긴 아이가 날 바라보는 게 너무나도 싫다.
친정의 그 액자를 볼 때마다 화딱지가 난다.
꺼내놓지 말라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싫은 소리를 내뱉어도 엄마는 아랑곳없이 본인만의 추억에 젖어 치우질 않는다.
제발 어디에 넣어두라고 말하면, 엄마는 '저 때 너희들을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나의 내면아이는 깊숙이 배어버린 상처와 좋지 못한 기억들로 여전히 괴로움을 부단히 겪어내고 있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을 시도 때도 없이 헤집고 다니며 감정의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엄마는 그걸 전혀 모른다.
저 때가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심장이 싸늘해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대여섯살 무렵부터 손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안정이 불가했고, 무력했던 어린아이로서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늘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손은 군데군데 뜯긴 상처로 벌어져 피가 맺혀 있었다. 물이 닿을 때마다 눈물 날 만큼 쓰라리고 아팠으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물어뜯었다. 빨간약을 발라대고 얻어맞기도 하고 아무리 욕을 먹어도 고쳐지지 않았다. 제멋대로 자동으로 돌아가는, 고장 났지만 멈추지도 않는 그런 기계 같았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징하디 징한 그 버릇은 마흔넷을 넘어서도 고쳐내질 못했다.
요즘도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들이 맞붙어 서로를 뜯고 있다.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손가락 주변부의 살들을 넘어 손마디, 손가락 사이살까지 쥐어뜯어 낸다. 뜯지 못하게 장갑을 끼우고 밴드를 칭칭 동여매어 놓으면 오히려, 하지 못하게 누가 억지로 말리는 것 같아 속에서 화 비슷하게 스트레스가 올라오곤 했다.
이런 내가 싫었다.
엄마아빠가 늘 해 왔던 말처럼 '그거 하나 못 고치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내 손은 마음 상태를 올곧이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너무나도 뻔히 보여서 감출 수가 없는 감정의 민낯이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떨쳐내 버리고 싶었고, 평생의 컴플렉스였을만큼 어디 내밀기 부끄러운 '괴물 손'이 바로 나의 손이다.
몇십년에 걸친 마음의 병, '불안'에서 시작된 이 병이 지배한 나의 소중한 시간에 미안하다 사과하고 싶다.
편안해지려고 더 부단히 애써야 했는데, 내 속에 상처받은 '나의 어린 내면 아이'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고 방관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재작년 어느 날, 남편이 네일샵을 끊어 다니라고 했다.
손톱을 예쁘게 칠해두면 좀 덜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엉망진창으로 살을 죄 뜯어놓은 손이 부끄러워 차마 네일샵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와 같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마음도 아팠다.
그 사람들의 불안도 나아져 가기를 염원하면서 나는 이 악질적인 습관을 고쳐보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남편과 딸은 나의 훌륭한 조력자이자 동력원이 되어주고 있다.
한 달 이상 손을 뜯지 않으면 용돈 선물을 준다고도 하고 명품백을 사주겠다고도 했다. 수백만 원 하는 선물을 걸었어도 나는 한 달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장하게도 수개월 동안 내 손을 잘 지켜내고 있다. 새살이 돋고 손의 제 모양을 되찾아가고 있다.
남편의 네일 샵 회원권 선물과 딸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해결책의 일부가 되었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과거의 상처와 불안에서, 이 악질적인 습관에서 꺼내주고 싶어 했던 남편과 딸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에 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네일 손질에 돈 쓰는 게 한심한 낭비라고 여겨왔던 내가, 이제는 40년 넘게 고생한 내 손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는 마음으로 소소한 호사를 즐거이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