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아동학대, 아동의 마음에 대하여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부모의 학대로 인해 인천 초등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아이가 하늘로 돌아간 것은 바로 지난 달의 이야기다.
아이의 사망 당시 몸 상태를 보니, 아무리 흐릿하게 화면 처리가 되어 있어도 아이에게 가해졌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너무나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방송이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도 눈에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이 저려왔다.
아이가 그간 당해왔을 '숨겨진 학대'로 얼마나 두려운 시간들을 보냈을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가둬진 세계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 비탄을 금치못할 일이다. 아무리 계모라 하더라도 짐승들도 하지 않는 짓거리를 거리낌없이 해왔다는 것에, 밖에 보일때는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펼쳐왔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그 아이의 학대 소식만이 아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 귀에 그런 소식들이 들려오는가.
매스컴에서 크게 떠들고 알려진 당시에만 반짝 하는 '동정심'같은 말들이 싫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이렇게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소모적으로 입에서 '감히' 놀려지고 있는건 아닐까 염려가 된다.
물론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을 사람들과 그들의 힘이 하나씩 모여지고 있을거란 것도 믿어 의심치않는다.
이 방송을 본 자식을 키우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도, 자신들의 일상에서 의도치 않게 잘못이 왕왕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인의 양육방식이나 태도를 되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역시 그랬다.
때때로 드는 생각은, 저렇게 잔혹하게 학대를 일삼는 -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해충같은 인간들도 저 방송들을 봐왔을텐데, 그걸 보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집안에서는 학대를 일삼고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토악질이 난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숨겨 둔 악마의 본성이라니.
그 사람은 애초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심성으로 살아가는 걸까. 어떤 눈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었을까.
가끔 말하게 된다.
이 세상에 악마들이 참 많이도 내려와 사는 것 같다고.
인간들의 속에 인간인척 숨어 사는 악마들이 왜 이리도 많은거냐고 자꾸 걱정하게 된다.
저 인천 초등생을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이 제 나이의 극히 일부만을 살고 떠나갔다.
그 짧게 산 인생조차 아이들은 불행과 아픔 투성이었다. 감히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
곁에 있다면 감히 보듬어 안아줄수 있었을까...
학대의 강도와 단계가 있다면, 내가 유년기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여지껏 시달리는 '나의 이야기'들은 저 아이들에 대면 비할바도 안 될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나이를 사는 나는 여전히 상처를 헤집고 달래는 과정을 무한반복하며 살고 있다.
작고 여린 아이들을 왜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과연 부모란 말인가. 누가 원한 부모란 말인가.
탄생하자마자 '재앙'과도 같은 부모를 만난 아이들, 어른들의 일로 폭력이 난무한 학대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오르게 된 아이들.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원죄를 받아야만 하는지 너무나 가혹하고 억울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동학대가 비단 신체적 학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범위 이상으로 훨씬 그 범위가 상당하다. 성적학대, 부모의 외도, 아이들에게 적절치 않은 내용들을 말과 행동들을 무신경하게 던지는 것, 아이를 공감하지 못한 발언들과 같은 정서적학대는 아이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차게 된다.
부모의 감정을 앞세운 이기심으로 부모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의 감정을 억제하고 학대한다.
인지조차 못하는 학대라, 자식이 커서 상처를 어렵게 고백하고 사과를 요구하며 사력을 다해 용기를 낼 때, 자신이 언제 그리 한 적이 있었냐며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아이는 본인에게 평생의 상처이자 트라우마가 된 일들을 당사자인 부모가 기억조차 못한다는 사실에 또 상처를 입게 된다.
나도 그랬다. 모든 상처를 일일이 짚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어렵게 눈물과 함께 터뜨렸던 몇몇의 일들을 엄마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불행했던 시기의 그 날들을, 엄마는 "너희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났다.
아... 같은 날들의 기억이 이토록 상이할 수가 있구나. 가해한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감정 놀음으로 그 어렸던 나에게 잔인한 말을 하고, 독이 서린 눈빛을 쏘고, 손으로 매서운 맛을 보여줬었구나...
그렇게 기억이 엇갈린 사람에게서 어떻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하고, 어떤 용서를 '베풀수가' 있겠는가.
한 떄는 내 상처의 단단한 응어리를 풀어보고자 용서를 마음 먹은 적이 있다.
다 잊고 다 내려놓자고 마음 먹은 그런 때가 있었다. 용서가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순진함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해지는 여전히 서슬퍼렇고 이기적인 엄마의 말과 여우같은 머릿계산, 가스라이팅 시도들이 이젠 너무 훤히 보여서 엄마를 '좋게 보려하는' 마음을 이제 더는 갖지 않는다.
'엄마는 원래가 그러한 사람', '변하지 못할 사람'으로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많은 걸 내게 들켜버린 나이 든 엄마는 이제 내게 더 많은 관심도, 애정도 , 용서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 어쩜 엄마의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본인의 뜻대로 살다 가실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나는 내 유년기의 상처와 그로부터 지속된 정신적인 힘듦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하지 않아야 할지를 .
적어도 한 아이의 '엄마'된 자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꾸준히 배워가고 노력해야한다는 걸 깨닫는다.
찰스 화이트필드의 <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 저서의 일부글 "부모가 쉽게 던지는 상처의 말"을 읽으며, '좋은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지고 또 다잡아본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좋은 엄마','좋은 아빠'가 될 수 있기를 너무나도 소망한다.
더 이상 학대받고 평생을 아픈 내면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제와 같은 방송이 만들어질 일이 없도록 말이다.
< 마음에 상처로 남는 말 >
감정을 드러내지 마라
화내지마라
엄마아빠가 말하는대로 해라
다른 애들은 안그래
다 네 탓이야
나는 늘 옳고 너는 늘 틀리다
넌 뭐하나 잘하는게 없구나
밖에서 집안일을 떠들고 다니지 마라
좋은 아이, 착한 아이, 완벽한 아이가 되어라
넌 쓸모없는 아이야
말대답 하지 마라
내 의견에 반박하지 마라
차라리 널 낳지 말걸
넌 아직 부족해
부끄러운 줄 알아
또 그러면 사랑하지 않을거야
왜 이렇게 바보같니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너 때문에 미치겠어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넌 진짜 이기적이야
너 때문에 내가 죽고 말지
너 떄문에 내가 병나겠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있니
그런 식으로 느끼면 안돼
울지마라
너 때문에 내가 희생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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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혀 상관이 었거나, 좋아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부정적인 말은 오히려 굳게 믿으며 내면화시킨다
부정적인 말을 듣고 수치심을 느껴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스스로를 나쁘게 생각하게 되고 그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된다.
-찰스화이트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