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고맙다 하고 받아주시면 안 되나요?

독이 된 선물

by HeySu


80년대의 초등시기를 보낸 나는 다달이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진 못했다.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받았다 하더라도 지극히 미미한 액수였을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하교 후 친구들이 들렀던 분식이나 문방구 간식 쇼핑에 함께 어울리지 못했던 날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필요한 문구류를 사는 것 외에는 초등생인 내가 돈 쓸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늘 나는 돈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굣길엔 거쳐야 하는 시장이 있었다. 기다란 시장 통로의 초입에는 가래떡을 대충 숭덩숭덩 썰어 만든, 물엿이 들어가 고추장 양념이 진득하게 들러붙어 더 맛깔스럽게 보이는 떡볶이 가게가 자리했다. 가게를 완전히 지나쳐갈 때까지 내 고개는 그리로 돌아가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 일쑤였다.

아주 가끔, 출근하는 아빠에게 ‘백원만’을 시전하고 얻어 모은 동전들을 가지고 떡볶이 가게로 달려갔다.

아주머니에게 ‘200원어치만 주세요’하고 말하면, 1인분이 아니라 원래는 주문이 안 되는데도 꼬맹이 찬스라며 떡볶이 판 모서리로 떡 대여섯개, 이백원 어치만큼 쓱 밀어주신다.

이쑤시개로 구석에 서서 콕콕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가면 인심 좋았던 아주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동시에, 그때의 추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재래시장은 늘 그러하듯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 가게가 많았다.

통통한 몸을 비비 꼬며 설탕으로 단장한 왕 꽈배기와 달달한 팥 도넛, 동그랗고 고소한 도넛 등, 태생부터 나는 빵순이었는가 싶은 정도로 난 그런 간식들이 좋았다.

그때 맘껏 자주 먹지 못해 그런가, 지금도 동네 시장에 나가면 꽈배기 타령을 하도 해대는 통에 밥 먹기 전에 간식은 안된다는 남편의 잔소리를 듣는다.



용돈벌이하려고 아침마다 아빠 출근 전에 구두를 닦고는 했었다. 좁은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구두약을 솔에 묻혀 쓱쓱 문지른 뒤 흰 천으로 구두 앞머리를 반짝거리게 닦았다.

출근하는 아빠가 깨끗해진 구두 안으로 발을 쏙 집어넣는 걸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자면, 아빠는 몇백원을 구두 닦은 수고비로 주시고는 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이 우렁차게 튀어나왔다.

쩔렁쩔렁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고, 다른 용돈벌이 거리가 없나 고민해보기도 했다.

가끔 친척분들이 방문하는 날은 몇천 원의 용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주는 용돈 없이 손님이 그냥 돌아갈 땐 내심 실망도 하고 그랬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용돈은 차곡차곡 새마을금고 통장에 모았다.

동전들도 모아 일주일에 한 번은 액수가 얼마가 되든 꼭 집 근처 새마을 금고에 들렀다.

직원 언니는 내가 가면 늘 기특하다 칭찬해주었다. 내가 더 열심히 돈을 모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어린 나이였는데 천원 이천 원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참으로 뿌듯했었다.

스스로 장하다고 여기면서 저축을 즐긴 꼬맹이, 그게 나였다.



여덟아홉쯤의 나이었던가.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부엌을 오가면서 보았던, 내내 마음에 걸리던 낡은 프라이팬이 떠올랐다.

오래 사용해 온 그 프라이팬은 코팅이 다 벗겨져 바닥이 할퀸 상처투성이였다.

새 프라이팬을 선물하면 요리하는 음식이 눌어붙지도 않으니 엄마가 덜 불편하겠지 싶었다.

이런 생각까지 한 나를 스스로 기특해하며, 선물 받고 웃어줄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돈을 세었다. 시장으로 깡충깡충 뛰어나갔다.

가게에 가 모아간 돈에 얼추 맞는 프라이팬을 골랐다.

적은 액수였기에 큰 프라이팬은 살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집에 몰래 갖고 들어와 애써 포장도 마쳤다.

동생과 있는 엄마 앞으로 가 선물을 내밀었다. 쑥스러워서 몸이 배배 꼬였다.


고맙다고 받아들며 포장을 뜯은 엄마의 표정은 일순간 딱딱하게 변했다. 화면이 바뀌듯 엄마 얼굴은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덩달아 내 표정도 바뀌었다.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이게 아닌데... 왜 엄마가 화가 났지?' 심장이 덜컹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지 도무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프라이팬을 옆으로 쓱 밀어내고선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갔다.

나는 어색해진 그 자리를 벗어나 얼굴이 벌게진 채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의 표정과 프라이팬을 밀어버리던 그 손이 마음속에 박제가 되어 버린 듯했다.


어린 날의 ‘또 하루’에 깨져버린 마음 조각이 박혔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견고하게 박혀있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다.

그날 이후 엄마의 선물을 준비할 때면 긴장이 된다.

무엇을 해야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할까.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어버이날, 생신날, 명절날 친정을 찾을 때도 고민은 여전하다.

엄마에게 꼭 필요할 거라 생각한 것들을 고르고 골라 마음을 잔뜩 얹어 건네보아도, 엄마는 단번에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늘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라는 곁들인 말들이 따라붙었고, 엄마에게선 고맙다는 말이 선뜻 나오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선물을 하기 위해 들인 나의 시간과 마음은 결국 또 다른 상처와 서운함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냥 자식이 한 선물,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지라도 선뜻 '고맙다, 마음에 든다'고 엄마마음으로 반겨주면 안 되는 걸까?


엄마가 되어보고 나니 종이 한 장에 어설프게 그려온 아이 그림 하나에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뭉클함이 솟는, 마법같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엄마 됨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난 내 엄마의 냉정한 마음이 이해되지도, 굳이 더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선물할 일이 생기면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고르는 정성 따위는 쓰지 않는다. 현금 봉투로 그냥 쓱 건네드리고 만다. 어디다 어떻게 쓰시든 말든 관심을 두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해의 어버이날이었다.

어린 딸아이가 외할머니 드린다며 빨간 색종이로 꾹꾹 눌러 접어 카네이션을 만들고, 용돈을 모아 양말 한 켤례를 샀다. 까다로운 할머니 취향에 맞춘다고, 좋아하실 법한 디자인이라며 나름 머리를 굴려 고른 것이었다.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계산대에 내미는 작은 손을 보니, 나보다 낫구나 싶은 마음에 더 기특하고 예뻤다.

뿌듯한 표정의 아이는 할머니께 선물을 수줍게 전달했다.


집에 돌아왔고,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친정을 찾았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버이날 선물했던 아이의 양말 상자가 우리가 두고 온 그때 그 자리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듯, 외면당한 채 먼지만 잔뜩 쌓여있는 게 보였다. 신기가 아까워서 장식으로 보관해 온 거라고 우겨볼 수도 없는, 누가 봐도 방치된 모습이라 씁쓸하기만 했다.


딸아이가 보고 실망하게 될까 심장이 철렁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나는 그 상자를 다른 데다 안 보이게 치워버렸다.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프라이팬을 선물했던 그날이, 내 딸아이의 인생에서도 재연되는 것만 같았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친정에서의 몇 시간을 견뎌내고 돌아왔다.

마음이 또다시 헝클어졌다.



난 엄마 덕에 선물하는 마음이 고역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준비한 선물을 들고 두근두근 찾아가는 ‘친정’이란 내게 없다.

마음은 빼고, 그저 차가운 것들만이 오가는 그런 명절이며 기념일따위가 난 너무 싫다.



나는 딸아이에게 ‘선물 받는 법’을 가르친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면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일지라도, 그 선물을 고심해서 준비한 사람 마음을 가장 먼저 환대하며 받아야 한다고.

무얼 살까 고민하고 준비한 그 사람의 시간과 마음, 기쁨과 놀라움의 제스처로 선물을 받아주는 마음.

그렇게 주고받는 진심이 서로를 웃게 하는 행복한 순간을 채워주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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