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대해 갖는 미운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나를 매우 힘들게 하는 일이다. 미움의 감정 자체를 겪어내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래도 나를 길러준 분들인데 내가 이러는 건 죄스러운 일이야.’ 하는 죄책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보호자라면서 양육자라면서, 엄마라면서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미워한 걸까? 하는 의문이 늘 머릿속에 산재하면서도, 마음껏 증오하고 분노하지도 못한다. ‘내 인간성이 이토록 별 볼 일 없었던 건가, 나는 가면을 쓴 사람이 아닐까, 다른 이들이 이런 내 생각을 알면 손가락질당할 일 아닌가.’ 이렇게 자신에게 점점 더 실망하게 되기 일쑤다.
내가 글을 쓰며 정리해 가는 과거의 기억들이 어쩌면 굉장히 이기적이고 일방적일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과거 그 시점에서 나는 보호 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어린아이였고, 상대는 자신을 통제하고 객관적일 수 있는 ‘어른’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못이 없다. 어린아이가 어른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스러운 아이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 어른스러움의 다른 말은 곧 ‘너무나 익숙한 눈치’라고 생각한다.
비가 왔던 그날의 기억에도 나는 ‘눈치’ 있는 아이였다.
방과 후 종이 울렸다. 교실 창밖으로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어쩐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를 챙겨 듣는 나이도 아니었고, 살뜰하게 오후의 비 소식을 염려해 우산을 챙겨주는 이도 없었으니, 책가방을 느릿느릿 꾸리며 집에 갈 일을 걱정해야만 했다.
교실 창밖 운동장 옆 교문 부근에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들이 여럿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럴 리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잠시 부푸는 것 같았다. 친구들처럼 고개 쑤욱 뽑아 창밖을 내다보며 내 엄마도 우산을 들고 서 있진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그날 비는 부슬비보다도 훨씬 굵은 줄기였으니 말이다 .
실내화를 갈아 신고 계단 아래로 우르르 몰려 내려간 친구들은 “안녕, 안녕!”, 친구들과 인사하고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간다. 친구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큰 숨을 골랐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가면 온몸으로 저 비를 맞아야 하니까.
‘역시나 오늘도.’ 혹시 하고 기대했던 내 마음이 바보 같았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꼬맹이 걸음으로 20분은 걸렸다. 교문을 나서 여러 골목골목을 책가방 우산으로 머리만 겨우 가린 채 뛰었다. 먼지 섞인 비 냄새와 점점 커지는 숨소리에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날이 지나간 후, 다른 비 오는 날도 엄마의 마중은 없었다. 우산 없이 나온 날은 맞고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 그래서 일기예보가 있거나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먼저 멀쩡한 우산을 맡아야 했는데, 늘 이 싸움에서 언니들에게 밀렸던 아침엔 등교 전부터 눈이 퉁퉁 부었었다.
넉넉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다니는 애들이 몇인데, 우산 하나씩은 각자의 것을 마련해줘야 했던 게 아닌가. 인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비가 내린 또 다른 어느 날, 이날은 내리는 비처럼 맘속에도 비가 많이 흘렀다.
여지없이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엄마가 말했다.
“유치원 끝날 때 됐으니 우산 가지고 가서 동생 데리고 와라!”
뭐야, 종일 집에 있던 엄마는 나 데리러는 한 번도 온 적 없으면서 비 맞고 온 나한테 우산 갖고 동생 데리고 오라고?? 동생 비 맞는것만 걱정되는거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래, 동생은 죄가 없으니까.
어린 동생 내가 잘 보살펴야지. 그 아인 잘못이 없으니까.
동생을 데리러 가는 길은 몸통 한 가운데가 모두 아릿했다.
나도 데리러 와줬었으면…. 교실 창밖으로 우산 들고 온 엄마를 발견하고 기뻐서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아이들 가운데 그중 하나가 나였으면.....
엄마는 늘 이렇게 대 놓고 동생과 나를 편애했는데, 나는 그 부당함에 한마디도 대들지도 못했다.
동생에게 못되게 굴면 엄마에게 혼날 것도 염려되어서도 있지만, 가끔 속으로 얄밉긴 했어도 나는 동생을 미워하지 않았다. 잘 데리고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소꿉놀이에도 끼워주고 언니 노릇 괜찮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간간이 엄마한테 무언가를 일러바쳐 혼나게 만든 여러 날이 생각날 땐 마흔 넘은 동생인데도 가끔 조금씩 얄밉기도 하다.
유년기에서 멀어져 모두 사십 대를 열심히 살고있는 우리 자매들은 간간이 모임을 한다. 강남 등지에서 셋 모두가 모일만한 중간지점으로 적합한 곳에서 아이들 없는 빈 시간, 커피를 마시고 밥을 함께 먹는다. 네 시간 남짓한 모임은 잦지 않지만 속을 적당히 가린 거리감으로 어색함을 지우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각자가 각개전투를 벌였던 유년기로부터 이곳까지 흘러온 우리는,
이렇게 뒤 늦은 만남을 애써 가지며 어린 시절 쌓지 못했던 애틋한 ‘우애’를 겹겹이, 그리고 천천히 쌓아나가는 중이다. 각자의 내면 아이들을 동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