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우리 엄마는 마녀같아요!
고민상담편지 이야기
얼마 전 유퀴즈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온기우체통이라는 것이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삼청동 및 여러 등지에 따뜻한 노랑 몸체를 가진 온기 우편함이 서 있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봤음 좋겠다. 이미 통에 담긴 어떤 이들의 사연을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그 눌려있을 마음들을 헤아려보면서 말이다.
온기 우편함안에 누군가가 고민을 적은 편지를 넣으면 몇 주 뒤, 온기 우체부들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손 편지 답장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사연을 읽으며 울어준 봉사자들의 손글씨 답장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나는 ,익명의 누군가가 편지 보낸 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웬만한 정성으로는 그 시간을 내어주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꾹꾹 공들여 쓴 손 편지 답장을 해 준다는 것이, 그런 서비스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터질 것 같던 마음을 콸콸 쏟아담아 보냈던 한 편지가 있었음이 기억났다. 편지를 보내기까지의 망설임과 진짜 답장이 올까 하는 의구심, 기대감으로 매일 매일 우편함 근처를 배회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청소년 아이들의 고민을 편지로 받아 모두 읽어보고 모든 편지에 늦더라도 답장을 해 주는 ‘고민 들어주는 아저씨’의 서비스였다. 소년잡지에서 본 것인지 어디서 알게 되었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자마자 방에서 몰래 편지를 썼다 지웠다... 수없이 망설이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온 기억이 난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의 고민이 가 닿았는지, 답장은 언제라고 기약은 없었지만, 반드시 오기 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매일매일 우체부 아저씨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하기를 여러 날, 한두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답장을 받았다.
하필 우체부 아저씨는 내가 하교하기 전 다녀갔다. 귀가하자마자 엄마의 호출이 이어졌고, 이유를 모른 채 나는 ‘또 혼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 방으로 갔었다.
엄마 손에 들린 고민 아저씨의 뜯긴 답장이 내 앞에 던져졌다. 엄마는 엄청나게 소리치며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혼냈다.
손꼽아 기다리던 답장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먼저 읽힌 것도, “아저씨, 우리 엄마는 마녀가 분명해요. 저는 너무 힘들어요.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라는 말들을 적어 보냈었다는 비밀을 당사자인 엄마에게 들켜버린 것에도 화들짝 놀라 몸 둘 바를 몰랐다.
무릎 꿇고 그 앞에 앉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되뇌며 많이 울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엄마가 그 편지를 내게 돌려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방에 들어와 아저씨의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많이 힘들구나,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해주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따뜻한 어른의 마음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듯해서, 심장이 터질 듯이 온 몸 쥐어짜며 울었다.
이 모든 게 비밀스레 이뤄졌어야 했는데... 비록 들통이 나서 혼이 났지만 나는 그날, 그 답장의 고마움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몰래 우편함으로 도착하는 내 친구들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뜯었다 다시 봉해진 흔적을 보면서 참 씁쓸했다. 마치 도둑맞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그리고 왜 고민아저씨 답장은 읽고 버리지 않고 내게 돌려주었던 걸까?
가끔 그 의중이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