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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r 27. 2023

나도 누군가에게 또라이라고?

정신적 노화라니요.


"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다.

노안이 신체적 노화의 신호라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정신적 노화의 신호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아주 보통의 행복> 저서의 한 챕터에서 떡 하니 첫 문장으로 적어놓은 글이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또라이이다'라는 제목도 쿵 하면서 다가왔는데, 내용은 좌불안석이 될 만큼  불편하다. 꽁꽁 숨겨왔던 것들을 대놓고 들켜버린 것 같아서,  내가 하고 있는 행동에 마치 이름이 붙여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요즘 나는 sns를 돌면서, 인터넷이나 방송 뉴스를 접하면서, 그리고 오가는 곳에서 듣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그러나' 혼자 걱정하고 한탄하는 시간 총량이 늘어 가고 있다.

내 기준에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많고, 부주의하다 생각되는 언행도 많고, 어쩜 저리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일까 싶은 마음이 들어 속으로 언짢을 때도 많다.


최인철 교수의 말처럼,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극소수의 정상적인 사람과 대다수의 상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믿게 되는 것 같다.

40대의 끼인 세대인 나는 부모님 세대와 그 이상의 노년층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하는 일과, 아직 초록초록하니 한창 영글어가는 중인 MZ세대를 보며 그들의 언행을 이해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다.

아니, 때론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다. 이는 나의 아집이고 독선이고 누군가에게 '꼰대짓거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이 사람은 저런 면이, 저 사람은 이런 부분이, 참 이상도 하다 싶은 구석들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이 모든 게 "정신적 노화"의 신호라고 하니 씁쓸하다 못해 마음이 미어진다. 인지도 하지 못한 사이에 시나브로,  정신적으로는 생물학적 나이 훨씬 그 이상으로 나이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딸아이가 그랬다.

'엄마랑 이야기하면 정말 짜증 나!"라고.

서로 투닥거리는 와중에 오고 갔던 말들이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절대 아이를 이해 못하는 답답한 부모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는데, 내 의지와 달리 정신은 그리로 흘러가버리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었다. 이러다 아이와  멀어져버리는 게 아닐까 염려가 깊어진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에는 서른두 살의 나이 차가 걸림돌인 걸까?

'이상해' 말버릇을 습관처럼 시전 하는 '이상하게' 꽉 막히고 베베 꼬인 내 마음이 더 큰 문제일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아는데  필요한 정보량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상대를 안다는 확신이 커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한다. 타인을 파악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이미 알고 지낸 사람에게는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을 알기 위해 취하는 노력보다는  훨씬 소홀해지는 게 사실인 듯하다.

이미 과거에 상대에 대해 취했던 정보들은 현재에는 무용지물인 거짓정보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변해가는 상대의 모습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냥 알고 지낸 그대로, 과거의 그 사람으로 현재의 그 사람을 바라보니, 오해도 편견도 생겨나고 그 사람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상황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헤아려, 사람을 대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시선 한 가지를 드리워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서 '저 사람은 왜 저래', '이 사람 참 별나네', ' 완전 또라이네','사람이 변했네, 이상해', 등의  타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들이 늘어가고 있진 않은지 자가점검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요즘 행복하지 않은 감정에 오래 머물렀던 건 아닐까 되돌이켜보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휘둘리고 있다 보면 말은 날카로워지고 눈빛은 매서워지고 생각엔 날이 서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선 부처도 예수님,그 누구에  대한  평가도 박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을 좀 내려놓자.

너무 쪼이지도 너무 나태해지지도 말자. 남을 흉보고 평가하고 저울질할 시간이 없을 만큼 내게 충실하자.

관심 있는 목표와 관심 주어야 할 대상에게 좋은 기운으로 주의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것이 더 보이고 밝은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내 마음의 공간도 다채롭게 채워져 갈 것이다. 생기 있는 날들을 살게  것이다.

정신적 노화 따위 내겐 무관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어',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리자.

너무 맞지 않는다면 굳이 부딪히지 않으면 될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굳이 어떤 마음도 머물지 않으면 된다.

 정신적 노화가 한창 진행 중인 '또라이'같은 직장 상사든, 가족 중의 누군가이든, 동기 중의 하나이든 그 사람의 마인드에 물들지 말자.



때때로 자가진단체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등교 전에 학생들이 자가진단 앱으로 오늘의 건강상태를 매일매일 체크하듯이.

내가 혹여나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해 , 또라이 천지 세상이야 "라는 말을 내뱉게 된다면, 얼른 정신 차리고 나도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보이는 '또라이'일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누구의 기준이 가장 옳다 도덕적인 판단을 하거나 어떤 기준을 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화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사고를 너그러이 수용해 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굳이 층을 지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알파벳과 폄하의 의미를 섞은 줄임말 등의 '무슨 무슨 세대'로 명명하는 일, 굳이 층을 나눠 구분 지어 조롱과 비아냥을  밖으로 토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우리는 지금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그냥' !

 마구마구 기분이 좋아지는 "좋은 사람"이 되자.


여지껏 살아온 시류를 회고하고  그 시대를 살기위해 견지해야 했던 자세들을 이해하자. 완벽히  다르게 '주어진 세상'을 사는 젊은 자세들을 눈여겨보자.

지금 살아가고있는 세상과 앞으로 누리게 될 문화의 새 기류를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넘쳐나는 좋은 사람들'과 나를, "함께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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