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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r 26. 2023

'봄'을 살기



하루 이틀 사이에 바깥 풍경이 바뀌었다 ,

산뜻하지 못한 대기의 희뿌연 색깔 속에서, 겨우내 애써 준비했을 자신들의 결과물을 마치 전시하듯 피워내는 나무들이 고맙고도 반가웠다.

이왕이면 그들을 맞이하는 하늘이 좀 더 파랬으면 좋았을텐데...

이왕이면 살랑 부는 바람이 먼지 한 톨 없이 청정함이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들이 내민 선물을 이렇게 그냥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미안함이다. 

사람이 망쳐버린 '사람과 자연'의 세계. 이 고마운 자연의 이름이 언제까지고 지금까지의 모습일 수 있으련지 들려오는 기후 위기, 환경 위기의 소식들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다시 보지 못할 날들이 가까워지는 것만 같아 불안함이 자꾸 자꾸 자라난다 .




어릴 적, 옥상에 올라가면 정사각형 모양의 널따란 평상이 있었다. 

밤에 올라가 그곳에 눕는 것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통통 배를 튕겨대다 그 위에 벌러덩, 양 팔을 대자로 벌리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짙은 곤색같기도 하고 어둡게 푸른 보라색같기도 하고. 검은 바탕의 끝도 없이 펼쳐진 도화지에 점점이, 별별이 '반짝이는 것'들이 무수히 떠 있었다. 

눈에 다 챙기지 못할 너무나 많은 보석들이라, 금세 가슴이 터질듯 벅차오곤 했다. 감동이란 단어로 설명하기엔 모자라는 그런 감정.

끌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다보면 정말 나도 '별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사계절의 모든 밤, 모든 별을 사랑했었다. 


밤하늘은 어린 나에게 모든 상상을 무한히 그려낼 수 있게 했던 특별한 세상이었다. 현실과 다른 무엇인가를 그려내면서 작은 마음속에 무한한 것들을 담고 행복한 꿈을 꾸었다.



밤하늘은 별을 보고 등교하고 별을 보고 하교했던 학창시절의 지킴이었다. 

새벽 공기 저 꼭대기에 유난히 반짝이던 별들과, 밤 늦게 독서실을 나와 터벅터벅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적 없는 길을 내리비추던 별들은 나를 지켜주는 수호의 눈빛들이었다.


밤하늘은 절로 먹은 나이 탓에,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외로웠던 시간들을 위로해주는 소리없는 대화상대였다.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들을 가까스로 참아낼 때 올려다보던 까만 하늘이었다 . 점점 예전의 촘촘히 박혀있던 별들은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 저 편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괜찮았다.

보이지 않을 뿐 느낄 수 있었다.



봄도 그러하다. 

어릴 적 평상에서 많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올려다보았던 까만 밤 희고 밝은 별들이 느끼게 해 주었던 것처럼 봄도 그러하다.

모든 생각, 모든 고민 나를 칭칭 둘러싼 오래도록 묵은 무거운 것들을 잠시 잊고 '그냥' 둥둥 마음이 들뜨게 만든다 .

괜시리 긴장되고 설레고 흥분된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감정이 몽글몽글 솟아나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속에 늘어간다. 

미뤄왔던 안부를 전하는 일도, 경직된 얼굴 근육을 풀고 미소 짓는 일들이 많아진다. 

평소 하지 않던 감탄사도  자동반사적으로 내뱉게 된다.  잊고 있던 내 얼굴들이 살아난다. 


'봄의 얼굴'이 우리 얼굴에 스미는 찰나의 시간이다. 

짙고 연한 사랑스런 분홍, 세상 쨍한 노랑, 보들보들 부드러운 하양, 귀엽게도 싱그러운 연두빛이 넘쳐난다. 

가장자리에서부터 안으로 또 안으로 색깔들이 우리 마음에  물들어온다.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꽃그림이 가득 든 무거운 책 한권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 어제는 보지 못한 꽃들이 또 피었다. 

내일이면 더 활짝 피겠지, 내일이면 저 나무도 뭔가 피워내겠지 기대의 한 마디를 하게 된다. 

꽃구경이 목적인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기분좋다. 

또 훌쩍 지나버릴 이 시간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챙겨먹을까 고심하게 된다. 


오늘 지나고 새로운 월요일이 되면, 좀 더 발걸음을 가벼이 해 볼 생각이다.

까짓것 마음이 동하자마자 발부터 내딛을 셈이다. 가고픈 곳 찾고픈 곳 망설이지 않을 작정이다.

늘 오는 봄이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아까운 봄이다. 


고마운 봄이 주는 이 에너지, 밝은 기운을 듬뿍 담뿍  챙겨넣고 "올 해도 잘 살아보자"고 "이 꽃들처럼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나의 봄, 나의 계절.

그러고보니 3월의 마지막 날은 내 생일이다.  

한창 '진행중'인 봄에 태어난 나는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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