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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r 22. 2023

'흡족'한 삶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의 저서 < 아주 보통의 행복> 에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꼬리 무는 생각들이 있었다. 

"행복"이란 말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 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명칭에는 행복의 감정 자체, 그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조건'들을 지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행복이란 말에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면 감정 그 자체에 충실한

 '흡족'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추천이었다. 


'흡족'의 사전적 의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여 만족한다'는 뜻이다. 

행복의 실체를 이야기 하기에 훌륭했다. 만족이라는 의미 그 이상을 넘어 '이거면 됐다. 충분하다'는 그런 편안한 마음이 담겨있다고나 할까. 

만족이란 말에는 욕심이 담겨 있다.  그 정도면 만족하며 살라고 꾸짖는 것 같기도 하고 체념시키는 말 같기도 해서 가끔은 마음 상하는 말이 되기도 하는 그런 말. 


'흡족'이란 말은 편안하다.

남의 시선과 잣대가 아닌 , 오로지 그 기준이 '내'가 되는 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은 남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 뿐 자기 자신을 흡족하게 할 수는 없다'는 글귀가 와 닿았다. 

오직 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의 충만한 감정, 그것이 바로 흡족함이다. 

이는 돈이나 명예, 혹은 물질적인 것들을 갖춤으로써 주어지는 만족감이 아니다. 유행이나 편견, 관습에 끼워맞춘 '라벨링'이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있어 별다른 이유들을 줄줄이 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그냥"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들.




흡족(洽族)은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을 때 '산이 거기 있어서'라고 답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흡족이다. 


흡족은 성장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다.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에게 왜 아직도 매일 연습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내가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것으로 본인의 행복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어느 면에서 예외는 아닐것이나 정도가 지나친게 아닐까 싶은 사람들을 보게 될 때면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어린 마음이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흉보며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렇게 남들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치장하는, 그 사람들의 피로도가 먼저 떠올라 걱정스런 마음이 먼저 따라온다. 


반성에서 오는 성숙함일는지도 모르겠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사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견지하고자 한다.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내면세계만으로 충분히 '흡족'한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하루빨리 깨닫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번주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학부모 총회가 열린다. 

인터넷 기사에서 학부모 총회를 참석하는 부모들의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명품백 하나씩은 걸치고 가야 하고, 머리도 옷차림도 신경써야 한다는 날이 총회다. 

샤넬은 너무 과하고 구찌백 정도는 들고 가야 한다는 말들을 마치 총회 패션의 정석인냥 떠들어댄다. 비판하는 기사를 보면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학부모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총회에 앞서 삼삼오오 모여 백화점으로 명품백 쇼핑을 가기도 한다 하니, 재밌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마치 필수품인 것처럼 조장하는게 오히려 이런 기사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나도 중학교 학부모 총회에 참석했다. 

최대한 신경 안쓰고 단정하고 깔끔하게만 가자 했다. 명품백을 들고 나서는게 외려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인지 어떤건지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은 소탈하고 편안해서 좋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솜솜 뜯어보지 못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눈에는 편안함만이 보여서 안심이 됬다. 

그런 호들갑에 휘둘리지 않는 '학부형'들이라서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물질'로 사람을 재단하는 들썩들썩한 풍토가 가라앉으면 좋겠다. 

들고 다니는 BAG의 가치가 그 사람의 가치는 아닐지언대, 스스로를 BAG 브랜드 가치 기준에 빗댈 평가 대상으로 내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인터넷 기사를 보자마자 떠오른 드라마 대사가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안 본 이가 없을 정도로 핫한 '더 글로리'의 연진이가 혜정에게 비아냥대며 했던 말이다. 

"모시고 살 가방을, 그러게 왜 사?"


이왕 샀으면 휘뚜루마뚜루 본연의 기능 그대로 '가방'처럼 들고 다녔으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만족'이 아니라 '흡족'의 상태로, 이 좋은 봄날  행복하게 이곳저곳 들고 다녔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부러워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부끄럽다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기를. 

내 지금의 상태에 진심으로 '흡족'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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