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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Apr 06. 2023

벚꽃은 지고, 그리고...

유난히 빨리 찾아온 개화의 시기. 올 해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개나리와 벚꽃, 목련이 동시에 만개했다.

예정된 날짜보다 훨씬 일찍 꽃이 피어버린 탓에 꽃 축제들은 열린건지 못 열린건지 알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예보된 비 소식에 석촌호수 주변을 미리 다녀왔다. 가장 아름답게 만개해있으려니 하고 갔는데, 유난히도 따뜻한 봄볕에 꽃잎들은 비가 되어 내리고 그 자리엔  초록초록한 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루이틀로 반짝 하고 지나가 버린 벚꽃축제가 아쉽기만하다.

꼭 필요한 단 비인 것을 알면서도 괜시리 속상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개나리가 지천에 피는 것을 보며 '진짜 봄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흐뭇한 며칠을 보내고 있자면, 다음 차례는 벚꽃이었다. 하얗고 뽀얀 꽃잎을 올망졸망 모여 피워내 덩어리로 송이송이 뭉쳐 있는 모양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몸도 떠오르는것 같은 그런, '꽃의 계절'.

하루이틀만에 그리 후딱 지나가버릴지도 모르고 안타깝게 보냈다.

올 해는 꼭 안양천의 흐드러진 벚꽃 터널 아래를 산책하리라 단단히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오늘의 이 비가 지나면 아마도 꽃이 지나간 흔적만을 볼 수 있겠지.


며칠 전 뉴스에서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화재 소식을 들었다. 너무 내가 사는 서울만을 들여다보고 살았나, 벌겋게 불타오르는 산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찌르르 하니 속상했다 .

등산객들의 꽁초에서 비롯된 인재이든, 관리 부실로 인한 사고이든, 자연 발화이든  화재로 인해서 그간의 '나무들의 인고'가 싸그리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게 마음 아프다.

추위 더위를 매 해 견뎌내며 계절을 거듭한 그 수 많은 세월들이 단 몇시간만에 그저 재로 돌아가버린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저 타오르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삶의 터가 그곳인 사람들의 삶은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시뻘겋게 타고 있는 산 줄기와 울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을 보면서  순간, 꽃 놀이를 더 많이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는 나의 생각들이 얼마나 가볍고 이기적인 것인지를 생각했다.

번져오는 불길에 집을 잃고 임시 거처에서 끝이 어딘지 모를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고,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내 모양새가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어려움을 보고도 아무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내 무거운 몸뚱이에 자꾸 더 실망하게 된다.

그들의 사고를 내게 그대로 가져온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을까. 저들의 마음을 이러한 '가정'으로 감히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을까.


곳곳의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겠지  그러나 피해입은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이들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입으로 가벼이 한 마디로 전하는 안타까운 탄식과 연민이 모여 과연 어떤 '행위'를 얼마나 이끌어내고는 있는걸까 .


나는 우리가 타인의 불행에 대해 때로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말 한마디로 마치 할 도리 다 한 것처럼 자족하는 마음으로 , 저들을 연민할 줄 알고 그들의 마음을 마치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착각하면서, 스스로를 좋은 사람의 편에 슬쩍 들이밀어 넣고 있는건 아닐까 .


한 쪽에서는 웃으며 따사로운  봄 꽃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다른 저 편에서는 삶의 터전을 싸그리 잃고 울고 있다. 

큰 강당, 텐트로 만든 임시 거처에서 당장 돌아갈 곳 없이 기한없는 그러한 힘든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 그 양쪽의 장면이 동시에 이미지로 떠오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있는것은 아닐것이다. 설사 도움을 더한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내 즐거움만을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것. '이외의 것'들에 늘 관심을 두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 일'이 아닌 일들이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두려움과 막막함에 지레 가슴이 답답하다.


사십대의 중반을 신나게 달리고 있다보니 자꾸 작은 다짐들을 하게 된다. 이제는 말 뿐이 아닌 무언가의 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

누군가들이 이미 모여 행하고 있는  '덩어리진 공생의 마음'들에 내 마음 하나도, 내 손 하나도 얹으며 살아가자는 다짐.


벚꽃 지는 것을 보며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되었지만,

이미 져 버린 봄꽃들이 아쉬워도 어제오늘 내리는 비에 전국 이곳저곳의 산불들이 진화되었다는 소식으로, 나는 안도하고 또 기쁘다 .


부디 이 좋은 계절을 다 같이 웃으면서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웃음과 행복감이 다른 누군가에게 더 큰 시름과 절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의 비가 다 내리고 나면, 또 다른 봄꽃의 개화를 찾아가야지. 그리고 작은 도움하나 어딘가에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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