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Su Apr 10. 2023

너를 믿어준다는 것

아이의 책상정리를 하다가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아이는 평소 기상 시간보다 30분 더 일찍 깨워달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눈을 뜨고,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식사를 하고, 교복을 입고 머리단장을 마친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았다. 30분의 남는 시간 동안 미처 마치지 못한 공부를 하다가겠다고 했다. 기특한 일이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휴일인 어제 왜 깔끔하게 다 마쳐두지 못한 건지 꾸짖는 마음도 빼꼼하니 새어 나왔다. 이번주 학교 과제는 다 완수해 가는 건지, 준비물이 있는데 혹시 빼먹은 건 아닌지 이런저런 확인 절차에 잔소리가 하나씩 추가되는 아침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목소리에 메아리처럼 되돌려주는 말은 실내화 가방, 물통, 핸드폰을 챙겼는지를 체크하는 말이다. 오늘도 "아! 실내화 가방! 땡큐~"를 외치며 현관에서 되돌아오는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잔소리 폭격이 나갔다. 아침 공부까지 한다고 일찍 기상한 아이가 기특했던 마음은 그새 어디로 사라지고, 등교하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싫은 소리 한마디 하는 내가 갑자기 꼴 보기 싫었다. 그래도 내가 미리 확인해 준 덕에 실내화가 없어 학교에서 전전긍긍 불편해질 일은 없을 테니, 나도 한시름 덜은 셈이다.


남편과 딸이 집을 나서고는 청소의 시간이다. 아이 책상을 정리하다가 책꽂이 부분에 붙여 놓은 메모지들을 보게 되었다. 그새 몇 장이 더 늘어있었다. 뭐라 뭐라 쪼그맣게 적어둔 메모들이 깜찍했다. 거기엔 내가 조언해 주었던 내용도 적혀있고,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이 시험 대비에 대한 절차 등에 대해 말씀하셨던 팁들을 정리해 둔 것도 있었다. 스스로 적은 주간, 주말 공부 계획과 작은 다짐 같은 것들도 적혀 있었는데,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울컥하여 무언가가 몸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잔소리로 일일이 확인하고 다짐받지 않으면 틈이 많아 훌훌 이것저것 흘려버릴 것 같았는데, 아이는 내가 아는 훨씬 그 이상으로 훌륭하게 잘해나가고 있었구나. 믿지 못한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따다다 듣기 싫은 소리들을 아이의 온몸에 대고  쏟아붓고 있었구나 싶어서 미안함에 서글퍼졌다. 억울할 법도 했을 것 같다. 그런데도 큰 소리로 억울하다 속상하다 엄마에게 되돌려주지 못했을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너무나 미고 엄마로서 한심했다.


그리고 십 대 때의 나를 떠올렸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저런 고민 많았던 나도 책상 벽 한가득 학업 스케줄, 나의 다짐, 명언 등을 군데군데 붙여 둔 채, 공부하는 중간중간 그 메모들을 한 번씩 읽어보았던 기억.  어려웠지만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았던 그때, 아이도 그때의 나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것들을 챙기속마음을  굳게  다져가면서, 선생님들 말씀을 귀담아 들어가며 자신의 방향을 조정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하교하는 오후에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두어야겠다.  예전보다 자주 써주지 못하는 편지글도 오랜만에 써서 학원 가방 안에 몰래 넣어두어야지.

 아이를 온전히 믿어주지 못하고 평가절하했다. 

서운했을 말들과 행동이 떠올라 가슴이 찌르르하다.

언제는 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외쳐대 놓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공부했니, 숙제했니, 과제했니 따다다... 시계 들여다보는 일이 부쩍 잦아진 내 모습을 반성한다.


지금의 이 마음도 좀 길게 갔으면 좋겠다.

아이의 시험과 평가 일정에 맞춰 또 널 뛰게 되겠지만, 믿어주는 마음 하나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온몸의 무게를 실어 꾹 누르고 무거운 돌덩이로 눌러 덮어두어야겠다. 묵은지 익어가듯 그 안에서 아이도 나도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은 지고, 그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