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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Apr 18. 2023

급성 위경련이 몰고 온 생각들

간 밤에 급성 위경련이 찾아왔다.

종종 있던 통증이지만 그게 무언지도 모르고 그냥 배앓이로만 치부했던 것들이었다.

복부 위부터 갑작스레 찾아든 증상은 금새 배 전체로 옮아갔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라 공벌레처럼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밤에 혼자 집까지 걸어오게 한다는건 영 내키지 않는 일이다. 내겐 고작  열네살 '아가'일 뿐이다 .얼른 이 증상이 나아져야 데리러 나갈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식은 땀이 흐르고 울 것 같았다. 아파서 쭈그리고 우는 이 모양새라니 구차하고 참 볼품 없단 생각이 순간 들었다.


술자리 약속이 있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자리로 이동하는 중간에 건 전화였다.

너무 아프다는 울음 섞인 목소리를 전해들은 남편은, 왠일인지 바로 오겠다고 했다.

이전의 경험으로 심한 경련이 지나간 후에는 곧 괜찮아지곤 했기에,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려다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다.

참고 있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배 아프다고 울다니! 잘 참아내는 내 성격에 이 날 밤은 좀 별났다.


고통이 조금 가시고 난 순간 마침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저기서 내 걱정을 하며 뛰듯이 걸어올라오는 아이 모습이 보였다. 전화를 끊고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안았다.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경련이 찾아온건지 그것도 미안했다.

곧 잔소리가 시작될 것이었다. 가끔은 날 챙기고 단도리 하는 아이가 언니 같을 때가 있다. 쬐그만게 저런 마음을 갖다니 기특해서 흐뭇하다.


불콰해진 얼굴로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며 나를 찾았다.

"엄마는 어때?" 하고 아이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배 전체에 찜질팩을 대고 누웠는 나를 찾아 방에 들어와선 스스로가 매우 대견한다는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아프대서 2차 술집 안가고 바로 왔어, 잘했지?"


뭔 바람이 분건지 , 요즘 이 사람도 동반자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생각이 많아진건지...

예전같으면  "쉬고 있어" 한 마디로 할 일 다했다는 듯 웃으면서 술자리를 계속 이어갔을텐데 말이다.

그 말하는 모양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웃었다.

아픈 김에 간만에 응석 좀 더 부려볼까, 배를 쓸어달라고 말했더니 따뜻한 손 바닥으로 슥슥 밀어준다.

내 손으로 직접 할 때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손 바닥 면적이 아무래도 더 넓어서 그런가. 쑥스러운 마음 숨기고 눈을 감은 채, 돌봄 받는 어린아이마냥 흐뭇하게  마사지 타임을 음미했다.


그러고나서도 한 두 번 남편을 더 호출해야 할 만큼 경련은 몇 차례 더 찾아왔다.

내가 항상 긴장 상태에서 살고 예민한 기질인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자기가 신경쓰일 일, 걱정할 일 없게 알아서 다 처리하며 살터이니 제발 쓸데없는 걱정일랑 내려 놓고 마음을 편히  살라고 말한다.

고민해봤자 당장 해결될 일이 하나 없을 ,쓸데없는 '미리 걱정'이 내 속에 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는 건 바로 나란 걸 안다. 버거워서 미치겠으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찌질한 이 천성, 도대체 어찌해야하는지...


경련이 지나간 후 잔 통증을 달래는 찜질을 하는 동안, 낮에 서점에서 사온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을  읽기 시작했다.

칙칙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시작된 화자의 이야기에 어느 부분 자꾸 마음이 가 닿았다.

이 책은 왠지 내게 남다를 책이 될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때, 나는, 내가 참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금이 간 유리바닥처럼, 겉보기엔 멀쩡한 살얼음처럼...작은 돌 하나의 무게에도 순간 훅 하고 깨져버릴 것 같은,그런 상태가 되어버리는 나를 자주 겪곤 했었다.

인간 실격의 화자가 하는 말들이, 그의 무너짐이 찌르르한 전기 신호를 주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남편의 당부대로, 가벼워지는 날이 있겠지.


부던히 이렇게 글을 쓰며 숨구멍을 뚫어내는 일들이,

편히 숨쉬고, 좋은 꿈을 꾸고 , 나도 모르게 잔뜩 준 힘들을 가벼이 털어낼 수 있는 과정에 이미 나를 들여놓은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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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저는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참 행운아라는 말을 정말이지 자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나한테는 재난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즉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의 괴로움의 성질과 정도라는 것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열 개의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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