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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y 16. 2023

함께이길 원하면서 또 따로이고싶은.

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엄마아빠와 떨어져 2박 3일의 여행 중이다. 불행인지 다행인건지 코로나로 선배들은 가지 못했던 수련회를 간 것이다.

3주 전부터 가져갈 캐리어를 꺼내어 놓고 안에 담아갈 물건들을 매일 챙겨대더니, 결국 어린이날 (아직 만 13세이므로 어린이라고 주장하심) 선물로 노랗고 이쁜 캐리어를  다시 사더니 또 다시 그 이후의 매일을 짐 싸는 설렘으로 보냈다.


스무살까지 엄마아빠에게 '어린이'할거라고 당당하게 선포한 아이는, 아이 말대로 아마도 그 나이까지 분명 나에게는  어린아이일 것이다. 30대가 되어서도 40대가 되어서도 늘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수학여행은 걱정걱정걱정이 이렇게나 앞서니 말이다.


수학여행 출발 전날, 나도 그 시절 그러했었듯 집에서 떠나 있을 며칠 간의 일정에 아이의 심장은 벌렁대듯 떨렸을 것이다. 친구들과 재잘대며 수줍음을 뚫고 방방 뛰어댈 아이모습을 상상하면 나 역시 걱정은 내던지고 마냥 설레버린다.

아이의 첫 '출가'가 아무쪼록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꽉 들어찬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의 수련회 일정에 맞춰 나 역시 혼자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제주에서의 북 스테이를 꿈꾸었고, 뚜벅이 여행이 될 것이기에 책방스테이가 가능한 곳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어제  제주 세화리 마을에서 첫 밤을 보냈다.

이 곳은 한적하고 차분한, 새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다.

걸어 5분 거리에는 해변이 있어,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겸한 길을 차분히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와 바다뷰가 멋진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 새벽엔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조금 늦은 기상으로 이미 해가 올라있었다. 아쉬움을 얼른 감추고 바다를 옆에 둔 길을 뛰러 나갔다.

수욱 올라온 해가 눈부셔 시리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제주의 아침에 사람 없는 길을 따라 이렇게 뛰고 있다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 있는 아이가 보고 싶고, 혼자 집에서 출근 준비할 남편생각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이 홀홀단신의 편안함과 평안을 극강의 환호로 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행복하다.

잠시 쥐어진 이틀의 시간, 먼 곳에서 홀로 갖는 선물의 시간동안  나는 많이 행복해 할 것이고 온 몸에 한껏 들어가 있던  힘도 많이 빼 버리고 지낼 것이다.

느슨하고 느릿한 시간을 제대로!마음껏 즐겨볼 생각이다.


조깅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절인 용문사에 들렀다.

열린 나무문 안으로 성큼 들어서니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선 관세음보살님이 계셔 합장하고 이것저것 빌었다.

혼자인게 지금 이토록 행복했으면서,

나는 태안에 있을 아이와, 우리의 보금자리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을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가끔, 진정으로 '따로'이길 원하면서도

난 또 이렇게 함께이기를... 행복한 우리가 함께이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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