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갤러리의 확장은 왜 민간 사업에 방해가 되는가
(1월 초 페북에 갈겨썼던 글 정리 및 수정/삭제/첨가)
총선을 앞두고, 또한 곧 있을 공무원들 대거 인사이동을 앞두고 전시행정에 기반한 여러 보여주기식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창업을 했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고객의 목소리만 들으려고 하지만 산업군 자체가 아직은 정부의존적(좋은 거 아님)인 약소한 바닥이라 그런지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고 여기저기서 자문을 요청받다 보면 목소리를 안 낼 수가 없게 된다.
'남들이 뭐라건 내 갈길을 가련다!'하며 아무도 몰래 나만 속에 묻고 가는 얘기들이 참 많지만(그 덕에 어쩌면 내가 야인처럼 살아남은 걸지도) 벌써 x년 x달 지난 에피소드라 한 마디만 얻고 가려 한다. 쓰다 보니 열마디 되긴 했지만.
농림부 고위관계자가
전통주 갤러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운영해 볼 생각은 해 본 적 없느냐?
전통주 갤러리를 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에도 여러개 만드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
고 반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의외로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던데 전통주 갤러리는 정부에서 나라장터에 입찰을 올려 운영대행사를 선정해 진행되는 농림축산식품부 사업이다. 최초 종로 인사동에 오픈했을 때부터 최근 슬로푸드 관계사로 대행사가 바뀌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공개되는 회사명과 외부로 알려지는 이름은 바뀌었지만 비슷한 단체들이 주최를 했었다. 뭐 사실 대부분의 정부사업들이 그렇기도 하다. 정권 바뀌면 우수수 떨어지고 바뀌고 하는 게 비단 여기만의 일은 아니란 얘기지.
이에 대해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이나 그때나 내 의견은 다를 바 없다. 다소 시간이 흘러 가물가물 하다만 그때 했던 얘기를 기억을 더듬어 지금의 언어로 풀어 써 본다.
"그건 지금 열심히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사업 영위 중인 업계 사람들 죽으란 소리다. 다들(실제로는 외식업/유통업 등 알만한 업체들 구체적인 이름 나열하여 언급)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전통주 알리고자 노력하는데 전통주 갤러리처럼 정부지원 하에 무료로 술 마시고 시음하고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면 자금력 없는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살아남느냐?
지금까지 생존하여 영업하는 전통주점들 봐라. 시장 규모가 작은 이 바닥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살아 남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들 고군분투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학계에서는 '전통주 고급화'를 외치면서 막상 무료로 시음에 기념품까지 주고 마진도 거의 없이 판매까지 하는 곳을 전국에 만들자니, 전통주로 새로운 기회를 엿 보는 시장을 완전 기죽이는 일 아닌가? 지금이야 강남 1군데지만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 생긴다면 외식이나 유통 뿐 아니라 파생 산업인 관광도 체험도 다 민간에선 살아남지 못한다. 아님 정부사업에 기생해야만 살아남거나.
지속가능한 시장의 성장을 생각해 보자. 정부 지원이 없으면 그때는? 시장에서 전통주는 그냥 공짜로 마시고 즐기는 술이 되는 것 아닌가? 외국인들은? 전통주처럼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공짜로 풀어 버리면 좋은 관광 자원 갖다 남좋은 일 시킬 텐가? 한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시장경제에서 고객이 돈을 안 쓰면? 정부 예산은 언제까지 나올 텐기? 특히 전통주 생산은 2차 산업인데 1차 산업군도 아닌 사적 욕망 사업 기반의 제조군 부흥에 언제까지 정부의 지원이 가능할 건가? 전통주로 가능한 3차 서비스, 그렇게 부르짖는 6차 산업도 같이 주저 앉는다.
지금 전통주 유통업이 싸그리 죽은 이유를 알지 않느냐? 한치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자. 2012년 부터 시장을 분석했고 2014년에 창업해서 이 시장이 커지는 걸 지켜봤고 또 나름 리드했다. 이제 막 시장성이 생기려는 곳에 정부가 들어가면 그건 야생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온실에 옮겨놓고 다시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밖에 안 된다."
물, 공기, 바람, 교통처럼 정부의 지원과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가 있고 술이나 담배처럼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위험한 기호 및 독극물에 기반한 산업들이 있다. 쌀 소비를 위한 전통주 진흥의 관점을 분리하지 못 하면 쌀 농사와 전통주 산업은 둘 다 죽는다. 전통주 산업군은 농림부 '진흥' 정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전통주 산업군에서 국세청은 주세를 위해, 식약처는 위생을 위해, 농림부는 진흥을 위해 일한다. 그러다 보니 3자의 이해관계는 어느 부분에선 매우 상충된다. 식약처는 낫을 든 저승사자의 역할을 주로 하고 국세청은 감시하는 역할과 주세법에 관여 한다면 농림부는 부흥시키는 사업을 주로 펼친다. 정부의 역할이 어떠하든 좋은 제품을 알아보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건 소비자의 몫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업을 운영해 보니 사람들은 어떤 난제가 있더라도 좋은 제품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돈을 쓴다.
인터넷상의 어떤 이슈와 바이럴로 제품이 품절되는 양조장들도 여럿 본 적 있다. 지원금이 없거나 정책상의 문제만으로 살아남지 못할 곳이라면 도태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할지 모른다.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정부지원금은 소위 "지방토호세력"이라 일컬을 수 있는 지역 유지나 정치 커넥션이 있는 단체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므로 무조건적인 사업화 지원이나 시설 지원, 자금 지원은 지양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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