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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l 18. 2021

행복 탄력성을 기르는 연습

미적분의 행복학


어제는 아침 8시 부터 조찬회동 겸 미팅이 있었는데 어제 만난 사람들 모두에게 “당신을 만나 행복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어제 호스트 하는 동안 술다방에 온 분들 중 20대 남녀 사람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였는데 마침 같은 과, 같은 대학을 가게 되어 10년 넘은 친구라며 오랜만에 만났는지 둘이서 이런저런 얘길하더군요. 그러다 문득


대표님은 행복하세요?


라고 묻더군요. 저는 다시 물었죠.


“행복이란 뭘까요? 행복한지 아닌지 답하려면 행복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둘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술펀 대표인 제게 이런 장면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면접 보면서 종종 마주치는 상황이거든요. 인생의 가치관, 삶의 철학을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를 물어봤을 때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행복은 사람마다 전부 다를 수 있잖아요? 자신의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주 행복한지 아닌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원래 ‘고’예요. ‘고’를 디폴트로 상정하고 행복을 미분하면 행복이란 건 매우 찰나적인 순간이죠.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고 행복은 그리 오래가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행복한 걸요. 아무도 안 와서 이불킥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이렇게 말 잘 통하고 멋진 훈남훈녀들이 와서 같이 술도 한잔 말아 드리고 너무 행복해요.”


(편의상 두분을 우동이, 별이라 칭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별이가 그러더군요.


“아 맞아요! 저는 일할 때 행복해요.”


그랬더니 우동이가 “퇴근할 때 아니고?”

그러자 별이는 


그 두가지는 다른 종류의 행복인 것 같아.


(이어서) 일할 때는 아이디어였던 무형의 것들이 실현되어 나오는 게 너무 기뻐. 대표님도 200미리 이거 만들면서 행복하셨죠? 저도 그래요. 내 머리 속에만 있던, 생각만 해 본 기획들이 결과물이 되어서 나오면 행복해. 그런데 퇴근할 때 행복은 좀 달라."


별이 말을 제가 이어갑니다.


"그렇지. 퇴근할 때 행복은 뭐랄까, '아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냈구나, 별 일 없이 끝났다, 오늘은 어떤어떤 일들이 있었구니, 오늘 하루도 잘 해 냈어' 이런 느낌?"


(둘이 동시에) "맞아, 맞아요!"


두 여자의 입담에 감탄사만 날리며 듣고만 있던 우동이가 다시 말을 꺼냈죠. 참고로 우동이는 오자마자 팀장과의 갈등에 대해 볼멘 소리로 불만을 쏟아낸 참이었습니다.  


"음 저는 한번도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요. 생각해 보니 저는 제가 못 하던 걸 해낼 때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못 하는 걸 하나씩 적어놓고 실행해 보는 걸 하고 있어요. 이를 테면 운동하기, 악기 연주, 춤 추기, 이런 것들이요! 제가 이렇게 얌전하게 보여도 막 엄청 비트 댄스 잘 추고 싶고 열정 포텐 뿜뿜이거든요."


"코로나라서 밖에서 하긴 힘든 것들이네. 집에서 홀딱 벗고 춤 춰 봐요 ㅋㅋㅋ" (이 대사는 접니다, 물론)


다같이 깔깔 웃으며 건배를 하며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우동이와 별이를 보며 라떼답게 저를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저야 말로 40이 되기 이전에는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행복이란 뭔가 거대하고 그럴싸한 거라 막연히 생각했고, 좋은 차를 사고 인정받을 만한 결혼을 하고 화이자 같은 멋진 직장에 다니는 게 전부인 줄 알았죠. 상대만 바뀔 뿐이지 사랑도, 나의 에너지와 열정도 늙지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성취의 기쁨도 매 순간 쉽게 얻으리라 생각했지만 창업하고 나니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한번도 내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진지해 본 적 없이 지금 이 순간만, 단순무식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를 잘 살면 되는 거지'라고 자족하면서 매일매일 스케쥴을 빡빡하게 짜놓고 스스로를 옥죄다가도 유흥하는 날에는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다가 숙취로 주말을 몽땅 날리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모험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았고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는 10대 소년처럼 살았어요. 그래서인지 사랑도, 성취도, 관계도 제게는 쉽기만 했습니다. 남들처럼 승진을 위해서, 결혼을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닌 철저히 저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거죠.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인생이란 길고 긴 고통 속 작은 찰나더군요. X축을 시간, Y축을 기분이라 가정해 보겠습니다. 행복이란 인생이란 시간 속 찰나의 고양된 환희의 순간을 미분한(dy/dx) 찰나의 순간, 하나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그 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선이란 점이 모인 상태에 불과하니까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들려오는 새 소리, 월급이 통장에 꽂히는 순간, 내 기획이 결과물이 되어 세상에 나올 때, 거기에 고객들의 반응이 생성될 때,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의 문자 한통, 늦은 밤 퇴근할 때 안 자고 차 한잔 끓여놓고 기다려주는 연인의 웃음, 혹은 카톡이 알려주는 오랜 지인의 생일을 보고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주는 행위,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준다거나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는 행위같이 타인을 위한 행위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명심할 것은 정의한 행복 속에 내가 주체가 되는 요소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 환경, 외부 요인 속성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타자화될 것이고 내가 응당 가져야 할 행복을 뺏겨버렸다고, 피해의식을 가지게 될 테니 말입니다. 


'백화점에 가서 비싼 명품을 선물받는 행위'를 팩트라고 했을 때 이면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A는 단순히 그걸 가지고 싶어서, B는 선물주는 상대의 사랑의 크기를 증명받고 싶어서, C는 선물받은 걸 되팔기 위해서 D는 선물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는데 마침 그것이 명품이었을 뿐. 행복의 진위는 사실 표면 행위 보다 이면에 있고 이는 자존감에도 직결됩니다.


길에서 현금이 두둑히 든 지갑을 주웠다고 칩시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서 전달해 줄 때까지는 자기자신의 정의로움에 감탄 할 지 모르죠. 혹은 찾아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지. 그런데 막상 나타난 지갑 주인이 고마움은 커녕, 당연한 일처럼 반응하면 막상 뭔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불쾌해진 마음을 감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의 결과와 타인의 반응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스킬은 어쩌면 행복에서 매우 중요할지 모릅니다. 나는 지갑을 찾아줬고 내가 생각하는 선을 실현했으니 거기까지다, 그에 대해 상대가 보상을 해 주면 더 좋은 거고 아니면 그것대로 순간 나의 행복까지는 가져보았으니 됐다, 라고 생각하는 연습같은 것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너무 쉽게 내맡깁니다. 아까 행복 이야기의 말미 즈음, 우동이가 웃는 얼굴로 얘기하더군요.


"저 팀장님이랑 꼭 같이 한번 올게요. 꼰대들은 절대 모를 것 같은 곳이라 완전 좋아할 거 같아요 ㅋ 사실 다 저를 애정하니까 야단도 치는 거죠. 여기 꼭 한번 같이 와야겠어요."


우동이가 말한 팀장은 처음 술다방에 들어오자마자 별이에게 불만과 욕을 동시에 쏟아낸 바로 그 대상이고 조금 전까진 월요일에 출근해서 술자리는 커녕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하던 대상이었죠.



 외부와 타인과의 갈등 속에 나를 지키는 법, 행복은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겉으로 착한 행위를 하는 순간에도 이면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외적 행복의 결과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면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거죠.


와이프에게 꽃다발은 사주는 남편의 동기에 (1)바람피고 와서 죄책감에 (2)진심으로 사랑하여 문득 생각나서, 두가지가 있다고 해 보죠. 받아들이는 아내의 입장에서도 (3)왠일로 꽃다발인가 반가운 마음 (4)이 인간이 뭔 일이 있나 의심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겠죠. 꽃다발을 주고 받는 찰나의 순간에 2X2=4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행복은 찰나적 선택의 순간에 불과합니다. (1), (4)의 조합이라면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부부의 조합처럼 보여도 다음 순간 아닐 수 있고 (2), (3)의 조합이라 하더라도 5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오히려 헤어진 커플이 되어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모래알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찰나의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행복 탄력성을 길러야 합니다. 미분한 순간에 불과한 행복이 쫀득할수록 행복은 쉽게 쓸려나가지도 더 잘게 쪼아지지도 못하겠죠. 


그래서 우리는 순간의 행복을 오로지 나만의 내적 동기에 의해 모을 줄도 쓸려 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순간성을 인정하고 다시 일상으로, 디폴트의 고통 속으로 돌아가는 탄력성을 가져보는 연습을 해 보는 거죠. 이면의 동기와 상대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꽃다발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실제 동기와 이면의 원인과는 별개로 단 한 순간만이라도 표면에 나타난 향기와 아름다움만 쳐다볼 줄 아는 집중력을 가져 봐요. 그것은 다른 의미로 자존의 단단함과도 직결될 것입니다.


인생이란 디폴트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모아놓은 행복 모래알 중 하나를 꺼내보는 것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많이 모아 놓을수록 소중하고 중요한 모래알 같은 행복들을. '그래 그 나쁜 놈이 바람피고 와서 미안하니 그랬겠지, 몹쓸 놈' 대신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가 아름다웠지'를 먼저 느껴보는 겁니다. 물론 다음 순간, 그 몹쓸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집 밖으로 쫓아낼 수 있겠죠. 일단 그때의 고통과 분노는 그 다음 순간에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땐 그 중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건 바로 실천하는 거지. 창문을 열고 자외선 신경쓰지 않은 채 햇살을 듬뿍 맞아본다 던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집 앞 놀이터 그네를 타며 어린 시절 추억을 떠 올려 본다던지, 별 것 아닌 순간들이 실은 험난한 인생의 고통을 견디게 해 준다는 걸.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정신 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20대 후반 즈음 잠깐 비관적인 시절의 저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런 시기들을 거쳐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일 수도 있겠죠. 막상 쓰고 보니 원래의 저랑 별 다를 바가 없네요. 여전히 지금 이 순간만을 살고 있어요. 다만 그 순간들을 바라보는 탄력성이, 행복 근력이 좀 단단해졌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행복과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다 따로 떼어놓고 하나씩 해결합니다. 혹여 해결 못 하는 문제는 일단 남겨둬요. 술처럼 시간의 숙성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도 있으니까요. 


인간세상은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는 가정이 무너지고 행동경제학 같은 학문들이 최근 더욱 각광받고 있죠. 대부분의 행복의 순간은 굉장히 명확한 1가지 조건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꽃다발 예시와 같이 나와 상대, 나와 외부의 상호작용 속에 여러가지 감정과 상황과 동기와 의도가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 있죠.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지나가는 행복과 분노와 슬픔의 복합적인 감정을 뒤섞어 놓고 무엇이 먼저 인지 몰라 허둥대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하지 말고 빠르게 나에게 좋은 것,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요소를 찾아내는 방법은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인위적 아드레날린에 중독될 수 있고 쉽게 우울이나 분노에 잠식당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손목을 긋기 전 그의 목숨을 구해주는 건 장롱 안의 버킨백이 아닌 모르는 사람의 트위터 한 마디일지도 모릅니다.


내 삶 속 행복의 요소를 정의하는 것, 복잡한 상황 속에 내 행복의 찰나적 순간을 찾아내는 연습은 당신의 행복 모래알의 수와 탄성을 급격하게 늘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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