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제는 역도 성립하여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잘 쓸 줄도 안다는 것이다. 영세한 사업장은 돈을 못 벌어서이기도 하지만 돈을 쓸 줄 몰라서이기도 하다. 돈은 흐르는 물과 같고 떠도는 공기처럼 흩어져 있기에 움켜잡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끝나고 내게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언제든 둥둥 떠서 날아가고 만다.
작년에 아는 대표님께 네이버 카테고리 1위 카페 체험단 모집 상단 노출 1주일에 300만원이라고 들었다. 동네 1위 맘까페는 더 비싼 곳들도 많을 거다. 물론 광고비만 300이고 체험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은 별도. 나는 초기부터 이런 종류의 광고비를 써야하는 사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내 제품의 찐구매고객이 1만명, 아니 1천명도 안 된다면 그건 문제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유입률 상승에는 도움되지만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공짜로 먹은 체험단이든 내돈내산한 제품이든 재구매와 바이럴은 '얼마나 좋은 제품인가'에서 판별된다.
지금 당신의 사업비는 광고에 쓰여야 하나, 제품 개선 및 품질 인증에 쓰여야 하나? 소비자들이 첫구매를 했을 때 얼마나 그들에게 신뢰와 확신을 줄 수 있는가?
나는 창업 부터 제조를 시작점으로 한 컨설팅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유통을 하거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해 굉장히 깊이 파고 든다. 건물의 구조부터 생산장 내부의 동선, 물품의 배치까지 유심히 살펴 본다.
'여기서 최대 생산량은 얼마인가?'
'현재 어느 정도 생산하고 있나?'
'증축 혹은 증설한다면 현재 제품 라인에서 어떤 프로세스로?'
우리가 여러 양조장이랑 깊게 일하면서 다양한 케이스를 만난다. 똑같은 패키지와 라벨 타입을 보냈는데 어떤 곳은 삐뚤빼뚤 병에 찐득한 술이 묻어있고 어떤 곳은 마치 기계로 붙인 듯 깔끔하다. 아니 기계보다 더 정확하다. 나는 절대 술의 맛만으로 제품 전체를 평가하지 않는다. 창고는 물론이거니와 공장 내부, 그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프로세스를 감안하며 종합적으로 판별한다.
나는 술다방에 내려 가는 순간 부터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되는데 내 책상과 우리집이 아무리 더러워도 식음 공간에서의 위생 관리를 위반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호령이 떨어진다. 게다가 재료를 공수할 때 도매가 아니라 산지에서 직접 배송받는데 왜 이 짓을 했나 하면 내가 기꺼이 돈 주고 먹을 수 있겠다 싶은 게 아니면 도저히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2차로 많이 오던 술다방 컨셉을 1차로 변경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2-3명의 전문 쉐프들을 영입해 봤지만 음식쓰레기, 버려지는 식재료들, 기름기 투성이의 많은 음식들, 먹고 남겨진 음식들을 감당하는 것, 물론 나는 매장에 가지 않고 직원들만 시키면 됐지만 안 간다고, 안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토 나올 정도의 스트레스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코로나 영업제한이 걸리는 동안은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제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명언이 있는데
"내가=이수진이 2번 이상 가면 맛집이고 3번 이상 가면 찐맛집이다."
천원짜리 떡볶이를 먹어도 맛없는 걸 못 먹고 과도한 조미료와 반찬 재활용을 감지하는 순간, 그집을 다신 안 간다. 밖에서 밥 먹는 이상 일정량의 다시다와 미원을 감내해야 하는 걸 안다. 하지만 투머치는 못 참지;;;
조미료와 반찬재활용 따위를 안 봐도 나는 감지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내 어린 시절 부터의 히스토리에 양자역학과 뇌과학을 설명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얼마만큼 설명할 수 있고 독자는 어디까지 이해 가능할까? 일단 포기 ㅎㅎ
극강의 미식가들은 결국 흙으로, 땅으로, 바다로 돌아간다. 파인다이닝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 먹는 건 요리가 아닌 일류 쉐프들의 정성, 그들의 철학, 음식에 담긴 디테일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흡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곳의 쉐프들은? 항상 더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농장을 헤맨다. 농장을 찾는 쉐프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이유다. 파인다이닝의 격식, 럭셔리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고 나면 흙에서 갓 뽑아낸 이파리의 달콤함, 뿌리의 씁쓸함, 열매의 찬란함, 거기에서 부터 진짜 미식은 다시 시작된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나는 스무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소문난 퍼퓸콜렉터였고 500여 종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때 진지하게 이집카(프랑스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조향학교) 유학을 고민해 본 적이 있고 화장품은 겔랑, 라프레리, 시슬리, 디올, 랑콤, 바비브라운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초 부터 색조까지 완벽한 라인을 갖추어놓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국산 제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당시엔 샤넬도 값만 비싸고 상대적으로 저퀄이라 생각했다. 여왕벌이란 말 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지금 나는? 올영에서 세일 하는 거 아니면 안 쓰고 스킨 1종, 크림 1종 끝이다. 물론 과거에 모은 향수들은 서른 즈음에 전부 팔거나 선물로 주고 현재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땀냄새나 페로몬이 살짝 섞인 사람의 체취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술도 죽도록 먹고 나니 소맥이 제일 좋다는 생각을 때론 한다. 100일 금주 후에는 완벽한 알코올 컨트롤러가 되었고 원래도 남녀를 통틀어 세계 누구에게도 술로는 져본적이 없으나 그때는 비록 이겼지만 같이 취해갔다면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나자빠질 때 그냥 혼자 멀쩡하다. 나이가 들어도 더 맛볼 성장의 세계가 있다는 건 항상 신비로운 일이다.
극강의 예술/미술 콜렉터들은 종국에는 자연으로 돌아온다. 아트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본질의 세계를 한창 고민할 때다. 그 단계를 벗어나고 나면 다시 자연, 태초의 어머니, 궁극의 지구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는 걸 안다. 나는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많은 작품과 예술가들의 뮤즈였지만 그들의 세상에서 신이되기 보다 나의 세상을 창조하길 원했다.
나에게는 편하게 살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나를 넘어 본질의 나로 우뚝서는 것, 그것만이 내가 이루고 갈 이번 생의 삶이다.
나에게 영혼의 본질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