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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an 23. 2017

전통주, 커뮤니티를 지향하다

술의 미래 (3)


술의 미래 (1) https://brunch.co.kr/@ssoojeenlee/14


술의 미래 (2) https://brunch.co.kr/@ssoojeenlee/15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양조장인 분이 계신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의 경쟁자가 누구라 생각하는지.


실제로 이렇게 물었을 때 대부분의 양조업체 사장님들은 비슷한 종류의 술을 만들고 있는 옆동네 양조장을 언급하신다. 틀린 답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그들과 수퍼 진열대에서, 시골 조그만 구멍가게 냉장고에서, 농협 하나로 마트 우리술 코너에서 더 좋은 자리를 놓고, 더 많이 팔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테니.


그러나 조금만 더 장기적으로, 아니 중기적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현재 소규모 양조장,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 전통기법을 고집하며 아주 고급스런 고가의 전통주를 빚어오는 분들의 경쟁자는 대기업이나 옆동네, 혹은 인근 시군 양조장들이 아니다. 중요하니까 두번 말한다. 


당신의 경쟁자는 그들이 아니다.


물론 앞으로 5년 정도 년 매출 1~2억 정도 올리면서 외노자 쓰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하다 때가 되면 문 닫겠다는 곳은 예외다. 남의 양조장 공장장으로 일하자니 박봉에 더럽고 치사한데 힘들어도 직접 공장 운영하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리점이나 영업점에 대리점 후려치기로 박리다매 하면서 바짝 벌고 치우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어차피 5년 뒤면 그들의 고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실제로 우리 회사에 문의를 주는 분들이 지난 2년 전과 비교해 조금 달라졌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전통 누룩에 전통 방식으로 항아리에 빚는 술'의 개념을 전통주로 장착한 채 양조장을 막 오픈하셨거나 오픈하시려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요즘은 마을 기업, 마을 커뮤니티, 농사 짓던 농가, 그 중에서도 6차 산업 체험형 농가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 빚어 나누어 마시다가 이걸 마을 사업으로 해 보면 좋겠다 싶은데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어서 상품화 할 수 있을까요?



농사를 계속 지어오면서 요즘 체험 농장을 하고 있는데 저희 집 포도/딸기/사과 등으로 만든 술도 프로그램에 넣고 제품화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 마을 맥주를 만들고 싶어요!


주종도 막걸리나 탁주 뿐 아니라 맥주, 와인 등 매우 다양하다. 아니 술도 잘 못 빚을 것 같은데 무슨 경쟁 따위가 되겠냐고? 만만의 콩떡이다. 농림부에서 매년 한 곳 당 1억 정도 지원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3번쯤 지원 받아도 구축 못 할 인프라를 이들은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다(물론 절대네버결코 3회 지원해 주지 않는다). 이들은 술 외에 쨈이나 과자, 젤리, 식초 같은 무알콜 제품군은 물론이거니와 체험장, 농장, 마을 커뮤니티 등의 인프라를 구축했거나 구축 중이다. 연수나 교육을 위해 양조장만 콕 찍어 들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회사, 단체, 가족, 방문객들에게 훨씬 더 다양한 볼 거리와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귀촌한 분들끼리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경우에는 이미 도시에서 감각을 장착하고 오신 경우가 많아 규모는 다소 작을지 몰라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빈티지한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소품들로 관광객들의 이목을 끈다. 양조장 들어가면 스댕 발효조만 나열되어 있는 녹색 바닥의 무미건조한 생산 공장에 푸른빛 도는 형광등 조명과 회사 세미나실에 있을 법한 책상들이 즐비한 양조장 체험장들에 비해 (특히 SNS에 사진찍어 올리기) 훨씬 예쁘고 분위기 있는 곳들이 즐비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이 맛있어 >.<


"이건 정말 의외다!", 혹은 "취향 탓이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 필자 본인의 취향은 독주, 증류식 소주이며 굉장히 드라이한 타입의 술들을 선호한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공사 구분만큼 개인의 취향과 소비자 선호를 하늘과 땅만큼 구별하는 편이다. 주류 제조 전문가들이나 컨설턴트들에게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소리도 비슷하다. 이제 주류는 설비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웬만하면 격차가 크게 없다고. 누구나 전문가 도움 받아 일정 부분 시설에 투자하면 평균 정도의 품질은 보장받는 셈이다. 엄마가 집에서 김치 담아 줄 때나 매년 맛이 다르지 온라인이나 마트에서 사 먹는 공장 김치들의 맛은 매번 거의 비슷한 것처럼. 게다가 제품화를 위해 반복해서 품질을 조정하다 보면 긴 세월을 오래 묵혀 숙성을 더하는 증류주가 아닌 이상, 각자 취향의 차이일 뿐 어느 정도의 술맛은 보장된다. 그 이후부턴 가격, 디자인, 원재료, 제품 특성 등 여러 디테일의 경쟁이다.


무료로 체험'만' 하세요. 판매는 안 합니다.


얼마 전 여의도역 근처 모임에 가다가 이런 곳을 보았다.





이니스프리에서 운영하는 체험 매장 <그린 라운지 Green Lounge>다.

이 매장에서는 제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에 줄줄이 늘어놓은 형형색색 화장품들은 말 그대로 '체험'을 위한 역할만을 한다. 즉 이 모든 제품을 "공짜로" 찍어보고 발라보고 사용해 볼 수 있도록 진열해 놓은 것이다. 직접 매장 직원에게 판매 여부를 자채 확인했다. 온라인 구매나 매장 위치 안내 정도만을 해 줄 뿐이란다. 



이 곳을 직접 보지 못한 누군가는 묻겠지. 요즘은 롭스, 올리브영, 아뜨리움 같은 화장품 매장엘 가도 편하게 화장품을 사용해 볼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던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여기는 과장 좀 보태서 우리 집 화장대처럼 - 크림 하나 덜렁 놓인, 심지어 가끔 책상으로도 쓰는 우리집 화장대 보다 백배 훌륭해 -_-//~  편히 쓸 수 있도록 메이크업 리무버, 클렌징에서 부터 고데기, 헤어 드라이어, 거울과 조명 같은 인테리어에 브러시, 퍼프 등 화장도구들까지 풀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종업원 눈치보며 남들 쓰던 화장품 위생은 괜찮을까 걱정하며 슬쩍 색상만 테스트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쌩얼=민낯으로 와서 풀 세팅을 해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성형외과 광고의 비포 앤 애프터처럼. 말로만 그런 게 아니다. 매장 직원은 교육 받은 메이크업 기능자라 고객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고 심지어 풀메이크업을 도와주기도 한다.


제품 구매가 웹 뿐만 아니라 모바일 등 온라인 채널로 점점 옮겨가면서 이러한 종류의 매장은 앞으로 더욱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모레 퍼시픽이 이니스프리 브랜드를 앞세워 이러한 선진적인 홍보 전략을 구축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건 마치 내가 술펀 오픈부터 구상했던 "마셔보고 사 가세요!"의 화장품 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조금 더 미래사회에선 무인 점포, 로봇 운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까? 머지 않았다. 필자는 3년 본다.


막걸리 공장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선진지 벤치마킹 굳이 갈 필요 없다. 본 받을 만큼 좋은 것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렸다. 특히 최근 홍보나 브랜드 전략 자체가 전편에 썼듯 이종간 협력,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이 대세라 오히려 동종이 아닌 전혀 다른 업종에서 제품의 미래를 선견해야 한다. '체험 마케팅'은 품질에 자신있는 영세업체들에 더없는 기회 시장이고 전략이다.


출고량은 감소했는데 출고액은 증가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상관관계를 추측해 보자면 1) 출고단가가 높아졌거나 2)출고단가 높은 술들이 많이 팔렸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아래 우리나라 주류시장 전체 출고량&출고액 통계청 자료 가져다 직접 만든 그래프를 한번 살펴 보자. 2013년 주류 시장 전체 규모가 8조 3천억으로 전년도에 비해 4천억 정도가 성장했다. 2014년에도 주류 시장은 8초 5천억 안팎으로 성장세는 둔하지만 여전히 8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괄목할 만한 변화는 바로 출고량에서 나타난다. 즉 4천억이나 시장 규모가 성장했음에도 4만톤 가량 출고량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대로 병당 단가가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소비자들이 가격 보다 질에 의거해 주류 제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요즘 막걸리 기사들마다 등장하는 '프리미엄'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신문기사들 뿐 아니라 여러 보고서와 논문에서 음주 문화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아래 혼술에 관한 재미있는 인포그래픽이다.

(출처: http://news.tongplus.com/site/data/html_dir/2016/10/31/2016103102080.html )




 


혼술이란 용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92% 이상, 이미 혼술을 하는 70% 이상의 사람들 대부분이 집에서 마신다고 한다. 이유를 살펴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 보다 '스스로가 원해서'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여서 뭔가를 함께 하는/혹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보다 '내가 편할 때, 편한 곳에서, 남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혼술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식, 과음, 안주,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 등은 역시 라이프 스타일 변화와 직결된다. 건강, 웰빙에 대한 고려사항에 있어서 주류도 이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제품을 개발해야 할까?


비교적 최근 막걸리 부문에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소비자 조사를 진행한 논문이 있어 정리해 보았다. 광주광역시에 국한된 조사라 다소 범위가 좁긴 하나 2015년 <소비자 유형에 따른 막걸리 소비 행태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특성에 따라 아래와 같이 4개의 군집으로 나누고 유형별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전체적으로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주이며 타 전통주에 비해 전통성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주류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대중성이 낮고 다양한 제품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관계중심형 군집의 경우 소비횟수 1.95회, 지출액 27,795원으로 가족중심형 군집의 소비횟수 1.34회, 지출액 11,977원 비해 높게 나타나 제품 개발 시 특히 참고해야 할 사항으로 사료된다. 관계중심형은 SNS를 중시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또한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타인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익숙한 타입으로 새로운 제품과 콘텐츠를 받아들이는데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특히 관계중심형 군집은 디자인 등 제품 외양의 속성 역시 중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표본수가 65명에 불과하며 광주 지역에 국한된 결과이므로 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 라이프스타일 특성에 따른 제품 선택 요인, 음주 장소 등이 다르다는 것 정도를 감안하여 시장세분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내 제품을 마실 사람이 누구이며, 어디서 팔릴 수 있게끔 영업하고, 어떤 디자인이 해당 장소와 소비자에게 어필할지를 제품 개발 전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의 음주 상승량에 비해 과음, 폭음을 하는 고위험 음주율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는 술의 미래 상, 중에서 이야기한 저도수, 첨가 트렌드와 연속선상에 있다. 취하는 술에서 즐기는 술로 음주 문화가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장은 어떻게 변해갈까? 


먼저 개인의 기호가 점점 더 세분화될 것이다. 희석식 소주와 라거 맥주로 대표할 수 있는 기존 주류 제품군에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제품군으로 소비자들은 눈을 돌릴 것이다. 수입 맥주 시장과 성숙기에 접어드는 와인 시장의 성장은 이를 대변한다.


둘째, 제품 자체의 속성을 넘어 브랜드나 역사, 스토리에 담긴 의미를 찾게 된다. 먹거리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로컬푸드, 슬로푸드 운동은 술의 영역으로 점차 확산될 것이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발효와 증류-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재료, 원료가 사용되었는지 소비자들은 점차 날카롭게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세번째로 제품 성숙기에 도달한 시장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특성은 바로 DIY다. 전통주는 아니 그럴지 모르나 주류 시장의 성장은 이미 둔화되었다. 주류 시장은 상위 4개사가 시장의 70%를 장악할 정도의 독과점 시장이고 성숙기에 접어든 제품군이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인테리어 시장이 바로 대표적이다.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고 심지어 집을 짓기 시작한다. 한국에도 점점 '가양주'란 단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술을 직접 빚어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술의 미래 (4) https://brunch.co.kr/@ssoojeenlee/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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