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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an 05. 2017

전통주, 덜어 내다;
저도수, 저용량, 소포장

술의 미래 (1)


일전에 쓴 글에도 나오지만 컨설팅이란 본디 하면서 컨설턴트 스스로가 더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컨설팅하면서 깨달은 부분의 일부를 신년을 맞아 정리도 할 겸 전통주 개발 방향에 대한 단상으로 개인 경험에 빗대어 조금 풀어 보고자 한다. 보고서 쓸 때야 그래프건 수치건 막 밀어 넣겠지만 현장에서 몸소 느끼는 바가 가장 크다. 단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은데 정리하면서 일단 나 스스로 도움되니 최소한의 필요성은 있는 거겠지?


*** 미리 기획 및 초안을 짜 놓고 글을 쓰는 스타일(드라마로 치면 사전제작)은 아니라서 각 편마다 길이나 호흡이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




2016년 주류 시장은 한 마디로 3低(저)로 요약될 수 있다.


저도수 - 알코올 함량은 더 낮게
저용량 - 용량은 더 적게
소포장 - 포장 단위는 콤팩트 한 소량으로


2015년부터 불기 시작한 저도주 열풍은 이제 확실히 일시적인 트렌드를 넘어 확고한 방향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이는 미니멀리즘, 킨포크 등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전 세계적인 축소지향적 라이프 스타일과도 맞물리는 경향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피할 수 없는 고려 사항이 되었다. 술 문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놀이 문화, 식문화, 라이프 스타일과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라 이제 전통주나 우리술을 주창하시는 분들도 서서히 변화의 물결을 주시, 아니 동참해야 할 듯싶다.


1. 저도수 


관련기사: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226225

http://www.hankookilbo.com/v/50d19afa148f480d8c3ecf61c809bdae


소주뿐만이 아니다. 원래 4.5~6% 정도의 낮은 도수를 자랑했던 맥주 역시 3% 이하의 신제품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최근 마트에서 대대적으로 프로모션과 광고 중인 호가든 로제는 이미 자리 잡은 3低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과일, 꽃 등) 첨가, 탄산"이라는 새로운 마켓 트렌드를 리드하는 중이다. 




우리술 쪽에서는 항상 트렌드를 가장 빨리 쫓아가는 국순당에서 탁주에 탄산과 과일을 첨가한 아이싱 시리즈를 시즌 스페셜로 출시한 바 있고 아마 매출 및 성장에 따라 정규 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해 역시 2015년 출시한 부라더소다가 2016년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한 덕택에 핑크&민트 2종에서 캔 패키지와 망고 옐로우까지 종류별로 신상품들을 내 놓고 있다. 



부라더소다 후기: 소주랑 짬뽕해서 먹었는데 이건 정말 간다간다 홍간다~ 수준이었음 -_-

과일향 첨가한 소주 보다 개인적으로 부라더 소다랑 말아 먹는 게 더 맛있더란....




2. 저용량


출처: 2017 식품외식산업 전망대회 발표자료집 -  김서령, 미리보는 2017 외식트렌드


먹거리 시장 전망에서 이제 우리는 혼술혼밥 트렌드를 절대 빼 놓을 수도 없고 빼놓아서도 안 된다. 싸고 양 많은 걸 선호하는 살림계의 큰 손, 본인 조차 요즘은 많이 사서 버리느니 비싼 걸 뻔히 알면서도 저용량을 고르게 된다. 어쨌건 비용은 나갈 텐데 지구 오염이라도 줄여보자는 셈이다. 물론 내가 지출한 돈은 신세계 정ㅇ진의 배나 불리겠지만 '지구를 더럽히는 것 보단 낫겠지'라는 울며 겨자먹기식 차선인 것이다. 그러나 창업 이후 생활 패턴이 다소 불규칙적이라 꾸러미를 이용하기도 어렵고 밤 늦게 퇴근해 재래시장 들르기가 힘든 나로서는 대형마트 아니면 장보기가 힘들다.


나같은 소비 혐오주의자가 몇년을 참고 견디다 이러한 의사결정을 선택했을 때는 이미 그 트렌드가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도 한참 이후인 경우가 많다. 나야 워낙 시장 조사하며 일찌감치 트렌드라 주장은 해 왔지만 나의 일상 속에 적용시키는 데는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즉, 이제 저용량은 절대 비껴갈 수 없는 선택이란 것이다. 


제품을 개발할 때 저용량에 숨은 또 하나의 비밀은 출고가를 크게 올리지 않는, 즉 소비자가를 크게 상승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품질 신제품을 출시하기 좋다는 점이다. 2016년 트렌드로 가장 각광받았던 "가성비" 키워드를 기억하는가? 넘치는 정보 속에 점점 스마트해 지는 소비자들은 시장 가격 보다 비싼데 질이 '생각 만큼' 좋지 않으면 바로 안녕(Bye)이다. 혹은 '생각 보다' 가격이 저렴한데 질이 평균 정도만 되면 그 반대의 '안녕(Hello)'이다. 사실 그 기준은 몹시 주관적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모수가 커지면 결론은 대부분 수렴한다. 시장에서 살아남은 제품들은 그만큼 검증된 것들일 수 있다. '내 비록 임아트는 가지만 노브랜드 만은 먹지 않으리'를 외치고 저항했으나 진열대는 점점 피해갈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PB 상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정보의 전달이 빠른 만큼 시장 트렌드 역시 빠르게 변화한다. 그냥 자기만 안 사면 좋은데 페북이다, 트위터다, 카스(카카오 스토리)다 뭐다 해서 온갖 SNS에 뭐가 별로니 좋으니 품평회를 열고 타임라인에 쌓이는 콘텐츠의 양만큼 정보는 빨리 희석된다.


특히 영세 생산자인 경우 저용량 제품을 소량 출시하고 시장 실험을 하는 쪽이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는 쪽 보다 훨씬 소비자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결과가 성공이라면 도수나, 첨가물을 달리한 라인 업을 추가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라면 회수 후 처분에 소요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 수 밖에 없다. 


나는 지금이 전통주, 우리술 신제품을 실험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몇몇 트렌드가 대기업의 마켓 실험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상태에서 후발 주자들이 B급 정신을 가지고 변주해서 팔로우업(Fllow-up)하기에 최적기다. 지금을 놓치면 기존의 영세 전통주 업체들이 2년쯤 후 더 빨리 변화하고 있을, 이미 더 많은 트렌드가 견고해져 있을 식품-주류 시장에서 더더욱 자리잡기 힘들지도 모른다. 



3. 소포장


저도 공짜로 주는 잔, 참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쌓아 놓은 찬장 속 맥주잔이 몇 갠지 모른다.


패키지로 사면 전용잔 하나 끼워주는 수입 맥주의 프로모션을 술덕이라면 피해갈 수 없을 것. 대형 마트에서 4~6병/캔 단위로 전용잔 끼워주던 맥주 박스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경기가 점점 악화되고 소비자 물가지수가 치솟으며 소비자들은 6개 사면 잔 끼워주는 프로모션 보다 4개 만원 가격 할인에 더욱 열광하게 되었다. 


아무튼 맥덕들에게 요즘 마트는 나름 천국인 셈이다. 


이 와중에 우리의 막걸리는 어떤가?

우리술 코너에서 여전히 가장 많은 공간적, 시간적, 가격적 포션을 차지하는 막걸리,

트렌드에 반하는 대용량+저가격의 전형적인 대표 제품 아닌가?


내가 아는 술 매니아들 중 열에 팔구는 맥덕에서 우리술로 넘어오는 테크트리가 매우 빈번하다. 그들은 찾아서 술을 마신다. 마트의 신제품을 발 빠르게 소비하기도 하지만 지역의 오래된 양조장에 직접 전화해서 1박스씩 배달시켜 마시거나 공동구매를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걸리 택배 1박스 20병은 현대인에게 너무도 많은 양이다. 병당 1~2천원에서 안팎이다 보니 적게 보내려 해도 양조장 입장에선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 냉장고 용량은 한정되어 있고 막걸리는 생주라 요즘같은 겨울이 아니면 실온 보관이 어렵다. 특히 혼술족의 냉장고는 일반 가정 보다 작은 경우가 허다하여 마시고 싶어도 버릴까 겁나서 선뜻 주문하기 어렵다.


소포장 트렌드는 주류 코너를 벗어나 식품 쪽으로 눈을 돌리면 더더욱 명확해 진다. 특히 가공 식품 쪽은 기존의 양을 유지하되 반으로 나누어 두개를 붙여놓고 가격은 아주 약간 올린 상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성비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아예 대용량 저가격으로 대형 제품을 출시하거나 딱 한 사람 분량의 저용량도 아닌 미니 사이즈 제품군들로 양분되어 있다. 내가 양조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벌크 형태의 대용량 제품과 300ml이하의 소용량 제품군을 극단으로 디자인하여 출시하겠다. 그러나 나는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권유를 할 뿐이다. 자신없겠지만 먼저 하는 사람은 시장을 반드시 시장 선점할 수 있다. 물론 마케팅 전략도 다르게 가야겠지만.


막걸리 공장에 가면 50원만 올려도 대리점에서 퇴출 당하고 달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안 사 먹는다며 아스파탐을 쓴다. 그런데 이게 딱 그 지역 내, 농촌 구역 내, 시골 할매할배들 대상일 때만 먹히는 소리다. 


저도수, 저용량, 소포장 트렌드는 주류 시장 뿐 아니라 현대 라이프 스타일에서 절대 비껴갈 수 없는 키워드다. 이제 이 트렌드는 실험을 하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더 이상 비껴갈 수 없다. 막걸리는 대부분 저도수라 사실 이 단계는 충족시켰다. 그럼 다음 테크트리를 타야 한다. 오늘은 막걸리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약주, 과실주, 증류식 소주 제품군도 마찬가지다. 주류 시장 전반에 대해 수박 겉만 핥았지만 다음에는 현재 전통주 시장 제품군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발칙한 신제품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양조인들은 2017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내년 경제는 더욱 폭망할 것이다. 낙담하지 말고 칼을 갈자. 뽑아들 날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좀 더 공부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아래의 링크에서 주옥같은 자료들을 무료로 열람 할 수 있다.


<2017 식품외식산업 전망대회 발표자료집>

http://www.atfis.or.kr/article/M001040000/view.do?articleId=2332



술의 미래 (2) https://brunch.co.kr/@ssoojeenlee/15


술의 미래 (3) https://brunch.co.kr/@ssoojeenlee/19


술의 미래 (4) https://brunch.co.kr/@ssoojeenlee/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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