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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Mar 23. 2017

주막에 관한 3가지 팩트 폭력

당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조선 여관의 실상 

조선주조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근대사 중 인용 할 만한 자료들의 상당수는 일본과 외국인에 의해 쓰여졌는데 현대 사회, 연구의 기반인 논문이라는 것의 형태가 기본적으로 서양의 방법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19~20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침략이 시작되며 기록물에서 흔히 몽골리안으로 묘사되는 동아시아의 문명과 문화가 호기심 짙은 서양인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1900년 대 조선과 조선인의 생활상에 관해 기록한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더러움과 냄새에 관한 것이다.  걔 중에는 이러한 묘사에 관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아니 자신이 매우 주관적일 수 있음을 설파하려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주막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에 대해서는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다. 내가 이미 이야기했지만 냄새는 전적으로 교육의 문제이지 실제 문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 냄새가 향기로우냐, 불쾌하냐 하는 것은 대체로 그 냄새에 길들여졌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곳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의 경우 어느 따뜻한 봄날 밤 이 주막에 들러 오랜 기간 머무르기 전까지는 분명 이 고을에서 뭔가 썩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여행객에게는 꽤나 불쾌한 이 모든 냄새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리고 식욕을 돋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  <1900, 조선에 살다>, 제이콥 로버트 무스 저, 문무홍 외 역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구한말의 조선에 대해 다소 미개하고 문명화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어쩌면 이러한 시선이야 말로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루프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상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본 글에서 인용하는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구한말 조선의 모습은 발달된 의학과 무균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한국인들이 개발도상국에 가서 느끼는 감상들과 비슷할 것이다. 전통 문화에 대해 맹목적으로 미화된 시각 대신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잊지 말자, 문화 상대주의.



1. 더러움


우리가 흔히 주막에 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무엇일까? 아마도 '서민적이고 친근하다', '편하고 저렴하다' 정도에 누구나 동의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길거리에 쓰레기와 똥으로 가득차 있던 구한말 조선의 거리에 대해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투영하여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당시엔 거리라고 할 것이 없었다. 조선의 초가들은 간격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길이란 포장되어 있지 않고 사람과 동물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자연스레 길이 형성되는 정도였다.


우리의 과거 역사 인식 및 상상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일까? 국사 교과서? 역사학자의 책? 혹은 민화? 본인은 단연코 사극과 영화라 생각한다. 반듯하게 길이 닦여 깨끗한 민속촌에서 찍는 사극에서, 깔끔하게 복원된 초가집에서 당시의 불결함과 더러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서양의 역사물도 마찬가지라 역병을 창궐하게 했던, 똥을 밟기 싫어 발명했던 힐이 유행하던 중세시대의 더러움을 전달하기엔 역부족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엔 아름다운 여인네들과 정겨운 풍경만이 가득하다.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에서 조선의 거리에 대해 아래와 같은 묘사를 볼 수 있다.

나는 베이찡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Shao-shing, 중국 절강성 소흥현)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중략...) 대부분의 골목길이 짐을 실은 두 마리의 황소가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이 짐을 실은 황소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이며, 그것도 퀴퀴한 물웅덩이와 초록색 점액질의 걸쭉한 것들이 고여 있는 수챗도랑에 의해 더 좁아진다. 수챗도랑들은 각 가정에서 버리는 마르고 젖은 다양한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더럽고 악취나는 수챗도랑은 때가 꼬질꼬질한 반라의 어린아이들과 수채의 걸쭉한 점액 속에 뒹굴다 나온 크고 옴이 오른, 눈이 흐릿한 개들의 즐거운 놀이터이다.

-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저, 이인화 역.


러시아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조선 전역을 탐험했던 장교들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끝없이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마부들의 외침소리, 방안 가득한 자극적인 냄새, 검게 그을은 천장과 벽, 문 옆에 놓인 반쯤 부서진 토기 안에 쌓인 쓰레기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 등을 더한다면, 모든 여관에서 나그네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 <내가 본 조선, 조선인>, 카르네프 외 저, 이정화 역.



2. 뜨거움


여관의 방은 언제나 과도하게 따뜻하다. 섭씨 33도 정도가 평균 온도이며 자주 35.5도로 올라간다. 나는 어느 끔찍한 밤을 방문 앞에 앉은 채로 세운 적이 있는데 그때 방안의 온도는 섭씨 39도였다. 지친 몸을 거의 지지다시피 덥혀주는 이 정도의 온도를 한국의 길손들은 아주 좋아한다.

-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저, 이인화 역.
밥을 하려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에 농가의 방바닥은 항상 뜨거웠다. 조선인들은 손님을 좀 더 융숭히 대접하고자 할 때 방바닥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 방바닥에서 쉽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 <내가 본 조선, 조선인>, 카르네프 외 저, 이정화 역.


한국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생활양식 중 하나가 온돌이다. 한옥에서 묵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현대식 단열재와 마감재를 이용해 틈을 다 메운다 하여도 한옥에 스미는 얼마간의 외풍이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주막으로 사용되었던 초가는 기와집 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으리라. 구들과 공간의 온도차를에 익숙해진 한국인들과 달리 입식 생활에 익숙한 서양인들에게 체온 보다 뜨겁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청하기란 고역이었을 것이다.


더럽고 따뜻하면 뭐가 좋다? 그렇다. 흙으로 지어진 초가집 아랫목은 온갖 종류의 곰팡이와 생명체들에게 매우 적합한 번식 공간이었으리라. 게다가 뜨거운 방구들은 여러분들이 싫어 마지 않는 갖가지 곤충들의 온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곤충들 중에는 흔히 해충으로 불리는 이, 벼룩, 바퀴벌레, 지네 등이 포함될 것이며 한국의 주막에서는 객실을 별도로 구분하는 곳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아랫목에서는 메주와 술독이 함께 익어가는 경우가 흔했다. 지금부터 약 3초만 이 냄새와 풍경들에 관해 상상해 보자. 음, 스멜~


3. 시끄러움


조선의 주막은 사람 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 중인 당나귀나 말도 함께 묵어 갈 수 있도록 구유통, 마굿간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그네들이 초면인 만큼 말들 역시 먹이를 두고 텃새 부리거나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개 여행객들의 방과 흙벽, 혹은 창호지로 된 문 한칸 사이를 두고 있었으므로 밤새 동물들의 말발굽 소리와 방울 소리에 사람들이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다. 조선말들의 성질이 사납다는 묘사는 인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책에 등장하는데 이러한 탓인지 말들의 싸움 사이에 마부들의 호령과 호통이 가미되어 주막의 잠자리는 생각만큼 편치 않았던 것 같다. 


무섭게 생긴 검은 돼지와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마리의 묶여 있는 누런 개가 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고 닭들, 아이들, 조랑말들, 마부들, 식객들, 나그네의 짐들 등으로 여관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중략)...
한국의 여관은 손님들이 술이 거나해지지 않으면 소란이 없고, 설사 소란이 일어나도 곧 가라 앉는다. 조랑말들이 싸우고 그 소란을 가라 앉히려고 마부들이 후려치고 욕하는 소리가 새벽이 오고 나그네들이 움직이기 전까지의 주요한 소동이다.

-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저, 이인화 역.


여러 책들에서 묘사되는 주막의 풍경에는 아래의 단어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열기와 벌레들, 정어리처럼 포개어진 비좁은 잠자리, 군데군데 찢어진 더러운 종이가 발린 낮은 장지문, 썩어가는 메주 냄새, 발효 중인 술독, 엄청난 먼지, 꼬물거리는 벌레들, 독충...



과연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게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한번쯤 의문을 가져볼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전통이란 브런치 어느 글에 쓴 것처럼 지키라는 강요가 아닌 그만큼 좋아서 자연스레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다른 형태로 원형을 지닌 채 지속되는 것이다. 아궁이가 연탄이 되고 보일러가 된 것처럼 초가삼간에 지은 춥고 불결한 주막이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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