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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Sep 13. 2018

착함, 유능함, 배려심의 관계

지구 인간 관찰 일기



공적 생활에서 '착한' 것과 '일을 잘하는=능력있는=실력있는=유능한' 것과 '배려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다음은 요즘 나의 탐구생활 관찰일기다.


본디 언어에는 뉘앙스라는 것이 있으나 우리는 한국말을 하고 있으니 우리말을 기반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견 타당할 것이다. 내가 관찰해 보니 '착하다'는 것은 '자기 말에 토달지 않고 복종 혹은 동의하거나 큰 목소리 내지 않고 순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 사람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영어의 good도 nice도 우리나라의 착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순박하고 촌스럽다는 느낌의 naive가 어울리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 사람 참 착해"라고 하면 다소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하거나 더 나아가 어리석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이런 말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 이익을 챙기지 않고 손해본다고 느낄 때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더란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착하다는 말의 의미는 순하다는 말보다 상대적으로 부정적 뉘앙스로 들리거나 읽히는데 아무래도 교육부터 입시, 취업까지 모든 장면이 경쟁으로 치닫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착하다'는 말 속에는 경쟁적이지 않은, 그래서 도태된 사람이라는 무의식적 무시함의 발로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다는 의미가 아직은 평균 이상의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진 않는다. 화자가 누군가를 착하다고 말할 때 청자는 그 누군가를  문제있는 사람이라거나 해악을 끼치는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칭찬으로 듣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착하다는 건 매우 위험한 평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마 셋 중 가장 분별하기 쉬운 쪽이 능력 있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크고 관료화된 쪽으로 갈수록 점점 아리송해 진다. 현재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에서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실수를 적게 하고 수치화된 빠른 숫자를 가져오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부서의 부장이 성과를 내는 것보다 사내 정치를 잘했을 때 더욱 실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능력있다‘는 단어의 원색적 의미는 퇴색되기 십상이다. 역시 실력있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 혹은 성과에 있어 실력있거나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투입 대비 산출은 확실한 사람일 것이다.


'배려'라는 것은 착함이나 능력있음과는 다르다. 이 또한 관찰해 보니 진정한 배려라는 건 감정지능(EQ), 사회성지능(SQ), 인지지능(IQ)이 모두 높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터에 국한했을 때 배려심 있는 사람은 유능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자기 일을 성실히 끝내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매니저로 성장한다는 글을 읽었는데 실력이 있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공감 할 줄 알고 과연 내가 어떤 일을 거들어야 상대에게 진정 도움이 될지를 파악하여 실행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배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 셋을 종종 혼동하는 것 같다. 나는 일로 맺은 관계에서 누군가를 평가할 때 ‘사람은 참 착한데’라고 대화 끝에 변명하듯 덧붙이는 걸 참 싫어하는데 이 말을 덧붙이는 순간 나도, 상대도, 착하다는 말 속에 갇힌 그 자리에 없는 당사자도 모두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사람은 참 착한데...’라는 말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의미가 숨어있는데 착한 당사자는 착한 데 일을 못 하거나 팀워크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고 그 말로 누군가를 평가한 평가자는 ‘나는 이 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에 대해 일말의 찝찝함을 느끼고 있으니 뭔가 긍정적(으로 사료될 만한) 단어 하나를 붙여보자’는 의식적 인지부조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평가를 전해듣는 상급자의 입장은 '착한' 사람을 조직에서 배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고. 


아주 예전에 아웃스탠딩에서 초기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을 인성과 실력의 정도로 4분류(1.인성ㅇ 실력ㅇ /2.인성x 실력ㅇ /3.인성ㅇ 실력x /4. 인성 x 실력 x) 하여 누가 필요한지에 대해 인터뷰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1번이 쓰는 카드, 4번이 버리는 카드라면 2, 3번이야말로 고민의 핵심이고 해당 글에서는 2보단 3이 낫다고 했었다. 스타트업은 매우 작고 사소한 문제들이 많이, 그리고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 정말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소위 명문대나 아이비리그를 나와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다녔던 사회에서 알아주는 스펙의 소유자라도, 이런 문제를 재빨리 발견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문제라는 것이 BCG같은 컨설팅펌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다루는 거창한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스펙빠방한 누군가가 '내가 이런 것 까지 처리해야 돼? 이렇게 짱짱한 스펙의 소유자인 내가? 꼴랑 쟁쟁거리는 소비자 한 사람 땡깡을 받아줘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그 조직은 끝난다. 스타트업의 문제라는 건 IQ 100 이상만 되면 대개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실패와 문제를 얼마나 현명하게 해결하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느냐가 관건이지. 해결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 들어와도 태도가 맞지 않으면 서비스는 실패하고 팀은 해체된다.


‘인성이 곧 실력'이라는 것이 어느 새 우리의 조직문화가 된 것 같다. 태도가 먼저냐 실력이 먼저냐 따질 때 모든 구성원이 입을 모아 ’태도가 먼저다’는 것을 말하니 이것이 자연스레 문화가 된 것 같다. 턴오버를 함께 겪은 사람들이 실무자로 면접 과정에 참여하고 함께 누군가를 선발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새 ‘술펀과 맞는 사람’이라는 소위 인재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명문화된 것이다.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무슨 조직 문화인가 싶지만서도 남들 밑에서 일하며 책에서만 배우고 뭣도 모르면서 강의열심히 하고 컨설팅이라는 미명 하에 고나리질이나 하던 내가 이제 진짜 아 조직문화란 이런 거구나 – 라는 손톱만큼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현타란 이런 것인가 보다 -_- ;;;


그나저나 이 역시 살펴보니 태도가 좋다는 것은 착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언어로는 이 두 가지가 전혀 다르게 쓰인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은 일터, 조직, 회사에서 무엇을 할까? 난 잘 모르겠다. 유능한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평균 이상으로 무언가를 잘 해낼 것이다. 실력이 있으면서 배려하는 사람은 언젠가 리더가 될 것이다. 태도가 좋으면서 실력있고 배려하는 사람은 언제가 창업해서 대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고생의 길로... (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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