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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Sep 15. 2018

불면에 대한 소고(小考)

지구 인간 탐구 생활


요즘은 밤에 잠을 잘 자지 못 한다. 가끔은 잠들지 못할 때가 있고 대개 잠이 들더라도 서너 시간 후 새벽녘에 한번 깨고 나면 다시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정신이 멍하거나 괴롭진 않고 이상하게 머리가 맑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 누워있기 아까우니 일이라도 할까?’

‘아냐, 지금 일어나서 일하면 분명 낮 시간에 괴로울 거야. 좀 더 자자.’


양자 속에 갈등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시간을 두어 시간쯤 흘려 보내고 결국 잠들지 못해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간은 또 아까운지라 회사 인스타그램을 관리한다던지, 술펀이나 주령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들여다 본다던지, 폰으로 할 수 있는 업무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다음에 내가 일해놓은 걸 보고, 혹은 개선점을 말했다가 '대표가 왜 잠도 안 자고 자기네들을 감시하지'라며 괜한 불평이라도 생길까 한편으론 노파심에 걱정도 되고.


왜 이렇게 잠들기가 힘들까? 머리만 대면 쿨쿨 자고 꿈도 꾸지 않은 채 푹 잘만 자던 내가, 불면증 따위 없던 내가 대체 왜 이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깨어있다 보니 불면증이 조금 이해되는 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답을 찾지도 못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계속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요즘 고민은 상당히 실체가 있고 뚜렷하다. 술펀을 창업한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내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 창업한 그때 그 시절엔 돈이 없고 일이 잘 안 풀려도 ‘언젠가는 잘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으로 버틸 수 있었고, 나 혼자였고 외로웠지만 어깨도 마음도 가벼웠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긴 하지만 돌이켜 보면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모르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쓰고 공모전에 출품을 하며 ‘누군가는 나의 비전을 알아주겠지? 모르면 말고~ 다른 곳에 내 보지 뭐…’라는 호기로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채 4년이 안 되는 사이, 술펀에도 대출이란 게 생겼고 직원도 점점 늘어간다. 3년 전만 해도 조용히 혼자 사업을 접으면 됐는데 지금은 내가 멈추면 다수의 누군가는 내일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다시 일을 찾아야 하고 경력 생활 초반에 실패한 회사 한 줄이 추가되는 것이다. 나의 첫직장 생활이 15년 지난 요즘 돌이켜 보면 그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이 곳을 선택해 준 사람들에게 술펀과 나는 좋건 나쁘건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혹여 지금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났을 때, 혹은 다른 회사에 들어갔을 때 이곳에서 배운 무언가가 어떻게든 자양분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늘자 역동(Dynamic)도 복잡해져 간다. 심리학을 복수전공하면서 한때 발달심리대학원에까지 몸담았던 나에게 자금에 대한 스트레스 보다 더욱 고민을 안겨주는 건 바로 이 분야다. 사람을 개별로 놓고 나와 1:1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하면 조직 안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양상과 역동은 무자비할 정도로 랜덤하다. 게다가 이후 경력 생활에서도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고 컨설팅을 주로 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정신분석에 젖어 있던 나답게 남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작은 일그러짐과 변화에도 예민하고 까칠한다. 티를 잘 안 내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무서울 정도로 마음을 잘 읽어낸다. 주변 사람들은 ‘촉이 좋다’ 정도로 표현하지만 내가 알아차린 것의 반의 반도 겉으로 내지 않는다는 것까진 잘 모르겠지.


내가 자원교사 하던 시절의 봉사자라면 모를까, 지금은 ROI를 먼저 따져야 하고 팀웤과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내보내야 한다. 심지어 법적인 하자가 없이 최대한 서로 피해가 없도록 깨알같이 머리를 굴려서. 덤덤한 얼굴로 칼을 들지만 언제나 상처를 입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신규 채용에 대한 시간, 노력, 비용에 대한 스트레스와 업무 증가, 알게 모르게 느낄 빈자리에 대한 팀원들 사기 진작은 필수다. 그래서 심리적 반대급부로 명망있는 기업가들이 그토록 자선사업을 하고 굳이 봉사활동을 다녔던 걸까?


그렇다고 우리 회사가 몇십, 몇천 명 다니는 큰 회사도 아닌 아직 열 손가락에 꼽는 회산데도 이 지경이니 내 그릇이 어디까지 인지 주제파악 제대로 하고 때가 되면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이러다 지구인간들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 다다음 생에도 떠나지 못할까 걱정이다. 나도 역시 인간으로 태어난지라 모든 직원들이 똑같이 보이지도 않고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좀 덜 아픈 손가락이 있고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더라. 아무리 내가 티를 안 내려고 해도 티가 나겠지. 말부터 최대한 줄여야지. 한국말로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이번 미션을 완료하고 나면 인생 후반기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쓰던지 아예 산에 처 박혀서 자연과 벗삼아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푹 자고, 쉬는 동안 확실히 쉬어야 옮은 감기도 얼른 떨어지고 일많은 직원들 과부하 걸리하 걸리지 않게 대타를 뛰어줄 텐데 술다방 오픈한 이후로는 아무리 쉬려고 해도, 아무리 일찍 퇴근해서 일찍 자려고 해도 가게 문을 닫지 않은 시간에는 다리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다. 직원들이 다 퇴근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잠자리에 드는데 원래 아침형 인간에 가깝고 밤에도 11시쯤 잠자리에 드는 내가 자정이 넘어서 자려고 하면 잠 때를 놓친 건지 새벽 2~3시까진 뒤척거리다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어떤 날은 연속 15~18시간 이상의 과도한 노동으로 여차 잠이라도 들면 어김없이 새벽 3시쯤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무언가를 끄적이게 된다.


이렇게 9월도 반이 지났다. 석달 하고도 반이 더 지나면 나도 불혹이다. 미혹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반기에 두어번 사고치며 액땜하고 나니 이제는 요령이 생긴 것 같은데 일단 술부터 줄였다. 술펀(만)하는 동안은 운전하는 걸로 술자리 피하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는데 이제는 술다방하면서 아예 술 마시는 것 자체에 점점 흥미가 없어진다. 술은 내게 이제 미식의 일부로만 남아 있다. 옛날처럼 취한 정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취해야 세상도 사람도 아름다워 보였는데 이제 지구인간은 내게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바라보면 항상 짠하고 아픈 존재들이다. 이것은 내게 너무도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남들이 이글을 읽으면 지랄한다고 하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이 생을 살아가는 동안 본 육신을 빌은 하나의 주체로서의 내가 점점 뚜렷해져 간다. 언제나처럼 지금 당장 문 밖을 나가 불의의 사고로 죽더라도 후회가 없는 하루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가끔 후회되는 기억들도 있지만 뭐, 부처도 예수도 완벽한 지구 인간은 단 1명도 없으니까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아직 날이 길어 그 사이 해가 뜨고 창 밖에선 어린 연인들이 새벽데이트를 하는지 애정섞인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오늘 나의 죄를 무마하기 위하여 내일 나는 또 무언가를 하겠지. 잠이 들면 짧게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귀엽고 깜찍한 일인 것이다. 본격적인 내일이 오기 전에 한번 더 죽었다 깨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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