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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Nov 15. 2018

인연은 돌고 돈다

차카게 살자

개인적으로 #술다방 오픈해 놓고 좋은 점 0순위.
한창 놀 때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거.


1단, 오픈 멤버로 함께 했던 바텐더 부터가 이태원에서 놀 때 자주가던 곳 직원이었고


2단, 내가 원래 별로 친구라는 것도 없고 딱히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 없을 땐 두문불출하면서 극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관계맺기 하는 타입(이유없이 1년에 2번 만나면 절친, 1번 만나면 가족)인데 느슨한 관계지만 끊고 싶지 않은 정도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핑계거리 및 장소를 제공해 준다. 내 개인 및 회사 SNS 계정 가리지 않고 연락 오는데 오랜만에 궁금한 사람들 만나는 거 즐겁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사람보는 눈이 없을 리 없고 심지어 오랜 세월 흐르며 다들 사회에서 한 딱가리 하는 사람들이 된 지라 서로에게 도움도 되는 것 같고 이래저래 소개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더더욱 정체불명의 허세떠는 창업 관련 네트워킹 같은 데는 안 나가게 된다. 이렇게 연결되는 인연이 매우 감사하고 또 신비롭다.


3단, 업무 미팅 시 너무 도움이 된다. 결국 1-2단에서 이어지는 얘긴데 느슨한 인연들이 이 나이에 서로 연결되면(어린 애들은 잘 모르겠지만) 치정 or 비즈니스 아니겠음? 전자로 흔들릴만큼 안 놀아본 사람이 아니고 이 분야에서는 재야와 무림을 통틀어 절대 고수이므로 의당 후자 쪽인데 단순히 산학관 사무실에서는 선보일 수 없는 우리술의 특장점과 마시는 방법을 지칠 때까지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데 가서 술 마실 필요도, 어디서 만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위치 짱먹는 을지로에서 세상 처음보는 술들로 간만에 만난 인연에게 기쁨주고 사적으로 알 때도 신선함과 에너지 그 자체인 나님께서 간만에 만난 사람들과 언제나처럼 새로운 콘텐츠로 발칙한 기획이나 협업 짜 보는 거 너무너무 즐거움.


4단, 외국 친구들 오면 진짜 너무 좋아. 이건 더 이상 설명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5단, 세상 술꾼이던 내가 자연스레 술을 줄이게 되었다. 한창 때 얘기하면 꼰대라지만 나야말로 한때 개같이 벌어서 개처럼 놀았고(해뜰 때까지 놀다가 아침 해장하고 9시에 출근해서 멀쩡하게 일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청담-압구정-강남-이태원-홍대로 이어지던 온갖 유흥스팟들을 다 섭렵하고 살아온 X세대 유흥 2세대다(1세대는 나이트사람들). 술로는 아무한테도 안 져본 인간인데 뭐든 과하게 쓰면 빨리 망가지고 인생엔 뭐든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건지, 재작년 즈음 부터 술 마시면 토하고 블랙아웃되는 현상을 평소 주량처럼 마시고도 3년째 겪으니 '아 나도 맛탱이 갔구나. 몸 사리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 끊는 게 얼마나 어렵나? 담배보다 더 어려운 게 술이다(음 내가 담배를 안 피워봐서 그런가). 그러나 술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술이 마시고 싶지 않아. 요즘은 소맥 포함 500cc 2잔 정도 용량만 마신다. 개인적으로는 물상대체와 업장소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6단, 소소한 행복과 느리게 가는 게 뭔지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일이든 사랑이든 깊이 고민함에도 불구하고 빨리 결정하고 성취하며 결정내린 이후엔 뒤돌아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구인간들이 말하는 소확행 같은 게 어떤 건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일과 더불어 사랑, 술펀을 시작하기 조금 이전에 만난 지금의 배우자로 하여금 오래 변함없이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를 함께 배워 나가고 있다. 금사빠 천성은 어디 안 가지만 '노력과 끈기, 될 때까지 해보는 것, 함께 가는 것'의 가치에 대해 영혼에 아로 새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운명과 앞날을 알면서 입을 다물고 지금 당장 필요한 이야기만 할 수 있는, 혹은 해 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솔직함이 얼마나 이기적인 미덕인지 그대들도 잊지 말길 바란다.


처음 술펀의 창업할 때 나는 여느 창업 꿈나무들과 마찬가지로 '피칭도 멋지게 하고 투자 많이 받아서 글로벌 진출도 하고 빨리 성공해서 대박나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속도 보다 과정에 고민하게 된다. 만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양조장들의 고민해결사'라는 모토는 '취함존중'이라는 슬로건으로 바뀌었고 필연적으로 '우리가 왜 양조장과 전통주를 살리거나 도와야 하지?'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100년 후 이 땅의 전통 술과 식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로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우 냉정하게 모든 양조장이 살아남을 필요도, 남겨질 필요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주세법이 내세우는 <전통주> 카테고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 정의하고 선택할 수 있는 내적 타당성과 그 근거를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년 후에 산이 쌓이고 강줄기가 생기려면 지금 뜨는 한 삽이 매순간 가장 중요하다. 힘든 순간에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 항상 옳았고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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