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 2019' 첫 출장 원정기 후일담
2019년은 시작부터 다이내믹했다.
한국 서울이 아닌 미국 뉴욕에 있었으니까.
내가 새해를 한국 아닌 다른 국가에서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없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니 2004년 1월을 인도에서 맞았었네.
그때 기록을 주섬주섬 뒤져본다. 인도 어디였지?
여기저기 뒤적 거리다 손발 오글거리는 사진을 찾았다
꼬박 15년만이구나.
돌이켜 보면 그때도 인도 다녀와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심히 고민했던 것 같다.
15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네.
이번엔 내가 만든 조직에 대한 고민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에 다녀와서
밀린 일과 적체된 업무들을 정리하고 음력설을 쇤 후,
쏟아지는 컨설팅 업무 관련 사전 답사를 하러 1박 2일 일정으로 출발했다.
계약서 쓰기 전,
즉 진짜 같이 일을 할지 말지 결정되지 않은 극초기 단계 답사는
여러모로 가벼운 게 좋아서 항상 혼자 다녔는데
이번에는 주니어로 입사해 2년 반을 함께 성장하며
우리 회사의 핵심인력이 되어버린 디자이너 쏠과 함께 했다.
이름 중간에 '솔'자가 들어가는데
입사할 당시 '술펀의 태양이 되라'며
라틴어로 태양이란 의미의 쏠(Sol)을
호칭으로 하기로 한 게 지금까지 와 버렸다.
그리고 이름처럼 우리 회사의 태양이 되어 빛을 듬뿍 비추고 있다.
물론 떡잎이 좋아 잘 성장한 거지만 나도 상사로서 무한 보람이 느껴진다.
우리 회사는 여자들이 다 잘 생겼다. 너무 좋다 >.<
이번에 방문한 양조장들은 크게 3가지 유형,
그리고 이 세가지를 조금씩 짬뽕한 4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귀촌하여 밀농사를 지으며 체험 마을을 꾸준히 꾸려온 곳이다.
쌀을 비롯해 대부분의 곡류와 과실류는 술의 재료로 쓰일 수 있다.
발효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발효된 술을 빚다 보면 증류를 하고 싶어진다.
나를 비롯해 술을 빚어본 그 누구도 이 프로세스를 비껴가지 않는다.
사장님이 처음 시작할 당시 술펀을 찾아왔을 때가 벌써 1년쯤 된 것 같다.
그 동안 제조면허도 무사히 받으시고 이제는 작지만 아담한 양조장,
중국에서 손수 들여온 으리으리한 증류기도 갖추어 놓고 제품 테스트 중이다.
제품 출시 단계에 이르러 주변 여러 사람들의 조언으로 골치가 지끈 거리던 와중,
의도치 않은 선의에 의해 브랜드 디자인에도 두어번 쓴 맛을 보고
'이제는 내 돈 들여 확실'하게 브랜딩하고 싶다고 하셨다.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누군가의 선의로 실패한 라벨과 브랜드 생각보다 많다.
특히 전통주 장인이라며 나온 기사 보고 찾아와서
내가, 혹은 나 아는 디자이너 소개해 줄 테니 제품 라벨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들,
대부분 엄청 오래 걸리고(양조장은 급해 죽지, 제품을 팔아야 돈이 들어오니까)
시안 마음에 안 든다고 수정해 달라 하면 강짜 부리고
돈은 안 받아도 되니 뭐 다른 거 요구하고(이를 테면 술 등등)
그렇다고 퀄리티가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이미 시간은 지났고.
이건 진리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한번씩 외우고 잠들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카카오네비로는 절대 갈 수 없는 희한한 마을이다.
술펀 대표가 관상과 풍수를 본다 카더라는 소문이 돌면,
그 말이 거짓은 아니다 카더라.
내가 다녀본 곳 중 가장 특이한 지형 중 하나로
낙동강이 휘둘어 돌아 산세를 둘러 싸고 있는데
이러한 지형이 잘못되면 답답하고 막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수행자들을 위한 장소 같았다.
낙동강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곳에 서너 가구만이 모여 살며
건물을 통째 대여하는데 한번 와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두번 오게 될 곳이다.
어차피 인연이 닿는 사람만 올 것이고 끌리는 사람에게만 인연이 닿을 곳이다.
내가 가본 한국 최고의 오지 마을은 강원도 정선 거북이마을인데 딱 거기가 생각난다.
여기는 소위 말하는 '대박난다' 보다는 '나노마켓'에 어울리는 시장이다.
만들어진 소주를 몇 가지 마셔 보았는데
퀄리티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제품 개발할 버전은 확실했고 이 다음부턴 주인장 몫이다.
맛을 재현하고 반복할 수 있는 시스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적립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내가 알기론) 우리밀소주를 만드는 곳은 없기 때문에
주질만 일정하게 갖추어진다면 제품만으로도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체험 마을로 입소문을 탔기 때문에
반드시 체험 마을과 이미 찾아노는 내방객들을 데려가야 한다.
이걸 버리고 가자는 브랜드 컨설턴트가 있다면 과감히 같이 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술 제품 시장과 양조장 마케팅력은 아직 그 정도로 탄탄하지 않다.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안고 가야 한다.
환갑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정에 넘치는 사장님은
10여 년 전 식당을 창업하고 필요에 의해 수능을 쳐서
약선음식을 공부하러 대학애 다시 들어갔다고 하신다.
운영 중인 식당에 들러 먼저 밥을 먹었는데
과연 건강에도 좋고 스토리텔링 하기에도 좋은 음식들이 그득 차려졌다.
밥을 먹고 사무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곳으로 오라시기에 가 보았더니
여기도 지자체가 6차 산업 하겠다고 수십억 들여 체험관을 표방한 발효과학관을
거창하게 지어놓았더라.
내겐 벌써 지겨운 얘기다.
그나마 살려 보겠다고 관련인에게 통임대라도 준 게 다행이려나?
초기는 주정으로 침출하고 차차 직접 증류한 소주로 바꾸겠다는데
첫 제품 나오려면 최소 1.5년은 걸리겠고 증류주로 빚기까지는 2년 이상 견적이 나오네.
최근 소비자 입맛이 다양해지고
술다방처럼 먹고 마시는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한국술에도 리큐르 종류가 많이 필요해질 각이다.
3년 정도 잡고 몇 가지 실험을 해 볼만 하겠더라.
생제르망이나 샤르트뢰즈 같은 퀄리티 높은 리큐르 시장이
내가 요즘 점치고 있는 향후 3-5년간 새로 떠오를 한국술 시장이다.
내가 2014년 술펀을 시작할 때 향후 3년 간 증류식 소주 시장이 대세가 될 테니
함께 준비하자고 누누이 말했고,
2016-17년에는 약주-과실주로 이어지는
현재의 10-15%의 기존 끈적거리는 쌀약주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술이라고
옆구리 쿡쿡 찌르고 다녔는데
역시 맑은 술 중에서도 과실이 주가 되거나 과실과 혼합한 술들이 요즘 대세다.
한국 와인도 그 중 하나고.
다시 한번 말한다.
다음 시장은 퀄리티 높은 리큐르 시장이다.
단 거, 안 단 거 전부 환영한다.
그렇지만 설탕 때려넣은 단맛나는 종류는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요즘 지자체에서 다소 잠잠하다 했더니 본청에서(농림부 아님)
국비에 도시나 시비 얹어서 여전히 10억 규모의 식품 제조가공 시설 지원을 해 주더라.
가급적 이런 데는 돈 아무리 많이 준다해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가급적 안 건드리는 편인데
(왜인지는 농촌에 계신 분들은 더 잘 아시리라. 실패할 확률 매우 크고 잘못하면 사기꾼 될 가능성 농후하다.)
다행히 여기 사장님은 기존에 1차 생산 및 가공공장을 해 보신 분이 확장하는 형태라 안심이 되더라.
특히 나는 일을 할 때 사장 한명만 보지 않고 가족이나 직원들을 함께 유심히 살펴 보는데
여긴 술 공장을 담당한다는 사장님 여동생이 일을 차근차근 할 것 같아 다행이다.
사장님은 너무 추진력이 로켓불 같아서 자칫하면 헛다리 짚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왜 조심하느냐면...
내가 바론 이런 스탈이기 때문이다 -_-;;;
창업한지 5년 지나면서 이제는 많이 변했지만
처음에는 나도, 직원도 갈아넣으면 내가 원하는대로 빨리, 전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타트업이란 정글은 시스템이 전부 갖추어진 곳이 아니었다.
아무튼 우리도 예비사회적기업 시절에 지원금을 년간 정기적으로 받은 적이 있지만
정부지원금은 항상 '독'과 '약'의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웬지 셋다 한다면 복잡할 것 같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이름난 양조장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항상 고민한다. 뭘 해야 돈이 될지, 성공할지.
사업에 묘수없다. 빨리 시도하고 실패하면 살짝 수정해도 또 시도하고.
성공할 때까지 계속.
이것저것 많이 한다는 건,
그만큼 전부 다 돈이 안 된다는 뜻이다.
대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실패를 최소화 할 수 있고
실패한 후 다시 시도할 수 있기 위해 한발 앞을 내다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
나는 이걸 회복탄력성이라 표현한다.
이 단계에서는 브랜드나 제품 시장 출시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술펀이 가장 잘 하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우리가 정고집 브랜드를 리뉴얼 할 때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고 설득한 대목이다.
빨리 실험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정도의 비용만 써야 한다.
정고집 브랜드 컨설팅 스토리 ↓
https://brunch.co.kr/@ssoojeenlee/68
작게라도 성공하면 규모를 넓히면서 조금씩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3년만에 다시 찾은 충북 영동 도란원 와이너리는
와인 체험과 제품 판매를 대규모 정부지원없이 꾸준히 해 나가는 곳 중에 하나다.
금액이 적든 크든 '꾸준히' 해서 효과가 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 단계를 위한 현금흐름이 만들어지고 소비자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016년에 보았던 제품들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몇몇 제품은 더이상 생산하지 않는 듯 했다.
당시에도 인상깊었던 게 특히 패키징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셨는데
지금처럼 제품 종류가 10종이 넘어가고
레드-로제-화이트-스파클링 등 라인업이 늘어나면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라벨이나 패키지를 개발하던 단계에서 브랜드 재정립의 현타가 온다.
흩어져 있던 브랜드를 도란원 전체 브랜드로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제품 vs 서비스, 혹은 프리미엄 제품군vs 저가 제품군, 제품 특성별 제품군,
국내 타겟vs해외 타겟 등으로 세분화할 타이밍이 오는데
우리나라는 주세법과 식약청이 매우 까다롭고
지역별, 양조장별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제 아무리 대기업 브랜드를 에이전시에서 수십번 해 봤어도
소규모 농촌 양조장과 6차 산업 현장에서
과연 우리나라에서 술펀 보다 이걸 더 잘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미안하지만 현재로서 없다. 우리가 본좌다.
이렇게까진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회사에 자금이 고갈되고 배가 고파도
우리의 가치를 배반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고
양조장 사정이 정말 어려우면 내 돈 빌려줘가면서 까지 성과를 냈고
마케팅이든 브랜드든 디자인이든 이 바닥에 그 누구도
이렇게 까지 주세법과 전통주 시장의 특수성과 양조장의 개별 특성을
빠르게 이해하고 솔루션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안 될 곳, 함께 할 수 없는 곳,
지금 내가 손잡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할 곳도 명확하다.
대신 우리는 정말 우리가 잘 할 수 있고 함께 가야만 하는 곳만 선택한다.
100년을 함께 갈 수 있는 곳.
1) 한국의 재료를 사용해
2) 정직하게 만들고
3) 수익을 나누고 지역 주민과 상생하고자 하는 곳
그래서 1년에 많아봐야 3-5군데 이상은 못하는 것 같다.
우리에겐 하나의 자부심이다.
갖은 고생을 거쳐 지금은 고객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올해 조금 수가 많아질 수 있는 건
그만큼 내부에 노하우가 적립되었고
지역적으로 집중되어 힘이 좀 덜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울러 외부 인적자원과 믿을만한 파트너들이 늘면서
적재적소에 나 아닌 다른 파트너들을 연결해 줄 수 있게 되어서다.
이 글을 쓰게 된 연유는 이번에 방문한 양조장들만 이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최근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전통주의 방향성,
술펀이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양조장,
만 4년을 거치며 스스로 정리해 온 백년주대계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양조장 트렌드가 대략 이러한 카테고리 안에 포함된다.
심리학에는 인지부조화라는 이론이 있다.
자기의 생각이 행위에 반하거나 모순될 때, 인간이 합리화를 하게 되는 행위인데
태도-행동이론의 하나다.
여우의 신포도가 널리 알려진 인지부조화 일화인데
내가 전통주 시장에서 몇년을 쌩고생하면서 이러한 모순에 대해 오래 고민해 왔다.
내가 사업계획서에서 설득한 부분들이 현장에선 맞지 않아 멘붕에 빠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 사람들 정말 영세한 거 맞아?
이 사람 정말 장인맞아?
뭐 명인? 무형문화재? 그냥 지역유지 하려고 뒷짐지고 다니는 양아친데?
정직한 재료? 그냥 돈 벌려고 막 만드는 거 같은데?
자기 술에 비법있다고? 비법 할배라도 맛없어서 안 사먹겠구만?
직접 농사짓는다고? 5%도 안 들어가고 다 사서 쓰고 있구만?
100년 양조장? 1930년대에? 그냥 친일의 결과물 아냐?
말이 좀 과격하나? 내가 느낀 거 10%만 표현했다.
이번에 간담회 때도 참석자들이 내가 5년 전에 하던 바로 그 고민들을 하고 있더라.
그 답을 찾는데 사업하며 온갖 돈을 쏟아붓고 수업료로 내고서도 만 3년이 걸렸고
다시 세운 나의 가설을 검증하는데 1년이 더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신의 직장이나 마찬가지였던 내 첫 회사를 나올 때,
'나는 왜 거기서 미래를 볼 수 없었을까?'에 대한 답이
내 스스로 확신이 없는 제품을 팔 수 없다는 거였는데
사업을 하면서도 내 타고난 천성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사업 초반에 나는 내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사실 지금도 언제든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언제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
사업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 유형이라고 허구헌날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기존에 본 사업가들은 넉살좋고, 비위좋고, 조아릴 줄 아는 사람들인데,
싫어도 좋은 척 하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약해질 줄 아는 자인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신념은
'이런 내가 망하면 전통주 시장은 희망이 없다. 시장 전체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진흙탕이다.'
는 어찌 보면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5년을 버티고 있으니
거짓말처럼 나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함께 지지대가 되어 주고 있다.
처음에 내 말을 미심쩍어 하거나 결과물에 바로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결국엔 다시 돌고돌아 술펀으로 왔다. 사실 지금은 내가 안 받아주고 있지만.
한번 통수 친 사람은 반드시 두번 친다. 이건 진리니까 두번 명심하자.
언젠가는 내게 무지막지한 손해를 끼친 양조장 사장이 내가 아는 누군가를 통해
"컨설팅사 전부 다 떨어진 사업인데 유일하게 붙은 사람이 술펀 대표님 밖에 없다.
그 사람 실력 하나는 인정한다."라는 말을 전했더라.
나의 그릇은 여기까지라 그런 이기적이고 불투명한 곳은 언젠간 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쪼잔하게 영원히 페친신청도 안 받아줄 생각이다.
나에 대한 칭찬은 내 스스로 하는 사람이기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없다.
반성도 스스로 하고 위로도 스스로 한다.
물론 손해든 손실이든 내가 벌여놓은 일이니 내 식구는 내가 책임진다.
사업가는 사업으로 말하고 컨설턴트는 실력으로 말한다.
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하지 과정과 의도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니까 실패도 할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다.
다만 실패했을 때는 배우고, 반드시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실수를 세번 반복하면 그때부턴 실수가 아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 된다.
사업 5년 차 깨달은 것 중 가장 큰 것들은
뒷통수 안 맞는 노하우 - 일단 세번 정도 간 보고 아예 겸상 안 하면 됨
내 뒷통수 친 자 이기는 노하우 - 그냥 내 갈 길 열심히 가서 대박나면 됨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지금처럼 그대로, 좀 잘 나가게 되어도 변치 말고
그래서 이번 출장다니며 내가 입 밖으로 내어 하는 얘기들을 내 스스로 살펴 보니
저희가 100만, 200만 원 더 벌자고 무한정 일을 하진 않습니다.
이미 같이 하는 양조장들은 2-3년 같이 한 곳들이고
함께 성장하면서 백년주대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돈은 좀 부족할 수도 있고 예산이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00만 원 더 주겠다는 곳이 술맛이 엉망이고
저희가 생각하는 가치와 맞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차라리 술로 받아서 같이 팔아주고 돈 벌어 가면 됩니다.
가치를 따라오는 돈이 진짜지, 돈을 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양조장이라고 다 같지 않습니다.
가용자원은 업체 사정이나 규모에 따라 전부 다릅니다.
어떤 곳은 굳이 브랜딩이나 디자인 비싸게 할 필요없이 기존 제품에 묻어 갈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로, 명인으로, 제품력 자체로 탄탄하면 라벨 좀 촌스러워도 일단 파는 게 우선입니다.
혹은 저희 돈 안주셔도 되니 일단 영업해서 제품부터 팔고 여유 생기면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역시 돈 싸들고 와도 돌려 보냅니다.
혹은 제품이 아니라 체험 중심의 브랜드를 만들어
머티리얼(Material, 판촉물 리플렛, 포스터 등 다양한 홍보물) 중심으로 가야하는 곳들도 있고요.
최적의 핵심 역량을 찾아
빠르게 시도 하고 실패했을 때 조금 수정해서,
혹은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실험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바로 성공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너무 다 맞는 말인데 생각해보면
이게 내가 술펀을 창업한 이후 우리 회사에서 오만고생을 하며 겪은 경험담이다. (눙물 좀 딱고 ㅠ_ㅠ)
그리고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마지막 단락에 쓴 것처럼 술펀에 찾아 오기 까지 다양한 실패를 겪었던 곳이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술펀까지 왔으면 정말 '일'할 사람들이다." 고들 한다.
우리 회사는 2015년 온드림 선정되어 돈이 조금 여유있을 때
그때 가지고 있던 전국 양조장 리스트를 참고로 우편으로 브로셔 새로 제작해 발송한 게 전부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혀 디자인이나 컨설팅하라고 영업같은 걸 해 본 적이 없다.
한번 같이 일을 했던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줬기 때문에
일이 많고 적고를 떠나 꾸준히 들어 왔다.
문제는 어떤 일을,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
린한 핵심 사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였고 양조장과 했던 B2B사업들은 그 답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이렇게 함께 성장한 양조장, 와이너리들과 정부지원없이 시장의 힘만으로
억대 브랜드 프로젝트를 할 날이 오겠지?
아, 때가 되면 진짜 멋진 거 한건 하고 싶다.
(사실 지금부터 준비 중이지만. 2년 본다.)
다녀오는 길에 술펀의 태양에게 첫 장기 출장 소감을 물으니 잠깐 뜸을 들이더니 한 마디로 정리한다.
술펀의 미래는 밝다.
전통주 시장도 앞으로 밝았으면 한다.
술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