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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n 20. 2019

짧고 간략한 전남 여수 맛 탐방기

우리나라가 좁은 것 같아도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참 많다.


내겐 여수도 그 중 하나.

전라도 출장이 종종 있어 장흥, 고흥까지도 몇번을 갔는데 여수는 평생 처음이다.


엑스포와 여수밤바다의 히트로 여수가 이름난 관광지로 거듭나며 더 꺼리지 않았나 한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죽어도 줄 서서는 안 먹고 사람많은 프랜차이즈는 가급적 안 가는, 맛없이 끼니를 때우느니 굶는 인간이라 왠지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는 곳은 안 가고 싶더라.


전라남도야 구석지고 허름한 노포로 들어 갈수록 푸짐하고 저렴한 백반이 나오는 동네인데다 출장으로 가면 그 지역 주민들이 보통은 직접 맛집을 소개해 주기 때문에 출장의 피곤함을 그 지역 로컬푸드와 한상으로 해소한다.


여수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를 단 하루만에 구글 레벨5 로컬 가이드로 만들고야 말았다. 브런치나 블로그까진 귀찮고 간단하게 기록은 남기고 싶을 때 구글 평점 남기기가 나름 괜찮은 것 같더라. 구글에 남긴 평을 조금 더 정리하여 브런치에 남겨 본다. 순서는 맛 순위, 방문 시간 등에 상관없이 그냥 내 맘이다.



1. 여수돼지국밥


단연 여수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이다. 돼지국밥은 비교적 저렴하고 단순한 데다 개성없기 십상인 메뉴라 맛없기는 쉽지만 맛있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누린내라고들 하는 돼지냄새 때문에 아예 못 먹는 사람들도 꽤 많다.


부산 쌍둥이돼지국밥 부터 전남 장성 장터 국밥까지 전국에 잘 한다는 집은 꽤 가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여수돼지국밥은 진정 고수다. 순대국 부터 선지국까지 하수의 식당에선 짙고 진한 국물을 내고 고수는 맑은 국물을 낸다. 진하고 뽀얀 국물은 대체로 첨가물이 들어간다. 콩나물이 들어가고 고춧가루가 들어간 채로 빨간 국물 상태로 나오는 것도 다른 집과 다르다. 해장으로 콩나물국이 너무 맹맹하고 물에 빠진 생선(예.명태 해장국, 동태탕)이 싫은 나같은 사람에게 딱!



2. 서대회무침


막걸리 식초로 무친다는데 대부분은 그냥 수퍼 시판 식초를 쓰는 듯 하다. 어딜가나 비슷한데 엄청 맛있다 이런 집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리 관광지인 여수라도 지역은 서울처럼 늦게까지 영업하지 않는다. 대부분 식당은 8시쯤 문을 닫는다. 사람 북적대고 모르는 사람과 옆에 앉아야 하는 낭만포차는 아무래도 취향이 아니라서 밤 9시쯤 여수수산시장 내 포차에서 포장해서 숙소에서 잎새주와 한잔했다. 낭만포차는 메뉴랑 가격이 거의 비슷한대 해물삼합, 서대회무침 모두 3만 원이다. 내가 여수수산시장에서 포장한 서대회무침은 2만 원. 평점은 별 세개 정도? 엄청 맛난 집 있으면 댓글로 좀 알려달라.


낭만포차 전경, 정말 취향 아님



3. 속풀이식당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백반집이고 구글 평점이 좋은데다 7시 반이 넘었는데 문 연 집이 몇 군데 없어서 망설임없이 들어갔다. 역시 여수 어딜가나 기본으로 나오는 갓김치는 내가 여수있는 동안 먹어본 그것들 중 가장 많이 숙성된 스타일이었는데 어떤 종류건 신김치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 나로선 큰 기대없이 젓가락을 대었으나...와 잘 담근 묵은지(처음에 묵은지용으로 양념없이 잘 담아야 묵어도 맛나거든)만을 먹는 나에게 오오 그 속풀이 식당 갓김치 최고였음.


다만 주문한 매운탕 비롯 몇몇 반찬이 허벌나게 매워 청양고추야 뭐야 하며 뒤적거려 보니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쓰거나 태양초 중에서도 최고 매운맛을 쓰거나 최근 산 고춧가루가 어쩌다 보니 너무 매웠거나 셋중 하나인 것 같더라. 매운맛 좋아하는 나도 눈물 찔끔거리며 속 부여잡고 먹을 정도였으니. 매운 정도만 2단계 정도 낮춘다면 최고의 백반집 인정. 다만 생선구이 재료가 다 떨어져 매운탕을 먹은 게 아쉬웠다. 매운탕용 조기는 생물 아닌 냉동으로 추정되어 아쉬웠지만 국물은 깔금했고 4마리나 들어가서 푸짐했다.


여수수산시장, 교동시장, 서시장 구경하고 밥 먹고 싶으면 와 볼 만 하다.



4. 갯장어=참장어 회와 샤브샤브식 탕


페친들의 추천으로 국동항에서 배를 타고 대경도 입성.

하모, 유비끼, 갯장어, 참장어 이런 용어들이 궁금하신 분은 내가 종종 생선 관련 참조하는 '입질의 추억' 블로그를 추천한다.


https://slds2.tistory.com/593


https://slds2.tistory.com/219


국동항 주차 후 바로 배를 탄다. 배표는 따로 구입할 필요없이 타자마자 1인당 2천원을 내면 자동 왕복 요금이 되고 경도에서 나올 땐 아무 배나 시간맞는 걸 타면 된다.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인 듯.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도(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5천원 안팎) 될 정도로 가깝고 금방 도착하지만(왜 아직 출발 안 하지? 했는데 이미 도착해 있었음-_-) 술을 마시기 위해 일부러 차를 두고 갔다.


경도에선 경도회관이 유명하다는데 페친 한분이 언덕=골프장 너머 자연횟집을 추천하셔서 거기까지 넘어갔다. 음 역시 수요미식회 맛집은 피하는 게 산책인가? 경도회관은 선착장 바로 앞이라 도보 이동 가능하고 골프장 근처 다른 횟집들은 따로 예약없이도 선착장 근처에서 봉고로 대기 중. 자연횟집 봉고가 있길래 그냥 무작정 탔다.


하모 사시미와 유비끼가 반반 나오는 메뉴가 메뉴판엔 없지만 시키면 해 준다. 하모는 대부분 10만원 미만으로는 식당에서 먹을 수 없는 고가의 음식이기에 식당 선정에 신중을 가했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는 못 하겠다. 평일이라 회전율이 떨어지는 걸 감안해도 찐감자나 단호박 같은 대부분의 밑반찬류가 최소 하루밤 지난 티가 났고 모찌나 람부탄 같은 냉동, 기성품류는 아예 없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수는 깔끔하고 괜찮았다. 특이한 건 밑반찬에 깔리는 갓김치와 죽을 시켰을 때 주는 갓김치가 달랐는데 죽에 나오는 김치가 더 최근 것이었고 내 입맛엔 이게 훨씬 맞더라.


마지막에 죽을 시켰는데 여긴 서울식으로 따지면 밥이 아닌 진짜 찹쌀이 나온다. 그래서 오래 끓어야 되지만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단 법, 뜨거운 한입뜨니 바로 찹쌀이구나를 알 수 있는 특유의 끈적함과 단맛이 입안에 퍼지면 군더더기 없는 육수의 맛에 밥 한 통 안 남기고 다 떠먹고야 말았다.


워낙 귀한 데다 제철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니 홀로 여행 아니라면 꼭 먹어보자. 자연횟집을 맛집으로 추천하진 못 하겠고 여수에서 제철에 참장어를 먹어본 게 처음이라 비교대상이 없지만 13-15만 원의 가격을 감안하면 반반 10만 원으로 먹을 수 있으니 가격 대비 괜찮다고는 할 수 있다.



5. 여수의 대표 재래시장 (수산시장 - 교동시장 - 서시장)


수산시장 뒤쪽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 차를 주차하면 여수의 대표 재래시장인 수산시장 - 교동시장 - 서시장을 한번에 돌아볼 수 있다. 어느 지역을 가든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급적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시장은 꼭 들른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재래시장이 사라지거나 5-7일장 형태로 남아있는데 여수는 나름 매일 아침마다 활성화 되어 여행가는 분들에겐 한번쯤 시간 내어 꼭 들러 보라 하고 싶다.


수산 시장에선 이름처럼 회와 생선을, 교동시장에선 건어물과 로컬푸드를, 서시장에선 옷가지, 생필품, 채소류들과 간단한 길거리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빠듯한 일정으로 다양하게 즐기진 못 했지만 여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젓갈류, 대나무에 끼워 말린 바지막, 안데스 감자, 비파를 한바구니 샀으니 됐다. 아, 갓김치도 2kg 샀고 인심 후한 사장님이 커다란 총각김치도 옆에 살포시 담아주셨다.


멍게젓과 전어참젓은 여수쪽에서 처음 본 젓갈들이고 특히 멍게는 지금 제철이라 향이 참 좋았다. 명색이 양조장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라 가급적 젓갈같은 가공식품류는 인증받은 공장에서 나오는 걸 사는 편이다. 교동시장 내에 식품 공장 직영으로 하는 가게가 있어 그곳에서 한번에 구매했다. 갓김치 가게와 젓갈집은 조만간 명함찾아서 사진 추가 하겠음.


약속대로 갓김치 가게 추가



6. 히든베이 호텔


여수 숙소 중 최고. 별 4개인데 5개짜리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터가 좋은지 잠자리가 편했고 호텔 곳곳에 디테일한 감성이 묻어 있고 합리적인 가격에 내부 부대시설까지 알차게 갖추고 있어 맛집은 아니지만 소개한다. 디오션, 엠블 다 필요없고 히든베이 짱짱!


지방 관광호텔 전문 출장러다 보니 아고다 최저가 검색에 매우 특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VIP 달고 있는 나, 별 5개짜리도 비수기 평일 예약하면 전라 경상 지방에 5-6만 원 대 호텔이 수두룩 하다. 이번엔 출장 보단 여행 성격이 강하고 아무 데서나 머리만 대면 자는 나와 달리 조금만 불편해도 잠을 잘 못 자는 예민한 집-_-사람 때문에 3일 내내 다른 숙소에서 묶으며 우리랑 맞는 호텔이 어딘지 살펴보고 싶었다. 게다가 여수가 너무 좋아서 여행 일정을 하루 늘리는 바람에 마지막 호텔은 엠블과 히든베이, 라테라스로 경합했으나 '평화로운 바다'라는 한마디에 꽂혀 들어가기 1시간 전, 트립닷컴(Trip.com)에서  2인 조식 포함 14만 대로 예약했다.


사실 지역 대표 호텔은 여행이나 호텔 포털 보다 자체 웹사이트에서 패키지로 예약하는 게 좋은데 여행 마지막 날인데다 아침에도 일찍 나와 장을 보러 갔다 서울을 일찍 가야 해서 실속형 예약했지만 만약 마지막 날 아니고 중간 날 정도였으면 와인이나 석식 패키지, 체크인-아웃 늘려주는 패키지 예약했을 것 같다.


음 그리고 크루즈에서 본 엠블 호텔 네온사인이 너무 내 취향 아니었어 -_- ;;;


엠블호텔은 대명리조트 계열로 여수에서 제일 좋은 특급 호텔이라던데 우리 커플은 규모나 명성 보단 취향타는 인간이라 지금까지 한국에서 묵어본 호텔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었다. 전 객실 오션뷰에 슬리퍼+카펫 아닌 침대 있는 온돌방도 너무 좋았고(역시 한국인은 맨발에 온돌이지!) 돌산대교나 시내와는 다른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 풍경, 뒤로 난 산책길, 넘치지 않지만 뺄 것 없는 조식 부페 메뉴 및 2면이 유리로 둘러싸여 죽이는 오션뷰, 1.5만 원에 2인이 마실 수 있는 까페의 동백꽃차 세트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섬세한 메뉴들이 정말 잘 디자인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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