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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n 21. 2019

공감과 배려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90년대 生 아싸 vs 인싸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 고민해 온 건데 나는 확실히 공감능력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슬픔이나 우울, 의기소침 같은 다운되는 감정에 대해 좀 무딘 편. 대신 배려심은 쩌는데 그건 내가 머리로 상대를 이해하고 솔루션을 내놓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교 다니면서 과외를 많이 했는데 반에서 꼴찌하는 중2 남자애들 정말 죽어도 이해가 안 되서 야구방망이로 때리면서 가르친 적이 있따-_- #이제는말할수있다 둘 중 하나는 44/44하다가 1년 만에 인문계 진학해서 그래도 대구에선 괜찮은 계명대 자동차학과를 갔고 나머지 하나는 두달 하고 그만뒀다. 


고등학교 때 보면 똑같이 공부를 잘 해도 우리반 ㅅㅇ이는 애들한테 설명을 잘 해주던데 나는 상대적으로 좀 못 했던 것 같다. 설명 1차로 해 주고 못 알아 들으면 속으로 '왜 저걸 몰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라고 좀 깔봤던 것 같음 -_-;;;  #미안하다친구야


그래도 내가 쏘패나 싸패가 되지 않고 이렇게 열심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건 나의 지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을 주고 받는 건 좀 못 해도 한걸음 물러서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대처하는 건 수준급으로 하기 때문이고 결국 카운슬러는 되지 못 했지만 컨설턴트는 되었다.


어느 영역 하나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싸패, 쏘패가 되는 거임. 대부분의 인간은 뭐 하나가 조금씩 부족한 채로 살아간다.



남들이 뭐라건 내가 정의하는 인간의 지능에는 IQ, EQ, SQ가 있는데 IQ는 흔히 알고 있는 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EQ는 감정과 정서를 주관하는 영역, SQ는 Social,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사전에는 SQ를 Spiritual 이라 쓰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세가지 영역(Intelligence, Emotional, Social)이 모두 충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창조성이 살아있는 영적(Spiritual)인간이 탄생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통합하여 한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완성되고 흔히들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결정한다. 셋 중 하나가 현격히 부족하면 사회를 살아가는데 다소 불편을 느낄 것이고 두개 이상이 부족하면 범죄자가 되거나 은둔자가 되거나 흔히 말하는 정상적 사회생활이 불가할 것이다.


요즘 나의 챌린지는 사회 생활 초기에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부쩍 성장한 "주니어를 시니어로 성장시키기"이다. 이게 내가 팀장으로 하는 것과 대표로 하는 게 많이 다른데 팀장으로 팀원을 성장시키다가 안 되면 내가 다른 팀을 가거나 이직을 하거나 팀원을 다른 팀으로 보내면 되거든. 즉 포기하거나 놓아버리면 된다. 그런데 이건 내 회사니까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고 이번에 극복하지 못 하면 같은 챌린지가 또 올 것임을 인생을 여러 굴곡을 통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이 친구는 공감 능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데 배려는 많이 부족하다. 물론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좋은 편이기에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상사로서 한계에 많이 부딪히기도 한다. 다만 이게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세대 전체가 가진 하나의 문화이자 무의식이란 생각이다.


요즘 왜 아싸 vs 인싸 구도가 생겼는지 잘 생각해 보자. 아싸는 타인을 신경쓰면서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의 다른 말이다. 흔히 MBTI나 성격심리학에서 쓰는 내성적, 내향적이란 성격과는 조금 다르다. 이 차이를 쓰다 보면 글이 삼천포로 갈 테니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공감은 잘 하는데 배려는 못 하는 건 왤까? 나의 지식과 배경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타인의 입장을 자기 입장으로 치환하기는 잘 하는데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대로 양육받고 예의바른 태도를 갖춘 사람들은 타인의 입장을 자기 세계에서 이해하려는 데까지는 미치지만 더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수용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좋은 대안을 내놓고 서로 윈윈하는 해결책을 생각하기까지는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한 단계로 가기 전에 먼저 선을 긋고 '넌너난나' 딱 거기까지만 하는 것. 내가 90년대생에게서 느끼는 요즘 아싸들이 딱 이런 것 같다.


배려는 세가지 영역이 모두 높아야 가능해지고 공감은 IQ와 EQ의 영역 정도인 것으로 사료된다. 프리랜서나 1인 기업 하려면 자신이 가진 특수한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결국 영업력이 좌우한다. 이걸 모르고 회사생활 할 때 개발 잘 했으니, 디자인 잘 했으니, 영상 잘 찍었으니 프리랜서 해서 자유롭게 시간 쓰며 편하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완성본을 스탠다드 이상의 퀄리티로 뽑아주는 이상(이게 최소한 클라이언트에게 해야 할 몫. 그 이하로 뽑거나 완성 못 해주려거든 이 바닥 물 흐리지 말고 돈 받거나 계약을 해지마) 고객은 결과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과정을 중시하며 상대와의 신뢰로 최종 평가하고 이후 추가 계약을 진행하거나 입소문을 낸다.


나만 빼고(난 이 시대 진정한 핵인싸 흥부자 탑관종임) 다 아싸인 우리 회사가 너무 적막하여 올해는 90년대 핵인싸를 뽑아 보자 맘 먹었는데 핵인싸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 보여서 좀 다행인 것 같고 브릿지가 되어 줄 80년대 생들도 절로 찾아와 '음 물 들어오나 보다' 하고 있는 중인데 90년대 아싸들이 60-80인싸들과 일해야 하니 앞으로 세대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7080들은 90년대 핵아싸들을 절대 이해 못할 것 같고 나처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도 안 할 것 같은데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면 결국 인싸들이 승리할 것이다. 


'인싸됨'은 앞으로 더욱 큰 미덕이 될 것이며 '인싸'라는 말의 등장 자체가 향후 살아남을 자들에게 보내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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