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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l 02. 2019

페미니즘은 일터에서 왜 중요한가?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술은 마시면 늘고 일도 하면 는다. 단 잠재력과 떡잎을 보유한 자들에 한하여.


아예 맥주 한 캔만 마셔도 픽픽 쓰러지는 사람이라면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게 상책이겠지만 타고난 주당은 학습으로 강화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자기 계발서나 티브이 휴먼다큐 등에 "30대, 40대, 50대까지 실패만 하다가 성공한 스토리"가 허구한 날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실패만 하다 성공했으니 내게도 희망이?'라는 쓸데없는 기대를 찾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그들이 실패를 해 보았다는 것이다. 실패를 해 보았다는 건 도전을 해 보았다는 얘기다. 즉 떡잎이 있었으나 잡초와 비바람에 거세게 흔들리다 드디어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말이지. 아예 떡잎조차 틔워보지 못한 씨앗이 아니란 소리다.


불혹이 되고 보니 갓 스무 살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의 허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을 했다고 지금 다 같은 모습, 비슷한 레벨로 살고 있나? 절대 그렇지 않다. 올해 초 우리 회사와 결별한 남성 직원 중 내가 15년 사회생활하며 만난 최악의 케이스의 전형인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력 실패 전철을 밟는 유형의 원형과 같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까지의 스펙은 평균 정도 되는데(입시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하나의 성공, 그러나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성공이란 없었다고 한다) 경력 생활 10-20년이 넘는 동안 급여 150-250만 원 정도 받는 리스크 없고 챌린지 없는 일을 하면서 나의 자아는 일터에서 찾지 않는다(그렇다고 다른 데서 딱히 찾아지지도 않거나 찾으려고 노력도 하지 못하는)며 정신승리하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세상에 대한 원망과 낮은 자존감만 남은 사람들.


내가 자아를 무조건 일터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꼰대는 아니다. 차라리 생계는 일터에서 찾고 자아는 취미 혹은 부업에서 찾겠다는 확실한 스탠스라도 있으면 좋겠다. 혹은 내 커리어는 일이나 성취보다는 봉사에서 찾겠다며 헌신하는 삶을 살던지, 돈은 좀 못 벌어도 예술을 하며 자아 발산이라도 해 보겠다던지. 혹은 난 느슨한 삶이 좋으니 적당히 돈 벌어 생계유지하고 내 시간을 소중히 쓰겠다던지. 이도 저도 아닌 채 학벌 성취 같은 생애 성공을 맛보고는 싶은데 위험을 무릅쓸 용기 따윈 없고 여기저기 간만 보다 좋아 보이는 어딘가에 기웃거리며 허송세월하고 별 것 없는 인맥이나 관계에 의지해 박쥐처럼 옮겨 다니다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레퍼런스만 쥐게 되면 세상에 남은 일자리는 어용 조직 사무장이나 정부 사업 하청의 하청 콩고물 받아먹는 일들인데 이건 나이 50 넘어가면 하기도 힘들고 솔직히 정말 비굴하게 살아가야 한다. 모기처럼 손발 구분 없이 착한 척, 비위 없는 척, 온순한 척. (아 그냥 정말 내 스타일은 아니네. 옳고 그름을 떠나 제 삶의 지향과는 정반대에 있는 모습이라 그냥 싫습니다. 저를 비난하세요.)


그리고 마치 내게 학습이라도 시켜주듯 비슷한 케이스의 다른 연령대(40-60대까지 말 그대 다양하게) 사람들을 연속 3번 정도 일 경험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개고생하며 똥을 치워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명백한 여초인 우리 회사의 주니어들을 어떻게 시니어로 성장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해 지금까지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다른 스타일의 업무를 하는 곳이라 기존의 잡마켓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창업 초기 3년 동안 수없이 경험하고 나의 수업료이기도 한 인건비, 즉 사회 생활 경력은 화려했으나 생소하다 못해 생경한 아이템 스타트업인 우리 회사에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꽤나 많은 급여를 지출하고서야 깨달았다.


아, 이건 우리 회사=술펀에 맞는 방식이 아니구나.


내가 대학생 대상의 취업컨설팅 및 교육, 써치펌에서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력 계발, 커리어 설계는 누군가의 삶에서 특정 부분, 한 장면이었을 뿐이지 한 회사 안의 개개인이 처한 연속선상의 발전 단계에는 태부족이란 생각이다. 타조직에서 경험한 관리자로서의 역량도 창업자, 회사 대표로서 필요로 하는 재량과는 다른 문제였다.


창업은 신세계다.


나는 대학에서 진학과 취업을 고민할 때 상담심리/임상심리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택해 짧지 않은 기간, 열성적으로 비전공자 스터디를 했고 이미 심리학 복수전공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혼 여성이 부부 상담 혹은 양육 상담을 한다고 "해 보지 못 했으면 닥치라"는 레퍼토리가 나올 때 "연쇄 살인해 봐야 프로파일러하고 강간살인해야 심리수사하냐?"며 사이다 반박을 자주 날려주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창업은 정말 신세계다.


대표를 해 보지 않은 자, 절대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카피에 얼마나 위안을 받았던가 -_-;;;


끝없는 도전과 문제해결의 반복,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부모 이상의 책임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직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압감,

내일 당장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매일매일의 절박함,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나노마이크로 세계의 점까지도 보이는 세밀함과 민감함이 자동으로 갖추어진다.

창업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 세상을 보는 시야는 마치 과장 좀 보태서 새로 태어난 것과도 같다.


언젠가 우리 회사에 면접 보러 온 불혹의 여성분이 있었는데 국내 3대 NGO 중 하나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다 퇴사 후 잠깐 쉬고 다시 구직 중이란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고 내가 소개해 준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 아이템이라 다소 걱정은 되었고 본인은 원하지만 사실 잘 될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경력 전환을 하고 싶었다면 최소 5년은 빨랐어야 된다. 남자도 30대 중반 넘어가면 아예 다른 분야로 가기 힘든데 여자는 더 힘들다. 미안하지만 보수적이고 과거를 중시하는 한국의 현실이 그러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조언하길, 지금이라도 기존의 커리어 단계를 밟고 싶지 않거든 늦었다 생각 말고 딱 1년만 돈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를 테스트해 봐라. 스타트업이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비영리 조직에서 본인의 역량을 풀업(Full-up)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고 10년 일했으니 기존의 인맥을 활용해 동시에 서너 건의 프리랜서 잡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40대 넘어가면 더 늦다. 남들 20대에 하던 걸 놓쳤으니 지금이라도 해봐야 한다. 당신 말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그런데 사람 잘 안 바뀐다. 결국 이 분은 본인이 전혀 흥미를 느끼진 못 하지만 기존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으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 뻔한 결말은 사실 크게 궁금하지도 않다.


사실 비슷한 케이스는 헤드헌터를 하는 2년 동안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참으로 답답한 것이 여자들은 도전(Challenge)이 왔을 때 부딪혀 보고 실패하는 것 보다 두려움과 회피를 먼저 경험하거나 학습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지금 당장은 '안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긴 세월이 지났을 때 '도태'되어 버린다는 의미다. 비슷한 레벨의 다른 사람들이 도전-실패-도전-실패-성공을 무한반복하는 동안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제자리를 걷게 되고 앞서 나간 사람들에 비해 뒤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도전하는 삶을 살 필요도, 살 수도 없다. 그렇지만 너무도 명백하게 같은 기질,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성별 차이가 너무나 극명하다는 것이다. "넌 할 수 있어. 한번 해 보렴!" 보다 "여자애가 그런 걸 왜 해?"라는 비난이나 무시를 오랜 시간에 걸쳐 더욱 많이 경험하며 체화해 온 것이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문구는 나도 많이 들으며 컸지만 장녀로 태어난 여성에게 하등 도움되지 않는 소리다. 내가 여기에서 벗어나는 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차마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과 선택, 인정욕구와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던 과거를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을 보면서 자각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장남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고. 내가 오랜 시간 관찰하며 살펴보니 장남 혹은 남성에겐 금전과 물질을 요구하지만 장녀 혹은 여성에겐 희생과 시간을 요구한다. 시간을 뺐어 쓰는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저평가는 이러한 논리에서 비롯된다. 장남이 돈을 벌어 부모를 부양하는 집안에서도 부양은 장남의 아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한다. 독박육아를 하는 커리어우먼이 아내의 시간을 사회적 성취를 위해 이용하는 남자들을 죽어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텅빈 고대 사무실 안녕, 3년 간 고마웠다!


어제 이사를 하는데 업체에서 남자 두 분이 오셨고 술랩에 대기하던 직원들이 짐 나르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두 분 모두 하나같이 대놓고 진심 담아 "사장님네 회사는 여자분들이 훨씬 잘하시네요. 힘도 장사고" 하시는데 전혀 입 발린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둘이서 드는 소파를 한 명이 번쩍 들고 옮기고 남자들 둘이 들고 온 플라스틱 캐리어를 혼자 번쩍 내려놓는다. 와 진짜 언니들 짱멋존멋 @.@


그런데 회사에서 이렇게 똘똘한 나의 애제자들, 아니 애직원들 조차 밖에 내놓고 고객, 특히 남성 파트너들을 상대하게 하면 속이 터진다. 이 속 터짐  현상은 "여성" 대표인 나 밖에 알아챌 수 없으리라. 아마 본인들조차도 전혀 캐치하지 못할 것이다. 창업을 하고 신세계에서 많은 챌린지를 극복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한 챌린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는 이전까지 내가 직원들로부터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성별 관계가 아닌 능력이나 경력에서 찾았지만 여성 주니어들을 시니어로 성장시켜가는 단계에서, 또 주니어들을 한꺼번에 많이 채용하는 단계에서 이것이 철저하게 성별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관적 스펙으로 보나 주관적 판단으로 보나, 내가 사회생활에서 경험한 그 어떤 사람들에 견주어 부족할 것이 없는데 투머치(Too Much) 배려와 이해를 하려고 한다. 대표로서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총칼 들고 싸워야 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상대에게 자신의 방패를 내어준다. 팽팽한 긴장관계 속 밀당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먼저 무릎을 꿇고 회피한다. 결국 회사의 수입과 매출에 중대한 타격을 미치고 비즈니스를 위태롭게 한다. 리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겉으로 생색내고 다니는 건 남자가, 실무와 뒤치다꺼리는 여자가 하는 이런 장면들에 너무 익숙하여 우리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많은 장면에서 여성이 장이 되고, 리더가 되고, 대표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한다.


학창 시절에 안 그러던 사람들도 일터에만 오면 이렇게 변한다. 왜지? 이건 일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에서도 그러하다. 혹시라도 먼저 고민 상담이라도 하면 말한다.


"애써 이해해 주지 마. 팩트만 봐.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오래 일 못 해. 한국 사회가 그래. 그거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야."



짤방은 전부 구글신에게




이건 모든 여성들, 여성 창업자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을 체화해 왔고 그것을 다룰 줄 알고 조정할 줄 안다. (여기서 케바케 얘기 꺼내면 저한테 맞습니다. 세상에 100% 확률이나 통계나 유형은 없으니까요.) 술펀이라는 세계에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똑똑하고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시장은 정글이고 우리가 총칼들고 싸워야 할 상대의 97%는 남자다. 가부장과 유교 문화의 악덕만 남은 한국 사회에서 그들은 최소한 여성과 아이에게 강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해왔다. 가스라이팅은 꼭 성별 관계로만 일어나진 않는다. 에이전시 성격의 비즈니스와 같이 남성 대표나 클라이언트를 오래 상대해 온 회사의 여성 경력자들도 부하직원들을 매우 능수능란하게 가스라이팅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은 여성들, 경쟁 우위를 점하려는 여성들, 내 뒤에 올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의식하지 않는 여자 상사들도 종종 사용한다.


여성 대표, 여성 창업자를 인큐베이팅하는 기관의 이사장이 그러더라. 여자들이 공격적으로 사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창업이 다른 남자 대표들처럼 꿈의 실현이나 사회적 성취 아닌 생존이라 그렇다고. 여성 창업에 관해 이처럼 슬픈 말이 또 있을까? 그들은 창업에 실패하면 단순히 파산하거나 경력 실패가 되는 게 아니라 생존이 불가한 처지에 내몰린다고. 실패한 대다수의 남성들이 어떻게든 인맥과 명의도용, 대출, 재취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여러 문제로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도 여중, 여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서 신나게 놀고 외국계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 유리천장이나 페미니즘 같은 건 공부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선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창업을 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페미 전사가 되어 있더라. 어떤 페미니즘 전공한 대표님은 내게 현실형 페미니스트라고 하던데 공부를 하거나 의식을 가지고 파고든 게 아니라 삶 속에서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얼마 전에 몇 년을 알아오면서도 전혀 몰랐던 여성 대표님의 민낯을 본 적이 있는데 약자와 함께 있을 때 성적 대상화로 남녀를 불문하고 성차별적 언어폭력을 쏟아내는 것이다.


화장실 가려는 남학생에게 페트병을 쥐어주며 "여기다 싸. 아 이거 너무 작니?"

남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마치 성접대를 시키듯 어디 누구 옆에 가서 앉아라, 여자들 사이에 껴 앉아라. 피어싱하고 탈코르셋 한 여학생에게 "너 그렇게 다니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화장도 하고 거울 좀 보렴. 내가 오늘 너 짝 지어줄게."


대략 이런 식. 보다 못한 내가 "대표님 그거 너무 성차별적 발언 아니에요?" 두어 번 말했지만 못 알아듣더라. 결국 스스로 공부하고 깨어나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위에서 비슷한 연령대 및 경력 생활자인 우리 회사를 퇴사한 남성과 면접 보러 온 여성에 대해 언급했다. 객관적으로 여성의 경력이 남성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력서만으로 따지기엔 여성이 월등히 좋았다. 헤드헌터로서 장담하건대 조직에서 좋아할 만한 이력서다. 남성은 정반대다. 잦은 이직과 불투명한 경력기술이 특히 흠이다. 개인적 판단을 넘어 누가 봐도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고 목소리 톤도 차분하고 좋았다. 개인의 사생활이며 누군지 드러날 것 같아 더 이상 상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내가 알게 된 같은 연령대의 두 사람이 재취업을 하는 데 있어 느낀 고충과 새로운 일터로 출근하기까지의 시간은 현격히 차이가 있었다. 예상하다시피 여성 쪽이 힘들고 오래 걸렸다.


페미니즘은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구원할 것이며 인간의 존엄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보편타당한 삶의 방식이다.


이왕 나는 창업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했고 술펀이라는 작은 우주를 만들었으니 지금까지 그랬듯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을 할 것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많은 개인들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개인적 미션이라는 생각을 하며 동이 터오는 새벽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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