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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Oct 09. 2019

무능은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을까?

두괄식이다, 없다.

(페이스북에 썼던 글 아카이빙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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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출처: 구글 검색


대표를 하는, 혹은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글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잘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하고 무능한 사람의 성장이란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람을 갈기에 좋은 '자기성장'아란 허울 좋은 울타리 조차 무능 앞에선 본연이 가진 무능한 한계치 안에서의 성장만이 남을 뿐이다.


노오력하면 된다고들 하지만, 그 '노력할 수 있는 역량' 조차도 능력의 일부, 아니 매우 큰 부분이다.  

노오력이 무엇인지, 노오력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하고 있는 게 정말 노오력이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갖추기 힘든 역량이다.


뭐 다들 열심히 살 필요있겠나?
자기 한계를 빨리 깨닫고 대충 사는 것도 한 방법이지.
물론 이 경우에도 남한테 민폐는 끼치지 말고 대충 살아도 되는 길을 가자.



↑↑↑ 여기까지는 대표해 본 사람들이 공감할 내용


↓↓↓ 여기서부턴 그냥 내 생각


능력과 노력의 상호작용과 자아와의 상관관계에 따라 행복에 대한 정의와 비전이 당연히 달라질 것이고 삶의 행보 역시 차이날 수 밖에 없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잘 하는 사람들은 날 때 부터 능력이 있고 자라면서 스스로 노오력도 한다.


이 두가지가 갖추어지면 성인이 되어 대학 이상의 학력을 쌓거나 사회에서 경력을 쌓은 후 3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같은 대학, 전공을 했더라도 다른 삶의 면모를 지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타인이랑 비교하지 말고 자신과 싸우자, 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데 지구에서 나를 비롯한 인간종자들을 관찰해 보니까 이것조차도 천성과 환경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삶의 어느 순간, 마치 트리거를 당기 듯 자기를 발견하고 빛을 발하더라.


근데 이건 개인에 국한된 문제고 팀은 또 다른 문젠 거 같다. 그래서 대표를 하는 건 좀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팀은 개인의 역량에서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데 그래서 케미라는 말이 생긴 것이고 한국같은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조직에 문제있는 개인이 있을 때 상급자가 재빨리 빵꾸를 떼우는 자세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아무리 밀레니얼 밀레니얼 거려도 대한민국은 12년 의무교육기간은 커녕 대학생활에서 조차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고 위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언어를 사용하므로 하급자는 윗사람에게 달려들지 않고 동급자끼리도 잘 싸우지 않는다. 내가 젤 싫어하는 게 분명 틀린 걸 다르다고 퉁치는 순간인데 "다른을 존중하자"는 프랑스식 똘레랑스가 나쁜 것만 들어와서 헬조선 불반도화 되었다. 그래서 감정과 결과와 성과를 항상 분리해서 생각하고 칼과 당근과 채찍과 방패는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어야 한다.


살면 살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개념과 모호해지는 정의가 있는데 전자는 대부분 자기를 중심으로 한 것들이고 후자는 대부분 타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것들이다. 이 2가지가 반대가 되면 태극기 부대가 되고 꼰대가 되고 이기적인 노인이 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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