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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Feb 10. 2020

내 이름이 흔해 빠진 수진이 된 썰

더이상 망할 생은 없다


이름 얘기하니까 오랜만에 썰 푼다.


내 이름이 지극히 평범한 "이수진"이 되기까지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갓난쟁이였던 나는 기억이 없고 다만 그로부터 이십 수년이 흘러 9남매 중 젤 막내였던 우리 아빠였던지라 작은 아부지만큼이나 나이가 많던 큰아부지네 아들들 중 둘째가 장성하여 혼인을 하고 다시 아이 둘을 낳은 후에 알게 된 이야기다.


내가 대학 2학년 때쯤 우리 아빠의 첫째 형님인 나의 큰아부지에게서 태어난 둘째 아들은 다시 아이를 낳아 나의 오촌 되는 남자아이 "이우진"이 태어났다.


나랑 모음 한자 다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내아이.

그때서야 우리 엄마가 얘기해 준 내 이름 비화! 뚜둔~


(사주 나올라 받아 적어라 훌륭한 사람 될 거니까)


198X년 3월의 어느 날, 대구에선 앞산이라 불리던 비슬산 바로 아래 봉덕동의 어느 작은 산부인과에서 훗날 '이 구역의 미친년이 될'  내가 태어났다. 얼마나 정기를 다 빨아먹고 싶었던지 예정일 지나 분만촉진제를 맞고도 안 태어나려고 했었나 보다. 병원에 입원하고도 하루 꼬박 진통으로 엄마를 고생시키고 태양이 드디어 겨울의 낮은 고도를 비집고 봄의 태동이 막 시작되어 음의 기운이 양기로 변하여 가장 생의 기운이 충만 할 춘분점이 지나 낮의 태양을 전부 흡수하고 해가 지자마자 태어났다.


태어난 시각 저녁 7시 28분, 대구의 경도상 28분에 유시가 술시로 바뀌고 3분이 지나 31분이 되면 태양과 달의 거리를 투사하여 구하는 포인트 오브 스피릿이 염소자리로 넘어가기 직전 사수 끝자락에 태어났다.


그래서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살짝 속세에서 지금보다 편하게 살았을 인간이 지금 이렇게 개고생을 하며 협소했던 분야, 남들이 미쳐 발견 못한 기회를 찾아 일에 미쳐 살아가고 있다.


9남매 중 막내였던 아부지라 대가족네 집안에 9년 만, 5남매 중 비록 둘째였으나 큰 언니보다 먼저 시집간 외갓집에도 첫번째 아이가 태어났던지라 난 진짜레알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듬뿍 받고 자랐다. 남아선호 사상 이런 거 필요 없고 그냥 미친 듯이 사랑받았다. 아빠의 형, 누나네가 낳은 우리 사촌들은 이미 초등학생(그땐 국민학생이었지만) 이상, 대학생들도 많았기에 정말 난 모자람 없는 사랑과 귀여움만을 독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예정일까지 넘겼으니 내가 얼마나 건강했겠나?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자애들 합쳐서 반에서 3번째 이내로 키가 컸다. 그리고 신동이라면서 뭐든지 발육이 빨라서 말도 엄청 능숙하게 하고 앉기 걷기 뛰기 뭔들 남들보다 빠르지 않은 게 없어서 진짜 온갖 노래와 춤과 동화책 읽기 같은 남들 앞에서 재롱부리는 것 중에 못 하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근데 내가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정말 못 생겼거든. 시커먼 게 -_-;;; 근데 이런 거랑 상관없이 사랑받았으니까 저는 지금도 제가 엄청 잘난 줄 압니다. 하하하.


우리 아빠는 첫딸 낳았다고 작명소를 갔다.

"내가 첫 딸을 낳았으니 비싼 돈 주고 좋은 이름 지어 줘야지!"

지금은 무척 소원해진 모녀 관계지만 그래도 우리 아빠 역시 나 어릴 땐 딸바보였던 게지.


근데 작명소 아저씨가 내민 이름이 뭐였게?

.

.

.

..ㅋ

..

.

.

.ㅋㅋ

.

.

.

.

였음ㅋㅋㅋㅋㅋㅋㅋ

이 무슨!

기생 이름도 아니고!

감히 큰 인물이 될 내 딸에게!

부푼 꿈을 안고 찾아갔던 우리 아빠는 버럭버럭 화를 내며 돈도 안 주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미궁 속을 떠돌며 아직 "아가야", "우리 딸내미" 정도로 불리고 있던 나에게, 아니 우리 엄마에게 꿈에 백발이 성성하고 수염 긴 노인이 나타나 아이 이름을 "우진"으로 지으라는 말 그대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할배가 누군지는 우리 엄마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돌아가시긴 했지만 분명 외할아버지는 또 아니고. 무튼 엄마와 아빠는 의논 끝에 이우진이 너무 남자아이 같다며 ㅇ을 ㅅ으로 고쳐 이수진으로 바꿔지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나는 왼손잡이 였는데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왼손는 뭔가 버릇없는 상놈(아 그 놈의 양반병! 그래도 우리집은 전의 이씨 가문 족보에 여자들 이름 올려주는 진보적(?)인 집안이었음)들이나 쓰는 거라며 왼손으로 숟가락 잡으면 손등 맞으면서 고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내가 몇번 페북에도 올렸지만 자라면서, 그리고 성인되어 인대 늘어나거나 삔 곳이 전부 오른쪽이다. 오른 팔, 오른 발. 원래 왼손이 능숙했던 내가 인위적으로 오른쪽만 쓰는 사람으로 고쳐지면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성씨라도 특이했으면 ;;;


싸이월드 유행하던 시절, "이수진"으로 뒤지면 거짓말 아니고 몇 천명씩 나오고 한반에 성까진 아니어도 "수진"이란 이름 똑같은 애는 학창시절 1.5해 걸러 한번은 꼭 만났던 것 같다. 한 학교 안에는 반드시 있었고.

나처럼 살짝 집착적으로 남이랑 같은 거 싫어하고 독창적인 거 좋아하는 인간에게 이수진이란 흔한 이름은 따라다니는 족쇄와 같이 정이 안 가는 이름이다.

 

이술진이란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은 게 100% 농담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술"진은 좀 농담인데 이수진이란 이름은 참 내 이름 같지가 않은 거지. 그래서 본 계정을 페북에 젤 처음 팔 때도 SJ라 쓰고 이름을 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이십 수년이 흘러 이씨네 집안에 "우진"이란 아이가 하나 더 생기자 그때서야 엄마는 아무한테도, 아니 나한테 한번도 하지 않았던 얘기를 들려 주었다. 네 이름을 우진으로 안 지었더니 결국 다른 우진이 하나 더 생긴 게 너무나 신기하다고. 맹세코 엄마 뿐 아니라 나도 사촌오빠네 아이 이름 짓는데 1도 관여하지 않았고 다 짓고 나서야 알았다는 거. 


아무튼 흔해 빠진 이름 달고 나와서 진짜 흔하지 않은 삶 살고 있다. 

물론 겉으로 봐서는 반도의 흔녀 그 자체지만. 


태어날 때 한번 망하고

이름지을 때 두번 망하고

왼손 교정 당해 세번 망하고 나니

딱히 더 이상 망할 일은 없지 싶다!

...는 생각이 나를 초긍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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