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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년간 엄마를 살며 익힌 것은

by 나날


첫째가 만 8살이고, 둘째가 만 3살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당시 나는 첫째를 키워봤음에도 여전히 둘째의 이빨 닦이는 법을 잘 모르겠더라.

아니, 이론적으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구석구석 잘 닦아주고 싶지만,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아이는 아프다고 입을 열지 않으니.. 치카치카는 첫째에 이어서 둘째에게도 어려웠다. 그래서 첫째와 같은 우를 범하기 전에 둘째의 이빨을 잘 닦아주는 것은 포기하고, 일단 첫째에게 동생 이빨을 좀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둘이 이빨 닦기 놀이를 하도록 놔두며 나는 뒤로 빠지는 것이 나의 궁여지책이었다. 다행인 건, 그렇다 하여 금방이라도 아이의 이빨이 다 썩어버릴까 봐 내 마음이 타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첫째의 단원평가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 시험 준비를 착착 하게 되는 걸까? '여전히’ 나는 그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역시 다행인 건, 나는 아이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아이가 틀려온다고 해도 괜찮다. 내가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분명히 아이는 지금 무엇인가를 느끼고 알아가는 중일 테니까. 그것을 토대로 결국엔 아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 때에 필요한 힘을 쏟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방치일까? 나는 이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첫째가 아기일 때, 나는 아이의 울음을 견디지 못했다.

아이가 울면 내 마음이 타들어가니 수면교육은 애당초 나와 맞는 육아방식이 아니었다. 아이는 안아달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나는 내 몸이 닳는지도 모르고 아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안아주었다. 거절하는 것보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밤에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서 샤워를 하는데, 잠들었던 아이가 금세 다시 깨서 울면,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는 대신 씻던 것을 멈추고 다시 직접 아이를 재우곤 했다. 나는 왜 남편에게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재우는 기회를 주지 못했을까. 그때 나는 ‘엄마니까’ 아이가 울면 내 마음이 힘든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아이의 감정을 최대한 수용해주고 싶었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둘째를 키우는 나는 그렇지 않더라.

아이의 울음은 울음으로, 아이의 요구는 요구로 접수는 하되 크게 동요되지 않는 나를 만나게 되어 놀랐다. 그리고 그렇게 치유되어 있고, 성장해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치유이고 성장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렇다. 연인들이 처음 사랑에 빠지며 흔히 하는 말이 “우리는 하나”이다. 부부가 결혼하며 “우리는 한 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순간은 너의 숨과 내 숨이 서로 뒤섞이는 때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 자신의 숨을 쉬고, 각자 자기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때이지 않을까. 한 때는 나와 한 몸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아이와도 그렇더라.



내가 10년간 엄마를 살며 익힌 것은 어떤 기술이나 정보라기보다,
‘아이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였다.


‘너와 나를 구분’해내고부터 나의 엄마 라이프는 더 수월해졌고, 지금도 그 범위를 계속 넓혀가며 연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드디어 첫째가 엄마와 자신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늘 엄마를 아쉬워하며 엄마를 곁에 둘 마음으로 “엄마 좋아”만 반복하던 아이였는데, 최근 깨달았다는 듯이 “엄마는 나랑 달라”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나는 시원섭섭하고, 흐뭇하다. 그렇게 우선은 내가, 그리고 아이가 정서적으로 독립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아이와 나를 상상한다. 그 길은 때론 겹쳐졌다가 멀어졌다가, 그렇게 좋은 이웃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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