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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더 사랑스러워져 볼까요.

엄마의 신년 목표

by 나날

올해를 시작하며, 내가 세운 신년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가족들을 더 믿고
그들에게 향한 나의 간섭을 줄이며
나는 나날이 사랑스러워지자!



이 목표를 가지게 된 이유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잠을 자다가 목에서 신물이 올라와서 켁켁 기침을 하며 깼다. 그러는 날이 반복되는데도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화가 너무 안되고 목이 조여드는 증상도 있었는데, 오래도록 나아지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만성 역류성식도염'이라고 했다. 의사에게 위내시경을 해보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동안 나는 '위염은 현대인의 친구'라고 여기며 모르는 척하고 살아왔지만, 이쯤 되니 더 이상 점검을 미룰 수는 없었다.


위내시경 결과를 듣던 날에 나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조직을 떼어내서 암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걱정을 넘어서 두렵기도 했다. 다행히 당장 무서운 일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수명이 짧아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습관처럼 위산을 과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나의 위장이 안쓰러웠다. 더 이상 폴립이 늘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위산을 줄여야 할지, 당장 습관이 된 커피는 어찌할지 등등 생각이 복잡하게 엉켰다.






그 당시에 나는 첫째의 생활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높았고, 둘째가 어려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의 학교생활과 공부, 둘째의 성장이 모두 내 책임만 같았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시작된 생활들이 낯설기만 한가운데,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옳다고 여기는' 습관이 아이에게 잡혀있지 않으니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당시 나에게는 아이가 학교에 지각하거나, 단원평가에서 한 두 개를 틀리면 큰일이 나는 듯 여겨졌다. 첫째와 둘째 육아 사이에서 나는 낑낑거렸고, 힘드니 힘을 내기 위해 커피를 계속 마셨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위산이 나왔고, 커피를 마시니 또 위산이 나오는 형국이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싶고, 성인이 된 아이들과도 함께 살아보고 싶기 때문에 노력했다. 내 위에서 위산이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한 해, 두 해를 지나며 성났던 나의 위가 평온한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나의 하루에 즐거운 시간이 늘어났고, 가족들이 웃는 시간도 늘어났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 귀여움을 받는 시간이 늘고 있고, 둘째도 정체되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되었다.심지어 우리는 때때로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답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에 있었다. 아이가 언제 일어나서 언제 자야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어떤 것부터 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어떤 성과가 나와야 하고 등등등 나에게는 수많은 잣대가 있었는데, 그게 나를 힘들 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 잣대를 내려놓으니, 아이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시간표와 속도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설령 아이가 지각을 한다고 해도 괜찮으려고 다짐하고, 아이의 지각을 수용하는 노력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우리의 악순환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많은 것들이 나의 불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불안은 염려와 걱정에서 시작된 것들이 많은데, 내 불안으로 가족을 좌지우지하려다 보니 가족들도 괴롭고 나도 고통스럽다는 것은 ‘위에 생긴 폴립들’을 보고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ㅋㅋㅋ 그러다 지각할껄
ㅋㅋㅋ 이제 혼자도 잘 하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지각한다, 얼른! 얼른! 얼른!"을 외치던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나는 편하다. 그리고 첫째와의 관계도 더 나아졌으니, 우리는 더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내년에도 나는 매일 더 사랑스러워지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통제를 걷어내기 위해서 용기를 낼 것이다.


나에게 엄마로서 목표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 나는 '있는 그대로 우리'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에 희망을 두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엄마들에게 이런 신년 목표도 있다고 알리고 싶다. 물론 아이들의 학습도 중요하다. 하지만 혹시 엄마의 몸이 아프다면, 이런 신년 계획은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다. 그래도 괜찮다고.



분홍색 토끼풀의 꽃말은 '행복'과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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