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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백팀이었다.

프롤로그

by 나날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다. 물론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아이는 저쪽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일상이니 문제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것도 하나씩 쌓이면 큰 게 되기 때문에!


초등학생인 아이가 이제 숙제를 하면 좋겠는데, 더 놀겠다고 버틸 때도 어느 정도 차근히 넘길 수 있다.라고까지만 생각했다간, 하루 끝엔 내가 성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마치 나의 에너지를 지키는 파수꾼과 같은 마음으로! 밤시간이 늦었고, 지쳐있는 나는 아이들이 빨리 자면 좋겠는 날이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딴짓하며 이빨 닦기를 미루고 있다면, 내 인내는 드디어 바닥나기 때문이다.


아, 힘들다. 몹시 힘들다.
아, 오늘도 내가 나를 너무 썼구나.
오늘 하루 아이들을 받아주는 데
에너지를 너무 썼다.

엄한 모습으로 이를 닦게 할지,
이를 닦게 하는 것을 포기할지
결정이 시급하네. 나는 곧 터질 테니!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 버럭이라는 것을 하기에는 나의 에너지가 부족하고, 상대를 ‘굽거나 닦달해서’ 변하게 하느니 포기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더라는 경험도 쌓였다. 이점은 내 나이에게 감사한 점이다. 이런 상황에는 이제 '엄마는 후퇴' 전략을 쓰곤 하는 것은 세월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니!


엄마는 이제 배터리가 없어서 자러 가야 해.
너희 이빨은 너희가 지키는 거야.
만약 이빨이 썩는 게 걱정된다면,
지금부터 딱 3분만 기다려줄게!



이것이 학습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혹은 정신의학적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10대에 접어든 첫째에게 이 문장은 엄마가 곧 버럭 할 수 있다는 사인이 되고, 그전에 피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긴 하는지, 아이가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효과는 있다. 그리고 누나 따라쟁이 둘째에게도 화장실로 기어들어가게 하는 효과도 있긴 하다. 나는 사건을 이 정도로나마 '나이스하게' 마무리시키는 것은 엄마의 큰 노력이라고 본다. 만약 최근에 같은 사건이 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자신을 푹 안아주자! 맛난 것도 하나 사 먹고!



반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쉽고 즐거운 순간은

아이가 되어 아이들과 같이 웃고 떠들 때다. 물론 이런 환상적인 순간은 어쩌다 아주 어쩌다 찾아오지만, 그때만큼은 시간이라는 것이 그리 술술 흘러갈 수가 없다. 이번 가을에 첫째 학교에서 있었던 운동회가 그랬다. 우리는 백팀이었는데, 내가 살다 살다 청팀만 계속 이기는 운동회는 처음이었다. 첫째가 등교하며 그랬었다. “엄마 1반, 2반이랑 같은 팀이 되어야 해!” 그런데, 그 두 반이 청팀에 가있지 뭔가. 첫째 마음이 뭔지 알겠더라.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줄다리기와 이어달리기지! 지고만 있던 백팀이 안타까워서는 아니겠지만, 그쯤 돼서 구경꾼 부모들도 운동회에 투입되었다. 회사에 출근하다가 들린 남편도 얼떨결에 남자아이들이 당기는 줄의 끄트머리를 잡고 구둣발로 열심히 잡아당겼다. 나도 여자아이들과 함께 줄을 당겼다. 아 정말 이기고 싶어 열심히 당겼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눈물이 날뻔했다. 청팀 애들 왜 그리 잘 뛰니! 그러니 더욱더 백팀 주자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목청껏 응원해 줬다. 백팀은 줄다리기만 여자, 남자 모두 이겼다. 미리 고백해 두건대, 나 승부욕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팔다리 등 엉덩이 근육이 아파서 '어제 운동회였지' 했다. 국민학생 시절로 돌아간 줄 알았다. 이런 몰입! 이게 바로 육아 중에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다. 근육통으로 쩔뚝거리는 나에게 "그러니까 적당히 하지!"라며 한마디 날리는 아이의 핀잔은 사건의 반전! 이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총량을 따져보면

아직까지 나에겐 힘든 게 더 많다. 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부터 나는 그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은데, 한 동안 글은 쓰지 않고 한 가지 생각만 열심히 했다. "왜 나는 적고 싶을까?!" 이 질문을 곱씹다가, 딴생각도 하다가, 그러다가 문득 아이의 운동회가 떠올랐다. 신나게 응원하고, 줄도 잡아당기던 내가 떠올랐다. 육아를 멋지게 잘하는 엄마들이야 알아서 잘하니 내 경험이나 응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힘든 엄마들, 육아만도 어려운 엄마들, 육아도 힘든데 일도 해야 하는 엄마들, 우리 백팀이 떠올랐다. 나도 그럴 때가 많으니, 우리 같이 힘내보자는 응원은 내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이 씁쓸하고도 따끈한 나의 육아 분투기를 목요일마다 발행해 보기로 의지를 다져보았다. 함께 하실 분들은 커피 한잔 앞에 두고, 우리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응원은 내가 자신 있으니! 백팀에 속하려니 괜히 좀 그런가? 괜찮아요. 육아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추신) 아까 스스로 들어가서 이빨을 닦고 나온 아이들에게는 ‘엄지척’ 정도는 날려주는 게 좋다더라. 시간이 좀 지났더라도. 이 ‘엄지척’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지 않게 자신을 보살피자. 엄지 하나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연재될 글들을 응원해주실 그대에게 마음으로 드립니다. 꽃멍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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