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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May 15. 2024

좋은 것을 향해서

식탁에 앉아있는 첫째를 본 순간 동물이 하나 연상되었다. 아이와 닮은 동물을 아주 근접하게 떠올린 것에 마냥 신났던 것은 그 순간 내가 지나치게 단순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자라 한 마리가 살아요

아기 자라는

자꾸 목이 쑥쑥 들어가요

자꾸 목이 쑥쑥 들어가요"



신난 김에 노래 한 소절을 만들어 아이에게 불러주었는데, 아이도 재미있는지 같이 리듬을 타며 죽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똥꼬 발랄은 거기까지. 순간 내게 아주 오싹한 사실이 떠오르자, 나는 더 이상 촐싹거릴 수만은 없었다.


아이의 목이 '거북목'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내 머리에 인지되었다. 나의 '거북목'이 아이에게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나를 한방 내리쳤다. 우리의 공간이 방금까지는 충만한 밀물이었다면, 이제는 썰물. 음악으로 비유해 보자면, 조금 전까지는 그저 해맑은 동요였다면, 이제부터는 단조 혹은 타령이 되겠다.


"우리 집에

거북이 두 마리가 살아요

아기 거북이도  

엄마 거북이처럼  

자꾸 목이 앞으로 쭉쭉 빠져요

등껍질도 점점 단단해져요 “  



나의 데칼코마니 체형을 가진 첫째는 유난히 골반이 뒤로 빠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어깨는 앞쪽으로 말리게 된다. 이에 더해 아이도 나처럼 옆으로 자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말리는 어깨는 자는 동안에도 꾸준히 눌려진다. 유일하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는 매우 단단한 코어 근육과 궁디 근육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근육만으로는 등이 굽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코어 근육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있으면 아이의 등이 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견갑골을 조여줄 단단한 등근육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내 등 그 부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최근 발레를 시작하고부터 느끼고 있다.


거북목 탈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알았다고 해서, 현재 우리의 '목' 상황이 마법처럼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마흔이 넘는 동안 부단히 거북목을 단련시켜 온 터라, 최근 몇 달 한주에 한두 번 등을 펴고 오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아직 등운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아이도 그렇고. 하지만 우리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변화는 생겼다. 우리는 더 이상 등이 굽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나만 두려워했던 것도 같지만.

그동안 원인과 방법을 몰라서 그랬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거북목으로 발레슈즈를 신고 있자니, 사실 여간 부끄러운 시간이 아니다. 발레슈즈를 처음 신는 날부터 나는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아야 했는데, 균형이라니 어림도 없었다. 이미 몸이 틀어져있기도 했고, 나를 잡아주어야 하는 코어근육, 궁디근육, 등근육에 히마리가 없으니, 내 몸은 이쑤시개를 세워놓은 것 마냥 이리 휙 저리 휙 쓰러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할 수 있겠냐고요? 네 그럼요.

이제야 처음으로 느껴보는 내 등근육의 감각이 나는 정말 좋다. 그리고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펴진 몸'을 꼭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거울에 비춰지는 나’를 바라보며,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리하여 ‘여전히 이리로 휙 저리로 휙 쓰러지는 고개 든 거북’이지만, 그 순간을 깔깔거리며 즐긴다. 그렇게 내가 나를 펴고 있다 보면, 아이에게도 좋은 게 물려지겠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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