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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발가락이 휘었다. 그 후

by 나날

발가락이 휘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지, 미천한 내 글들 중에 아이의 발가락에 대한 글이 매일 읽힌다. 적게라도 꾸준히 매일 읽히는 글에 책임감이 느껴져서 그 글을 다시 읽으니, 지난 글에는 당시 내가 이해하고 소화한 내용까지만 담겨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아이와 내가 발견하고, 매일 같이 해나가고 있는 것을 더 적으면 좋겠다 싶었고, 오늘은 그것들에 확신이 좀 더 생겨서 글로 옮겨본다.


우리 아이가 겪는 증상은 보통의 '무지외반증'과는 조금 다르다. 엄지발가락 전체가 안으로 휘는 것이 아니라, 발톱이 있는 첫마디만 안으로 휜다. 그러므로, 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을 모으면 두 엄지발가락이 만들어내는 모양이 하트다.



다소 과장되어 그려졌지만, 아이가 자기 발을 내려다보면 정말 하트 모양이 된다.



병원에서 아이의 발가락이 더 휘지 않게 해 줄 분명한 방법은 없다고 하니, 사실 나는 그 뒤로 아이의 발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집이나 수영장에서 아이가 맨발로 걸을 때를 보면, 어김없이 아이의 발가락 휜 쪽이 바닥과 만나며 더 눌려지고 있었지만.. 그때는 안타깝다가, 다시 잊어버리고를 반복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마도 첫 병원에 다녀오고부터 10개월쯤 지났을 때, 아이의 한쪽 발가락이 유독 더 많이 휜 게 확연히 보였다. 병원에서 말한 '수술 기준 15도' 보다 더 휜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철렁 주저앉았다. 수술해야 하면 수술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안 할 수 있음 안 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맞았는가 보다.


그날 저녁에 아이가 자려고 누웠을 때, 나는 아이의 발아래 앉아서 너무 많이 휜 것 같은 오른쪽 발가락을 조물조물 만져주었다.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나이라는 사실에 희망을 가지고, 한 번은 도움이 안 될지라도 매일매일이 쌓이면 그래도 어떤 도움은 되겠지 싶은 기대를 가지고, 아이가 아파하지 않는 정도로 발가락을 조물조물 만져주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아이는 엄마가 그렇게 자기 발가락을 만져주는 게 좋은지, 벌렁 드러누워서 발가락은 어미에게 맡겨놓은 채로 이 얘기 저 얘기를 내어놓는다. 이제 초등 5학년을 바라보니, 낮동안에는 자기 불편하면 입을 닫던 주제도 이 시간에는 좀 쉬이 꺼내놓는다. 이때는 나도 하루 일과를 대부분 마쳐놓은 시점이라, 아이 말에 그저 '그랬구나..' 하며 듣기 좋은 너그러움을 좀 부리기도 해 보고.




날을 세지는 않았다. 그래서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아이와 내 눈에 분명히 오른쪽 발가락이 더 많이 휘어있었는데, 그 발가락만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왼쪽 발가락이 더 휜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은 오른쪽 발가락이 조금이나마 바로 섰음을 의미했다. 혹은 더 휘는 것을 막았거나. 우리는 같이 많이 놀랐다. 기뻤다!


아이는 그 뒤로 반대쪽도 마사지를 해달라고, 양쪽 다 마사지를 해달라고 다리를 이쪽 줬다가 저쪽 줬다가 바쁘다. 이런 우리의 변화를 현재 시점에서 더 나누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은 하루에 아주 조금! 잠시! 발가락을 조물조물 만져주는 것이고, 아이는 다음 하루를 보내며 거침없이 뛰어다니기 바쁘기 때문에 발가락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있곤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의미를 두는 것은 이것이다.


아이의 발가락이 한순간에 곧아지는 기적은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결국 수술이라는 도움을 주어야 할지도 모르므로 더욱,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며 보내고 있는 것이 나는 좋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느끼는 '이 좋은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진다면, 아이는 자신의 발가락이 좀 휘었든지 간에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갈 거라는 확신이 드는데, 이것은 아이로부터 오는 것이다. 관계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이것이 기적을 만들어내 주면 좋겠다!




추신

아이는 올해 마지막 정기검진에서 평발 호전이라는 소견을 받았고, 1년이던 검진기간이 2년 뒤로 잡혔습니다. 이것은 그저 우리 아이 한 명에 해당하는 개인적인 성장흐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이 언제나 적절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고민을 가진 식구에게 제가 한 가지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마음에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엄마도 아이의 상황과 차근히 함께 함을 나누는 것이요.. 그렇다면 아이의 성장이 어디로 흘러가든지.. 아이에게는 엄마와 함께한 든든한 추억이 담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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