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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Dec 14. 2023

그렇게 헤어지기 힘들다더니

이 맘 때가 되면 나는 마음의 준비를 슬슬 시작한다. 곧 아아들의 학년이 마무리될 것이고, 이 집 첫째는 '늘 그랬듯이'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에 울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였으니, 이것은 작년까지 다섯 번 반복된 연례행사였다. 그리고 올해도 첫째는 새로 만난 같은 반 친구와 순수하고 진하게 우정을 나누었으니, 다음 학년에 그 친구와 다른 반이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울 수 있다.


아이가 1학년이고, 2학년이던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 '아주 많이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을 시켜주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 나이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베프와 헤어져야 하는 게 슬플 뿐이다. 아이가 3학년인 지금은 선생님들의 그런 처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이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프와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슬픈 건 슬픈 거다.



유치원에서도 그렇고, 초등학교에서는, 한 해 동안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다음 학년에는 가능한 다른 반으로 배치시킨다. 물론 유치원에서는 부모가 개입하게 된다면, 친한 관계를 같은 반으로 유지시킬 수 있지만 그게 아이들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에 납득이 된다. 아이가 겪어야 하는 이별의 슬픔은 매번 힘들지만, 그것들이 쌓이다 보니 첫째는 여러 가지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말 친했던 친구와 다른 반이 되어도 그 우정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가 1학년일 때, 그렇게도 서로 아끼던 친구가 있었다. 결국 둘은 다른 반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사이가 좋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변하지 않고 있다.


첫째는 친구와 나누는 우정이 한 가지 색(Color)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1학년일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 '위로'를 경험했고, 2학년 일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는 '존중'을 경험했고, 3학년 일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는 '친밀'을 경험하고 있다.  


첫째는 이별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다독여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1학년 친구와 헤어지면서 3일을 몹시 힘들어했고, 2학년 친구와 헤어지면서는 하루를 몹시 힘들어했다. 3학년인 지금은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못할 것을 예상하며 안타까워하지만, 그전만큼 힘든 분위기는 아니다.


이런 것들을 아이가 매년 알차게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는 이제 '선생님들이 왜 베프와 같은 반을 시켜주지 않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오직 한 명 하고만 계속 친했다면, '다양한 색'을 가진 친구들과 '존중'과 '친밀'을 나누지 못했겠다는 것을 아이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별은 슬프다. 새로운 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친구를 또 사귀어나가야 하는 것은 '내향'인 아이에게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슬슬 아이와 동행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리 와봐 우리 딸
엄마가 안아보자



슬픈 아이가 그냥 슬플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 충분히 슬퍼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아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나는 나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연습을 한다. 내가 나의 슬픔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그냥 참고만 있을 때는 아이의 슬픔이 부담스럽다. 아이의 슬픔이 하찮게 느껴지거나, 얼른 슬픔을 털고 일어나면 좋겠거나, 슬픈 아이를 안아줄 품이 없어진다. 반대로 내가 나의 슬픔을 존중하고 어루만져 줄 때면, 슬픈 아이 곁에 그저 가만히 있어줄 수 있다.


이럴 때면, 슬펐던 아이는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지고 나서, 스스로 힘을 찾는다. 그 힘으로 아이는 다음으로 나아간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내거나, 새로운 반에서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거나, 다른 반으로 헤어진 친구와 계속 우정을 이어갈 방법을 찾는다. 아이 스스로..



엄마들에게

이제 곧 아이들이 새로운 반에 배정받게 되죠. 일단 아이도 아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한 해를 잘 살아낸 우리 자신에게 큰 박수를 쳐줍시다. 가족을 건사하느라 애쓴 자신을 꼭 안아주고요. 요것,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아이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회복탄력성, 들어보셨을까요. 이 힘이 키워지려면 일단 슬프거나 힘든 일이 필요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그런 마음이 아이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면, 슬프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한동안 슬프거나 힘들 수는 있어도 아이는 다시 회복합니다.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즉 회복해 보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회복력을 갖추게 되고요.


엄마는 아이의 슬프고 힘든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어요. 없애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그러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너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아이가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슬프거나 힘들 때, 그럴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는 일이요. 그렇게 같이 ‘그’ 일상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일상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니.. 그저 그 일들을 일상에 포함시켜서 같이 사는 거죠.


엄마도 같이 슬플 수 있어요. 그러면 그런대로 아이와 표현해 보는 것도 괜찮아요. 저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느니,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쪽을 택하고 있어요. 엄마는 AI가 아니잖아요.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듯이, 엄마도 슬펐다가 다시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올봄에 제가 그렇게 회복되는 새싹을 지켜보았는데, 보여드리고 싶어요. 열심히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이 어느 날 밟혀서 꺾여있더라고요. 안타까웠지요. 안타깝지만,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했어요. 매일 오가는 길에 피어난 새싹이라, 그 옆을 오가며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쳐다봐 주었어요. 그렇게 한동안 새싹도 저도 일상을 살았고, 새싹은 잘자랐어요. = )



쑤욱 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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