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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바다 Dec 26. 2023

그 남자가 남편이 되기까지

에피소드 1. 상처 남긴 첫 만남

2014년 2월의 눈 오던 어느 날,

맞선과 소개팅의 중간쯤 되는 만남으로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남편은 외친아였다. 외삼촌.친구.아들)


만나기로 한 그날 아침, 얼굴이 간질거려 거울을 보니 오른쪽 볼에 큼지막한 뾰루지가 올라와 있었다. 내 나이 서른넷에 하는 어쩌면 지루해질 만큼이나 지루해진 소개팅인지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 저녁에 만나 차 마시게요. “

만남의 약속을 정하는 중 그에게 온 메시지.

마시게요? 뭔데 자기 맘대로 차 마시는 걸로 결정을

하지?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외친아임을 감안해서 그냥 오케이를 했다. 카톡 프로필에 떡하니 본인 사진을

올려놓은 남자.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요즘말로 꾸안꾸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눈이 오는 바람에 우산을 쓰고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

어…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미끄러질 만큼 눈이 쌓인 것도 아닌데 보도블록에 쿵하고 오른쪽 무릎을 찍고

말았다.

으… 소리를 내며 무릎을 살폈는데 다행히 스타킹은

멀쩡했다. 무릎은 욱신거릴지언정 무사한 스타킹에

감사하며 버스정류장에 다 와갈 때쯤, 눈앞에서 버스가 쌩하며 지나갔다. 시계를 보니 다음 버스를 타면 늦을 거 같아 택시를 타고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향했다.

내릴 때가 되어 지갑을 열렸는데 택시 안이 어두워 실내등을 켜는 순간 운전기사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

갑자기 불을 켜면 어쩌냐고! 밖이 안 보인다고! 위험하다고!


택시 아저씨에게 한 소리를 듣고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든 채 커피숍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십분.. 십오 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하아… 이쯤 되면 오늘은 날이 아닌 거다’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커피숍이 안 보인다고 못 찾겠다는 그에게 어찌어찌 위치를 설명했고, 조금 뒤 머리에 눈을 얹은 그가 나타났다.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머리에 눈을 털고 머플러를 풀더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휙하니 내 눈앞에서 다시 사라졌다.

뭐니 이 남자.


차를 시키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자. 기. 소. 개. 타. 임. 이 시작되었다.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인 나는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데…  

또 뭐지 이 남자? 처음 보는 내게 자기 이야기를 마구마구 해댄다. 동생이야기부터 시작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기 왼쪽 눈 옆에 있는 상처가 왜 생기게 되었는가 까지.. 쉬지 않고 쏟아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그런 그 남자가 불편하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그를 그리고 나를 의식하느라 조금은 경직되었을 법 한데 이상하리만큼 그 자리가 편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좀 넘게 이야기를 나눴을까? 조금은 늦은 시간에 만난 거라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서는데 그가 말했다.


“키가 크시네요.”

“네, 저 170 넘어요. “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키 큰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그 사이 눈은 그쳤고 우리는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들고 있던 내 우산을 가져가더니 곱게 접어서 나에게 돌려주는 그.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오르며

“저, 갈게요.”

“연락할게요. ”


손을 흔드는 그를 뒤로하고 난 핸드폰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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