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빛바다 Feb 05. 2024

그 남자가 남편이 되기까지

에피소드 3. 그 말할 줄 알았어요.



“ 방학이니까 시간 괜찮죠? 이번에는 ㅇㅇ씨가 서울로 올래요? ”



서울로 와 달라는 말에 쿨하게 오케이를 하고 그를

만나러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짧은 스커트에 목폴라 그 위에 카디건을 하나 걸치고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벌써 십 년 전 일이지만 왜인지 그날 옷차림은 아직도 기억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같아선 하지 않을 옷차림… 2월이라 강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에 얼죽코라니…


무튼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도착해 타임스퀘어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괜찮은 pub을 찾았다며 날 이끄는 그. 그런데 웬걸… 그 괜찮다는 pub은 어디 가고 엉뚱한 가게가 눈앞에 있었다.

왠지 당황한 듯한 그는 내게 핸드폰을 열어 블로그 하나를 보여주었다. 잠자코 보니 벌써 2년 전 블로그였다.


“ 이거 2012년에 작성된 블로그인데요.”

“ 아… 그래요? 몰랐어요.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글 읽는걸 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예상컨대 그 블로그 글을 그냥 대충 보고는 괜찮다 싶어 날 데리고 간 거였다.


첫 만남엔 늦고, 두 번짼 엉뚱한 가게에 앉아 있더니, 세 번째는 사라지고 없는 식당에 날 데리고 가는 너란 남자. 그런데 우습게도 그 상황이 막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의 나였으면 , “너님, 아웃이에요.“ 했겠지만 왠지 그런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결국 우린 근처 타이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본인 엄마가 입양아라는 사실과 언제 어떻게 엄마의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주 자세히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왜 자기 가족이야기를 나에게 이렇게 서슴없이 하는 건지 조금 의아했지만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왼쪽 눈가 옆에 긁힌 듯 조금 깊은 상처가 있었고, 오른쪽 귓불은 무언가에 눌린 듯 왼쪽 귓불보다 짧았다. 그리고 그는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본인을 살피는 걸 느꼈는지,


“ 왜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

“ 아뇨. 눈가에 상처가 있어서요. ”

“ 아, 어렸을 때 친구집에서 놀다가 화초에 긁혔는데 상처가 좀 크게 남았어요. 엄마가 이 상처 때문에 많이 속상해하셨었죠. “

“ 아… 그래도 눈에 크게 띄지는 않아요. ”

“ 네. 뭐 이젠 신경 안 써요. 사실 눈옆 상처보다는 귓불 때문에 어렸을 때 스트레스를 좀 받았어요. “

“ 모양 땜에요? ”

“ 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탯줄에 눌려서 그렇게

됐다는데 짝짝이 같아서 맨날 귓불을 만지고 늘렸어요. “

“ 아. 그랬구나. ”

“ 이젠 뭐, 하하.”

“ 자세히 안 보면 많이 티 안 나요. “

“ 네. 하하.”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볍게 맥주 한잔을 더 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이 되어서 그런지 날이 차가웠다. 말도 없이 갑자기 내 손을 잡은 그는 자기 점퍼 속으로 붙잡은 내 손을 짚어 넣으며,


“ 추우니까요. “라고 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속으로 “쿡쿡 “ 웃으며 잠자코 있었다. 붙잡은 손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맥주집으로 향하던 중 내 발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그가 날 꽉 잡아주어 넘어지진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내 손을 빼더니 자기 팔로 가져갔다.


“ 내 팔 잡고 가요. 또 넘어질라. “


첫 만남을 하러 가던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더니 오늘 또 미끄러질 뻔했다. 그의 말대로 또 넘어질까 싶어 그의 팔을 꽉 붙들고 걸었다.


세계 맥주집에 도착해서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는 내게,

“ 맥주 좋아해요? “라고 물었다.

“ 아뇨, 술을 즐기지는 않아요. 가끔 분위기 맞춰 한두 잔 하는 정도? “

“ 마시고 싶을 때 없어요? ”

“ 그냥 아주 더운 여름날 생맥주 한잔 생각날 때는 가끔 있어요. “

“ 아, 난 좋아하는데. 하하. “

“ 술 잘 마셔요? “

“ 네. 자랑은 아니지만 잘 먹는 편이에요. 맥주 마시는 거 좋아하구요.“

“ 그렇구나. ”

“ 그런데 술은 좋아해도 나 담배는 안 펴요. “

“ 그런 거 같았어요. 담배 냄새 같은 거 안 나요. 담배

안 피는 거 마음에 들어요.”

“ 하하, 다행이에요. “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그가 갑자기 진지모드로 변신을

했다.


“ 나 ㅇㅇ씨 정식으로 만나보고 싶어요.”


왠지 이번 만남에서 그가 이 이야기를 꺼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난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두지는 않았었다. 만일 그 순간이 오면 내 마음이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Yes 던  No 던.

내가 무슨 말을 하려 입을 떼려는데,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니, 지금 대답 안 해도 돼요. 생각해 보고 대답해도 돼요.”라는 그의 말에


“ 만나요. 만나봐야 알죠.”라고 내가 말했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왜 그렇게 쉽게 대답이 나왔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인연이어서 그랬었던 걸까?

무튼 만나자보자는 내 말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여기에 점이 있네. “ 하며 내 얼굴을 살짝궁 건드리는 그.


난 속으로 “ 뭐 또 이렇게 금방 가까워지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미 두 번째 만남에서 “ 이 여자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이 좀 더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

맥주집을 나섰다.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나를 자기 쪽을 바짝 끌어당기는 그 남자.

그러면서,

“ 좋다. “라고 말을 내뱉는 그였다. 난 조금 당황했지만 살짝 웃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자기표현에 서툰 나와는 다른 사람.

감정에 솔직한 사람.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내가 좋다고 하니 더더욱.


그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가 남편이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